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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Feb 01. 2016

궁금한 음악가의 시간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


내가 알고 있는 한 피아니스트는 정말 열심히 산다. 열심히 연습하고 치열하게 연습한다. 평소 수면시간이 5시간, 콩쿨이라도 준비하려면 3시간도 길다 하는 분. 머리 감는 그 시간도 아까워 머리를 싹둑 자르기도 했던 분. 그분의 삶이 워낙 전투적이기도 하고, 또 그런 열심 어린 삶이 자기계발서 못지않게 나에게 주는 감동도 있어서 음악가라면 항상 그런 치열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연주자들의 무대를 볼 때도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들의 삶을 종종 나 혼자 상상해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궁금했다. 세계콩쿨에서 인정받은 이 피아니스트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겠지? 나의 나태해졌던 마음을 잡아달라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5년 간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묶어 낸 이 책은, 그래서 짤막짤막 읽기 편하게 되어 있다. 온전히 저자 본인의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이 책은 피아노라는 악기, 그리고 여러 역대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본인의 이야기를 하려면 이 소재들이 꼭 필요하긴 했을 것 같다.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는 전부니까!) 피아노라면 내가 그래도 자신 있지! 하다가도 피아노를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느낌이 다른지, 또 피아노 자체도 제조사에 따라 제조자에 따라 어떻게 소리가 다른지.. 뭔가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멋있고 부러웠다. 이런 멋진 악기에 전문가일 수 있는 저자가. 그렇게 피아노와 음악사를 넘나들면서 중간중간 소개해주는 클래식 곡도 하나하나  찾아들어보면서 책을 읽었다. 곡의 분위기나 악상, 작곡할 당시의 작곡가의 심리 등이 글로 설명되어 있는데 한 번 들어보면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어떤 전문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저자의 에세이라면 더 깊이 파고 들어가 그 사람과 그 분야에 대해 더 알고 싶게 만든다. 그러려고 이 책을 고른 것도 있다. 피아니스트의 노력과 집념을 엿보고 싶어서. 그런데 손열음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물론 개인적으로 정말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노력해서 현재의 위치에 간 것이겠지만, 누군가의 비교나 경쟁에는 크게 관심이 없이 음악 그 자체를 정말 좋아하고 즐기던 것이 그녀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만들어주었던 것 같다. 오히려 자신의 전문분야에 이렇게 즐거움으로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나 또한 마음이 가벼워졌다고 해야 하나. 다른 나라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동료 피아니스트 연주를 들으며 그 소리가 자신의 것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던 그녀의 푸념 섞인 존경은 앞으로 그녀가 더 성장하기에 충분한 인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어린 시절부터 원주에서 서울까지 레슨 받으러 갈 때마다 책을 끼고 보았다는 그녀답게 글도 아주 잘 쓴다. 음악성도 천재라 할 만한데 글까지 잘 쓰면.. 다소 힘이 빠지는 대목일 수 있겠으나 이 책 덕분에 클래식을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이 생겼으니 감사하다고 해야겠다. 이 세상에는 참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 감사하다! 나도 언젠가는 사서로서 나의 에세이를 적어 다른 사람들을 감동하게 할 날이 오겠지!  




* 남겨두기 


베토벤은 슬픔에 매우 인색한 사람이었다. 음울한 성향에 누구보다 비극적인 생애를 살았지만 사실을 말할 것 같으면 그는, 타고난 낙관주의자였다. 그의 음악에는 삶의 비극성과 관계없이, 아니 오히려 현실이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반대로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49 p. 


실제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필하모니홀 근처에는 갈 만한 식당이 거의 없다. 사람들이 밥을 먹을 돈으로 음악회 표를 사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쌈짓돈을 모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러 온 그들은 감동을 받으면 악장 중간이든 언제든 박수를 아끼지 않고, 생판 모르는 남의 나라 연주자에게 눈물을 흘리며 꽃 한 송이를 건넨다. 이곳의 관객들은, '진짜'다. 267 p. 


잘 세팅된 홀도, 잘 조율된 피아노도, 맘먹고 무대에 오른 완벽한 연주도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는 그날 느꼈다. 베토벤은 어떻게 곡을 이렇게 썼더란 말인가, 쇼팽은 어쩜 이런 하모니를 썼더란 말인가, 이러니 음악이 얼마나 좋은가, 음악을 함은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가. 291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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