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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Feb 12. 2020

도서관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책

수전 올리언,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학부 시절, 서지학 수업을 들으면서 『책의 적』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쇄업자이자 애서가인 윌리엄 블레이즈는 이 책을 통해 사랑하는 책을 망가뜨리는 못된 적들을 고발한다. 여러 가지 '적'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책의 적으로 가장 먼저 '불'을 언급한다. 종이로 만들어진 책이 불에 약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리고 그런 책이 수백만 권 모여 있는 도서관은 불에 가장 취약한 공간일 터다. 그런 도서관에서 큰 불이 났다면? 그리고 그 불이 수많은 책들을 앗아갔다면?


1986년,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큰 화재가 발생했다. 이 책은 이 화재로부터 시작된다. 도서관에 있던 이용자들은 모두 황급히 대피하고, 책들은 모두 불에 타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불을 끄기 위해 사용된 물로 젖어 손상됐다. 사서들은 맹렬하게 치솟는 불길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시민들은 금방이라도 모든 것이 사라질 것만 같은 도서관 앞에서 안타까움으로 서 있었다. 그들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던 도서관이 사라진다니,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저자는 이 사건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도서관을 주로 이용했던 이용자도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도서관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보고, 자신의 책마냥 들고 나올 수 있다는 것에 설렘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 도서관의 화재 사건을 알게 되고 누가 불을 냈는지를 조사해 나간다. 그리고 현재 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들과 대화하며 도서관의 여러 가지 업무들을 만난다. 그 속에서 독자들은 도서관이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번은 가스 저장소에서 누출사고가 일어나 주민들이 두통, 호흡곤란을 호소했는데, 그때 도서관은 위기 관련 정보센터가 되어 사서들이 주민들을 도와 가스 회사에 제출할 비용 청구서 작성과 의료비 상환 신청을 도왔다. 도서관의 제한 없는 역할, 봉사의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이 책에 많이 등장한다. 읽다 보면 '사서가 이런 일까지도 해?' 하는 일들이 제법 나온다. 사서인 나도 '도서관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해?' 싶은 일들이 있기도 했지만, 중요한 사실은 지역사회에서 공공도서관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눈에 띄게 보이는 일들부터, 임산부들이 자주 찾는 책들은 청결을 위해 새 책으로 자주 교체한다는 소소하지만 충분히 감동적인 서비스들까지 모두 도서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이든 잃어봐야 그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는다는 흔한 말처럼, 모두의 도서관은 화재라는 큰 위기 앞에서 시민들과 기업들, 사서들의 애정을 듬뿍 받으며 복구되었다. 저자는 로스앤젤레스 공공도서관의 화재 사건을 통해서 이 공공도서관을 이끌어 온 과거의 수장들부터 현재 일하고 있는 사서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이 얼마나 도서관을 위해 헌신했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와 현재의 말들을 이어주는 책, 이 책들을 보관하고 공유하며 옛 사람에게서 미래의 사람에게 전해주는 도서관의 소중한 역할이 새삼 돋보인다.




처음에 언급한 책인 『책의 적』은 또 다른 적으로 '무관심'을 언급한다. 요즘 주변에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을 잘 찾아보기 힘들다. 책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도서관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무관심도 도서관의 적인 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도서관의 예산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은 언제나 쪼들리는 예산으로 생활한다. 도서관이 뭐 딱히 하는 것도 없는데 무슨 돈이 그렇게나 많이 필요하냐며. 제대로 관심을 갖고 도서관을 본다면, 그 말이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큰 수치가 되는지 알게 될 거다. 도서관의 미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지금도 전 세계의 도서관들은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며 저마다 새롭게 거듭나기를 꿈꾸며 노력하고 방안을 찾고 시도하고 있다. 많은 이용자들이 사랑해마지않는 공간, 내 것이 아니지만 내 것처럼 느껴지는 아늑하고 도움 되는 공간이 되기 위해 사서들은 오늘도 애쓰고 있다.



* 남겨두기


"책은 일종의 문화적 DNA, 한 사회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나타내는 부호다. 한 문화의 모든 경이와 실패, 승리자와 악인, 모든 전설과 아이디어와 계시들이 책에 영원히 남는다. 이런 책을 파괴하는 행동은 그 문화와 역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과거와 미래의 연속성이 파열되었다고 말하는 강렬한 방법이다. 책을 뺏는 것은 사회가 공유한 기억을 뺏는 것이다. 꿈꿀 수 있는 능력을 빼앗는 것과 비슷하다. 책을 파괴하는 것은 죽음보다 더 나쁜 무언가를 선고하는 행위다. 그 문화가 아예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 131 p.


"모든 사람에게 도서관을 개방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문제다. 많은 사람은 도서관에서 지저분하고 불안정한 사람과 좁은 구역에 같이 있어야 할 수도 있고 따라서 불편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도서관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기관의 역할은 할 수 없다." - 301 p.


"도서관은 고독을 누그러뜨리기에 좋은 곳이다. 완전히 혼자일 때도 수만 년 동안 계속되어 온 대화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 책장에서 책을 뽑아보지 않아도 그 안에서 당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기다리는 목소리가 있고, 말을 하면 누군가가 들어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나를 늘 놀라게 하는 것은 그런 확신이었다. 가장 이상하고 특이한 책도 그런 무모한 용기, 자신의 책이 읽혀야 할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을 품고 쓰였다. 나는 그런 믿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어리석고 용감한지, 그리고 얼마나 필요한지, 이런 책들과 원고를 모으고 보존하는 것 또한 얼마나 희망으로 가득찬 일인지에 감동을 받았다. 이런 믿음은 모든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우리를 서로 이어주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노력은 소중하다고 선언한다." - 377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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