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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Apr 14. 2019

빛나는 책장을 만드는 북큐레이터

다카세 쓰요시, 『책의 소리를 들어라』



요즘에 전자기기 마트나 편집샵에 가면 종종 책장에 전시되어 있는 것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전자기기 마트에 왠 책? 하면서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요즘 트렌드라는 사실. 그리고 그 트렌드가 경쟁업체에 비해 가게의 수익을 높여준다는 사실.


하바 요시타카라는 일본의 유명한 북큐레이터가 있다. 북큐레이터라니 조금 생소하지만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유사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떤 책을 책장에 꽂을지, 주위 환경과 목적에 맞는 책 선정을 해서 맞춤형 책장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이 책은 이 사람이 그간 했던 성공적인 북큐레이션의 사례를 잔뜩 담고 있다.


뇌질환 재활병동, 미용실, 아디다스 매장, 은행.. 등등 책과는 상관이 없을 것만 같은 상상을 벗어나는 장소에서 하바의 북큐레이션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 스토리들을 듣고 있자면, 아직까지 책이 이렇게 힘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내가 저자도 아니고 출판계에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자못 우쭐해진다. 기존과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 미용실에 오는 여성 타겟들을 위해 현실 세상을 뛰어넘는 여행 관련 서적이나 질 좋은 그릇 사진 등이 실린 잡지 등으로 책장을 꾸리는 그의 감각에서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실제로 이 미용실은 주변의 경쟁 가게에 비해 매출이 확 뛰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책을 일종의 가벼운 '소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든 어떻든, 책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최근에는 도서관에서도 북큐레이션이 핫한 이벤트 중 하나다. 시즌에 맞게 주제를 선정해서 그 주제에 어울리는 책들을 골라 전시하는 도서관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실 그간 도서관은 모든 주제의 도서를 그저 망라적으로 서가에 배치하는 것을 주된 업무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요즘 이 틀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큰 틀인 주제분류는 아마 변함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지역, 테마, 주 이용자 층, 이슈 등을 기반으로 한 큐레이션은 도서관에서도 더욱 성행할 것 같다. 나를 비롯한 사서들이 이 분야를 좀더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또한 우리가 많은 자료들을 두루 섭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보면, 하바는 단순히 1차원적인 책 선정을 하지 않는다. 고객들을 면밀히 살피고, 직원들과 치열한 회의를 거치면서 창의적으로 책을 배열한다. 사실 1차원적인 책 선정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나도 북큐레이터에 관심이 있어서 이 책을 집어들었는데, 많으면 몇 만 권의 책을 선정해야 하는 직업이다보니 접해야 하는 책들도 엄청나다. 책을 좋아했던 하바의 부모님은 하바가 동네 책방에 가면 무슨 장르든 그가 고르는 책을 외상으로 살 수 있도록 책방에 얘기해 두었다. 그 덕분에 장르를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섭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을 계속적으로 접하면서 의뢰 받는 책장을 채워가고 있다.

            

책은 스스로가 엄청나게 잘 떠드는 물건이 아닙니다. 
종이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읽은 사람이 소개해 나가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책의 목소리를 전달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294 p.


책의 배열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는 북큐레이터. 책을 통해서 책장을 빛나게 하고, 주변을 빛나게 하고, 책 읽는 사람을 빛나게 하는,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직업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들이, 그리고 이런 재밌고 감각있는 작업들이 활발히 일어나길!






* 남겨두기


"돈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 봤다고 한마디로 말하기보다는, 여러 책을 조합해 보여줌으로써 무언가 단정하지 않고 이런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닐까 하는 분위기를 전하려고 했습니다. 몇 백 권의 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이런 걸 말하고 싶은 거구나' 하는 것들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 47 p.


"기존의 서점처럼 상식적인 분류를 기준으로 한 책장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 즉 책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책이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는지, 어떤 세계관을 보여주는지 알려 주어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 책장에 관심을 갖는다. 책장에서 '책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려야 한다." - 87 p.


"소설, 만화, 요리책 등 여러 책이 섞여서 진열되었는데,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 정도였습니다. 책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인데 맛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서점을 돌아보니 초콜릿이나 가볍게 집어 먹을 수 있는 먹거리도 팔고, 커피도 마실 수 있었어요. 그는 그곳을 서점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여행과 풍부한 체험, 즐거움을 주는 장소로 만들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는 책을 배열하는 책장 디자이너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09 p.


"언뜻 보면 관계없을 것처럼 보이는 말이 가까이 있거나 바로 옆에 붙어 있으면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언가가 번뜩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나아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떠오르게도 하며, 뭔가를 느끼게도 한다. 언어와 언어의 교배, 조합에 의한 '화학 반응'같은 것일까." - 152 p.


"매출 목표도 중요하지만, 결국 누군가에게 특별한 한 권이 될 수도 있는 책을 정성스럽게 소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한 방법입니다. 그리고 인테리어나 홍보 방법을 포함한 표현 방법을 생각합니다. 책은 사지 않으면서 스마트폰 통신요금은 아낌없이 1만 엔(약 10만 원)을 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동기로 책을 사게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 189 p.


"책은 본래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생명을 갖는다. 중후한 이야기이든 가벼운 에세이이든, 아니면 얇은 사진집이나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 또는 만화책 등에도 저자가 작가의 생각과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평범한 내용이든, 무명의 저자가 쓴 것이든, 그 책을 읽고 재미있다거나 좋게 평가해주는 독자와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책은 그 독자에게 가장 좋은 책이 될 수 있다. 베스트셀러 옆에 전혀 알지 못하는 책이 자연스럽게 진열된다. 하지만 당당하다. 광채가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다. 먼지투성이로 어느 고서점 구석에 묻혀 있었을 법한 책이 하바에 의해 양지로 호출되어, 다시 생명의 빛을 발산한다." - 291 p.


"출판의 양적 증가에 따라 책의 문화는 오히려 야윈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공급자의 사정이 우선되면서 지금까지의 분류법으로 책장에 책을 진열하는 것만으로는 책과 독자가 보다 좋은 만남을 기대하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독자가 책을 들게 하고 사게 할 것인가. 책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각자가 방법을 모색하면서 해결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은 때로 독자를 세계의 끝까지 데리고 간다. 몇 억 광년의 저쪽까지 생각을 데리고 간다. 그런 책이 세계 여기저기에서 읽혀지기를 기다린다. 읽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따. 세상에는 읽히지 않는 책이 많다. 일생을 살면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책의 양은 제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좋은 책'을 한 권이라도 더 많이 만나기 바란다." - 294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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