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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Jun 12. 2018

환갑 넘긴 서점의 말 걸기

김영건, 『당신에게 말을 건다』


                                                                                                                                                                                                                                                                                                                                                                                                                                                                                                                                                                                                                                           

최근에 속초에 갔을 때 차로 이동하다가 휙 지나가면서 본 동아서점. 아마 저 책 표지의 오토바이 위치쯤이었을 것이다. 너무 예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예쁜 동네서점인가 보다 하고 바다에 다녀온 뒤에 가보자고 했던 이 곳인데, 바다에서 너무 신나게 놀다 보니 시간이 금세 가버려서 그냥 서울로 올 수밖에 없었다. 미리 알았다면 코스에 넣었을 것인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서점 이름으로 검색해보았더니 이 책이 나왔다. 이 서점의 사장님이 쓰신 책. 그리고 3대째 이어 운영되고 있는 62년 된 서점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얼떨결에 아버지의 서점 운영을 넘겨 맡게 된 아들. 온라인 서점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편리함 등으로 오프라인 서점은 사양산업이 되었다고들 하지만, 아들은 서점에 크고 작은 변화들을 주며 그 안을 채우고 있던 옛 공기를 바꾸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속초 관광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오는 공간이 되었다. 여기에는 그 일련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렸을 때부터 서점 속에서 책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저자여서 그런지 글도 잘 읽히고 간간히 재미도 있었다.

책과 사람을 이어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는 모습에 내가 왜 설렌 것인지 모르겠다. 그 자체가 참 좋았다. 책을 서점에 배치함으로써 책을 통해 잠재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것. 서점의 묘미를 다시 느낀다. 이렇게 저렇게 책을 모으고 분류함으로써 서점 방문자에게 여러 방식으로 책을 소개하는 것. 재미있는 주제, 때로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책 배치하기. 나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이런 방식들이 다 따로 떨어져 있는 책들에 연결을 줌으로써 신선한 의미를 부여해준다. 독자들에게도 책이 새로운 의미로 와 닿을 수 있고, 만남(구매)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동아서점을 통해 마음속으로 가볍게 결심한 것이 있다. 앞으로 여행을 가면 꼭 그 지역에 있는 특색 있는 서점에 방문해 볼 생각이다. 어떤 지역에, 어떤 서점에서, 어떤 책이 나를 마중 나와 있을지.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다.


* 남겨두기

"물론 당시 한국에도 예쁜 서점은 많이 존재했다. 하지만 나의 방향성과 맞닿는 서점, 그러니까 '종합서점'이라는 정체성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고 있는 서점은 눈을 씻고 찾아보기 어려웠다. 미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것이라고 반박한다면 할 말은 딱히 없지만, 서점이라는 공간이 그렇고 그렇게 용인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잖은가. 서점의 외관부터 진열된 책의 모양새에 이르기까지, 서점은 지금껏 '사고 싶게 만드는 상품의 진열'이라는 사실을 줄곧 외면해온 것만 같았다." - 43 p.

"서가의 몇몇 구석에서 책 분류와 관련된 사소한 실험들을 감행해보고 있다. 자연이 환기하는 느낌과 이미지들로만 책을 모아서 진열하기도 했고, '퇴사'와 관계된 책들만 모은 코너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심할 때는 표지 색이 비슷한 책들만 모아놓기도, 제목을 이어서 읽을 수 있게 책을 모아두기도 했다. ... 서가의 분류도 서점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인터넷서점이 아닌 '서점'에 갈 최소한 한 가지 이유는 확보한 셈일 것이다." - 60 p.

"베스트셀러만 소개하고 잘 팔릴 것 같은 책들만 진열했다면 아마 묻혀버리고 말지도 모르는 책. 그렇게 묻혀버리고 말기엔 아까운 책. 그런 책들을 손님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그들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당신이 이 목소리를 듣고 책을 펼칠 수 있을까? 별것 아닌 진열 하나에도 새삼 절실함이 깃들고 때로 가슴 아파지는 까닭도 실은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한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 91 p.

"매일, 아침저녁 할 것 없이 틈이 나는 대로 신간 목록을 살펴보는 일상, 경력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시간이 차츰 쌓이며, 어떤 책들은 주문하면서 일찌감치 그 책을 구매할 손님이 머릿속에 그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자주 방문하시는 손님들에 한해 그러한데, 그 한 분 한 분의 책 구매 역사가 어쩔 도리 없이 내 기억에 새겨지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빅데이터도 아니고 엑셀도 아닌, 오로지 나의 머리 한편에 각인된 기억의 힘으로 나는 손님들을 대신해 그분들이 '구매할지도 모를' 책들을 예약한다. 그것을 나는 '나 홀로 예약제도'라고 부른다." - 106 p.

"아내는 자명한 한 문장을 내게 뼛속까지 일깨워주었다. 책 또한 상품이므로 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진열되어야 마땅하다." - 159 p.

"우리는 출판사로부터 받은 이미지를 사용하여 <속초에서의 겨울>전을 마련했다. 속초 출신 저자들의 책, 속초에서 활동 중이거나 거주 중인 저자들의 책, 속초가 언급된 책 등을 여기저기서 찾아내어 한곳에 모아두었다. 그 와중에 <속초에서의 겨울>은 매달 자체 집계하는 우리 서점 베스트셀러에서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과 한 권 차이로 2위를 했다." - 184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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