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무, 『열여덟 살 이덕무』
『책만 읽는 바보』라는 책으로 이덕무 아저씨에게 '입덕'한 지 몇 년의 세월이 지났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고 부지런히 메모하기를 즐겨 하던 모습에 호감을 가졌다. 최근에 민음사에서 열여덟 살의 이덕무가 쓴 글을 모았다는 광고를 보고 냉큼 사서 읽기 시작한 책. 나에게는 믿고 보는 이덕무라서 고민 없이 집어 들었다.
책은 4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는데, 진짜 그가 열여덟 살에 쓴 글, 세월은 지나가면 다시 되돌리기 힘드니 눈앞의 시간을 아껴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는 글, 쾌적한 인생을 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여덟 단계를 모아놓은 글, 시집가는 누이들에게 여성이 갖춰야 할 덕목을 정리한 글 등이다.
특히나 이덕무가 열여덟 살에 썼다고 하는 '무인편'은 그 나이에 벌써 이런 지혜를 깨달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도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주는 글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서 같은 나이여도 정신연령이 한참 낮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는데, 이 글이 그것을 증명한다. 나는 성경이나 이런저런 책들을 보면서 이런 글은 좋다, 나한테 적용해야지. 하는 것들을 적어두고 읽으며 반성하는 것이 최선인데, 이덕무는 직접 글을 지어 스스로 경계를 삼아 수십 조목을 만들었다고 한다. 인생 경험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느낀 깨달음을 자기의 말로 직접 적어 스스로에게 교훈을 삼은 것. 인격을 부단히 다듬어 정결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집중해 힘썼는지 엿볼 수 있다.
물론 다소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 이 책을 통해 이덕무의 글을 옮기고 해석해 주신 정민 교수님도 어떤 부분에서는 그런 부분들을 서슴없이 얘기하셨다. 개인적으로 나의 경우는 마지막 부분에서 누이들에게 바람직한 아내상을 이야기해주는 것에서 공감이 안 갔다. 언제나 정숙하고 고요해야 한다는데, 나의 남편은 나의 방정맞은 모습을 좋아한다. 조선시대 남편들은 너무 심심했을 것 같다. 아내가 깨방정도 떨어주고 춤도 좀 춰주고 해야 삶이 재미가 있지.
정말 웃음 나게 소소한 정도로 공감이 안 되는 이런 부분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글은 잠언으로써 기억에 남길 만한 좋은 내용들이다. 아래의 남겨두기에 몇 가지를 남겨두기로 한다.
* 남겨두기
"남에게 조금이라도 훌륭한 점이 있다면 반드시 기억해서 잊지 않는다. 도리어 마음으로 이를 사모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전해야 한다. 남의 잦단 허물은 반드시 가려 덮어 드러내지 않는다. 남에게 알리지 않을 뿐 아니라 내 마음에 경계로 삼는다." - 40 p.
"하늘과 땅이 있은 뒤에 사람이 있다. 사람은 하늘과 땅에게서 나왔다. 그러니 또 하나의 하늘과 땅인 셈이다. 하늘과 땅이 법도를 잃으면 오행이 뒤죽박죽이 된다. 사람이 떳떳한 도리를 잃으면 오륜이 무너진다." - 52 p.
"내 허물 듣기를 음악소리를 듣는 듯이 하고, 허물을 고치기를 도적을 다스리듯 한다." - 58 p.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봄바람의 화창한 기운처럼 대해서 여유작작해야 한다." - 62 p.
"인내로 노여움을 누르면 무슨 일인들 실패하겠는가? 부지런함으로 게으름을 이기면 무슨 일인들 못 이루겠는가?" - 86 p.
"옛사람을 배울 때는 실천을 공부로 삼는다." - 90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