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선, 『도서관의 말들』
지금까지 시간들을 살아오면서 내가 좋아해 온 공간이 3곳 있다. 첫째는 공항, 둘째는 방송국, 셋째는 도서관. 공항은 여행 전의 설렘이 느껴져서 좋은 건지, 아니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걸 여전히 신기해마지않아 좋은 건지 모르겠다. 방송국은.. 내 이전 꿈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도서관은, 도서관은 나에게 그곳에 있는 책들을 모두 내 책인 것마냥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주기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사방이 고요한 공기 속에 책상에 앉아 책 속에 파묻혀 나와 책만이 아는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묘미. 그러고 보니 감사한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속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니!
저자도 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참 좋아하나보다. 나와 같은 사서로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도서관과 책에 대해 말하는 책들에서 글귀를 인용해 거기에 본인의 한 마디씩을 덧붙인다. 인용한 글귀들을 저자는 '도서관의 말들'이라고 부른다.
"그런 내게 도서관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었다. 인격을 갖춘 대상이었다. 따뜻하거나 시원한 실내 온도는 도서관의 체온이었고, 서가에 꽂힌 수많은 책 속 좋은 문장은 도서관의 말이었다." - 171 p.
읽다 보면 도서관이라는 공간의 매력을 더 느끼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당장 가까운 도서관을 검색해서 책을 골라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저자가 도서관에 대해 느끼는 감정처럼 모든 사람들도 도서관이 친구처럼, 이웃집 이모 삼촌처럼 심심할 때 언제든 갈 수 있고, 닿을 수 있고, 조용히 환영을 외쳐주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세상살이 시름이 깊어 마음이 시름시름 앓을 때, 어떤 '도피처'로서 도서관을 떠올리게 되면 좋을 것 같다.
읽고 싶은 책 리스트가 많이 추가된 건 추가적인 이득! 이런 책에 이런 도서관 내용이 있었구나 싶은 새로운 발견도 있었다. 100개의 텍스트를 언제 다 읽고 수집하셨을까, 하며 대단함을 느낀다. 같은 사서로서 공감되는 에피소드들도 많았고, 내가 처음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고 똘똘한 사서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이렇게 이렇게 해야지, 했던 그 마음이 변치 않게, 변하기 직전인 적절한 시점에 읽은 것 같다. 지금은 휴직 중이지만, 복직 전에 한 번 더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야지.
* 남겨두기
"사서 교육원에서 공공도서관경영론을 가르치시던 한 교수님이 사서가 되고 첫 명함을 만든 이야기를 해 주셨다. 교수님은 기관명과 로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 랑가나단의 도서관학 5법칙을 새겨 넣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명함을 내밀었다고 하셨다. 그렇게라도 전하고 싶었다고, 내가 일하고 있는 도서관의 목적,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도서관의 존재 이유를." - 21 p.
"아차 싶었다. 나는 남편의 말을 오래도록 음미했다. 책을 안 보던 사람이 이 서비스로 한 권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건 이용자에게 좋은 일이고, 책을 안 사던 사람이 이 서비스로 한 권의 책을 산다면 그건 지역 서점에 좋은 일이고, 이 좋은 일을 도서관이 앞장서서 하겠다는데 나는 늘어날 사서의 업무만 걱정하고 있다니 이 무슨 오지랖인가. 걱정을 정말 '사서' 하고 있었다." - 83 p.
"도서관의 좋은 점은 바로 이거다. 운명의 책을 발견하기 위해 기를 쓰고 헤집지 않아도 우연한 만남이 언제든 기다리고 있다. 책방 주인, 서점 상품기획자, 출판사 마케터 같은 중개인 없이 내가 직접 만나는 나만의 책은 얼마나 애틋하고 특별한가. 게다가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스트레칭을 하다 보면 어느새 통증도 완화되고 덩달아 울적했던 기분도 나아진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다리가 붓고 목과 허리가 아파도 달리 갈 곳이 없어서 서가 사이를 산책했는데, 이제는 아플 때 생각나는 곳이 도서관 서가가 되었다." - 89 p.
"여러 가지 이유로 문화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필요한 정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도서관은 책을 보는 곳 이상의 역할을 한다. 영화와 음악을 즐길 수도 있고,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로 세계 곳곳을 누빌 수도 있다. 일을 구하기 위한 각종 자료를 얻을 수도 있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도서관은 세상을 보는 창이고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다. 이 모든 것을 어떤 이는 손가락 하나로 앉은자리에서 뚝딱할 수 있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삶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이 더 많다. 도서관은 세상 모든 사람의 균등한 기회이자 기반이다. 이것이 이 불균등한 세상에서 도서관을 더 많이 짓고 더 많이 알려야 하는 이유이다." - 97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