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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Apr 11. 2018

아이가 있는 삶은 어떤가요?

난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


                                                                                                                                                                                                                                                                                                                                                        결혼한 지 3달째가 되는 날부터였나, "너네는 애기 언제 낳을 거야?"라는 폭풍 질문의 향연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때가. 엄마는 "이제 너도 결혼한 지 2년째니까 얼른 애기 낳아야지."라고 말을 했다. 10월에 결혼을 했으니 결혼한 지 3개월이 지나 햇수로 2년차가 되는 것이 맞긴 했다. 하지만 짝꿍과 둘이 있는 것이 늘 말할 수 없이 행복해서, 행복의 조건이 하나 더 필요한 마음의 상태는 아니었다. 게다가 주변에서 보고 듣는 육아의 고달픔이 이미 내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터라, "아기를 낳아야지, 그래야 더 행복하고 성장도 많이 해."라는 말은 꼭 물건을 팔 때 안 좋은 점은 가능한 한 뒤로 숨겨놓고 좋은 점만 홍보하는 상황 같았달까.. 잘 와 닿지 않았다. 아 물론 내가 아기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엄청 귀여워하고 애정을 듬뿍듬뿍 주는 편이다.


한때는 남편에게 "아기를 왜 낳아야 하지? 귀여워서 낳는 거라면, 나중에 커서 안 귀여워지면 어떡해?"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을 했었다. 남편은 이에 대한 대답으로 "내 꿈이야. 가정을 이루는 거. 내 꿈 이루게 도와줘~"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였는지, 아기가 우리집에 등장한 이후 우리 가정의 삶을 가끔씩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남편의 꿈이라니 언젠가는 꼭 이루어주게 될 텐데, 이왕 그렇다면 육아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을 가져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붙잡았다'. 어쿠스틱 라이프도 재밌게 봐서 육아도 재밌게 즐겁게 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예상이 당연히 들어맞지는 않았지만, 이 제목처럼 난다 님은 아이를 낳고 나서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아기를 안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읽어보니 나한테까지 그 행복감이 스멀스멀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도, 이렇게 나를 순수한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짝꿍과 나를 닮은 아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임신, 출산, 육아의 괴로움을 미리 겪어볼 수 있었다면 인류는 지속되지 못했을 것 같다는 난다 님의 말도 있었는데, 30년 동안 살던 삶의 패턴에서 완전히 변화되는 삶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다가도,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래도 책에서 보여주는 아기와의 교감, 새로운 가족을 맞이함으로써 느끼는 감정들이 읽다 보면 어느 정도 마음에 '우리 아기의 공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느 정도 각오는 된 것 같다...

이제 언제든 우리에게 와도 될 것 같다. 함께 지지고 볶고 사랑 주며 살 준비가 되어 있어!




* 남겨두기

16주 5일. 이제 곧 여름이 된다.
침대에 엎드려 있다가 왼쪽 아랫배에서 꿀렁, 하고 첫 태동을 느꼈다. 이후 아주 조심스럽던 발길질에 갈수록 힘이 생겼다. 원고를 쓰느라 책상에 앉아 허리를 숙이면 이내 배를 통통 차며 항의한다. 내가 자세를 바꾸면 배 속에서 아기도 꿈틀거리며 다시 자리를 잡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같이 뭔가를 했다는 느낌에 짧지만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 33 p.

퀘스트가 있는가 하면 이벤트도 발생한다. 백일, 200일, 첫 크리스마스…. 매일의 육아를 거듭하며 희로애락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날 짠 하고 분기점이 나타나서는 '우리가 부모구나, 우리는 가족이구나' 하는 일종의 연대 의식 같은 감정을 부추기는 일.
남편과 눈빛만으로 감격을 주고받으며 어느 순간보다 짙게 부모로서 서 있는 순간들이 참 좋다. - 119 p.

부모가 되어 아기 백일 사진을 찍어보니 나와 남편이 백일 사진 속에서 왜 그렇게 얼떨떨한 표정이었는지, 자세는 또 왜 그리 어정쩡했는지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정말 간신히 찍었겠구나. 그리고 육아로 머리에 꽃 하나를 달고 살았을 정신없는 생활 중에 백일 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들어서는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설레었을지도. 갑자기 그 시절의 엄마 아빠가 같은 또래 아기를 키우는 이웃집 부부처럼 가깝게 느껴져 마음이 애틋해졌다. - 121 p.

아기와 생활하게 되면서 행복을 캐치하는 나의 뜰채가 더 커졌음을 느낀다. 잠자는 아기의 뜨끈한 정수리와 땀 냄새, 양 볼에 눌려 벌어진 부리처럼 뾰족한 입, 동그란 뺨의 곡선, 발바닥에 조르르 달라붙은 완두콩 오형제를 손가락으로 조심히 쓸어보는 감촉은 어떻고. 아기가 없던 예전과는 종류가 다른, 거의 정반대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문명적 행복 대 원시적 행복. - 127 p.

시호는 매일 오후 2시에 낮잠을 잔다. 밤에는 나와 같이 누워 굴러다니다 잠드는데, 낮잠만은 포대기로 업어줘야 잘 수 있다. 이제는 포대기를 들면 재운다는 것을 알아채서 젤리곰 두 개로 유혹해야 겨우 업히지만, 업힌 채 한참을 꼼지락거리다 이내 조용해져서는 내 등에 대고 이리저리 고개를 가다듬으며 편한 자세를 찾는다. 나도 불러주던 자장가 소리를 낮춘다. 드디어 잠에 빠져드는 순간, 내 등에 툭 떨어지는 머리의 무게감을 사랑한다. 아기는 잠이 들면 머리가 뜨끈뜨끈해진다. 그 뜨끈뜨끈함도 사랑한다. 그래서 종종 잠든 걸 확인하고도 이불로 옮기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집 안을 돌아다닌다. - 160 p.

나도 알고 있다. 시간을 잡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아기가 태어나고부터는 더 절절히 느낀다. 지나간 시간이 정말로 절대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부지런히 기록을 해두면 시간이 흘리고 간 조그만 기념품 정도는 붙잡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1테라바이트에 달하는 사진이 하나도 정리되어 있지 않아도 걱정 없다. 앨범 만들기는 노후의 기쁨으로 남겨두면 되니까. - 256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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