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 『아무튼, 메모』
내가 또 메모, 기록 중독자인데, 마침 아무튼 시리즈에서 이 책이 나왔다. 안 볼 수가 없지 않은가. 저자는 메모를 사랑하는 CBS 라디오 프로듀서. 대체 메모를 얼마나 좋아하길래?
읽고 나니 저자의 메모는 내가 생각한 그런 메모는 아니었다. 단순한 투두리스트라거나 오늘 한 일, 약속 같은 것들을 적는 메모가 아니라,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자신과의 대화에 가깝다. 변화의 동기에 등을 밀어줄 수 있는 문장들을 적는다거나, 사랑하는 것들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생각한 것들을 적어 둔다. 그렇게 적어둔 글귀들을 저자는 꼭 붙들고 다녔다고 한다. 지하철역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 안에서, 신호등 앞에서.
"내 눈 두 개는 세태에 영합하면서도 아닌 척할 줄 아는 나의 영리하고 쩨쩨한 자아에 깊숙이 물들어 있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메모의 화신'이 되었다. 나 자신을 위한 메모를 했다. 문구점에 가서 가장 두꺼운 노트를 몇 권 샀다. 거기에 책을 읽고 좋은 문장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에게 도움이 될 생각들을 꿀벌이 꿀을 모으듯 모았다." - 34 p.
저자는 세상을 더 사랑이 많은 곳으로 만들기를 원하고, 자신도 그만큼 매일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수동적으로 살다가는 사회에 매몰되어 살아가기 일쑤인 이 세상에서 능동적인 부분을 조금이라도 늘려 자신의 삶이 보다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삶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인 것 같다. 이를 위해 저자는 메모를 한다. 메모하는 그 시간 동안 그녀는 자신이 바라는 삶의 시간을 산다.
이렇게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하고, 그것을 계속 읽으며 자신의 것으로 살아 내려는 저자의 모습이 나에게는 묵상을 열심히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내가 보낸 오늘 하루의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나와 대화하고, 부족한 것들을 적고, 경계와 위로과 되는 말씀구절을 적고,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히 꺼내어 보는 명 구절. 나에게는 개인적으로는 말씀이 그런 구절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예전 대학생 때 말씀구절이나 신앙서적을 읽고 기억하고 실천하고 싶은 구절을 적어두고 언제 어디서든 펴 보며 묵상했던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살지 않고 자기만의 힘과 생각을 키우는 공간인, 메모장을 갖기를 원하는 저자의 마음이 읽는 내내 느껴지는 책이었다. 결국 그녀가 말하는 메모는, 생각의 도구, 성장의 도구, 관심의 도구, 사랑의 도구가 아닐까. 메모장을 갖는 것을 추천하는 그녀는 결국 사회에 생각과 성장, 관심과 사랑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 남겨두기
"이게 메모를 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무심코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좋은 것이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에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그런 방식으로 살면서 세상에 찌들지 않고, 심하게 훼손되지 않고, 내 삶을 살기 위해서." - 36 p.
"'메모같이 사소한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우리는 항상 사소한 것들의 도움 및 방해를 받고 있지 않냐고. 강아지가 꼬리만 흔들어도 웃을 수 있지 않냐고, 미세먼지만 심해도 우울하지 않냐고, 소음만 심해도 떠나고 싶지 않냐고. 그리고 또 말하고 싶다. 몇 문장을 옮겨 적고 큰 소리로 외우는 것은 전혀 사소한 일이 아니라고. '사소한 일'이란 말을 언젠가는 '자그마한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어질 것이라고." - 41 p.
"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이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부족하다. 이 세상엔 우리의 관심을 원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존재하니까. 우리는 스치듯이 살아가는 방법을 이미 많이 배웠다. 마치 스마트폰의 기사를 검색하는 손가락의 가벼움처럼. 그러나 무엇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가슴 아리게도 '설레는 느낌'도 없이 살게 된다. 삶은 시들하다.(시들한 사람의 특징. '아무것도 관심 없어!')
그러나 메모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리가 없다. 메모는 절대적으로 나 자신과 상관이 있는 일이고 내가 뭔가를 중요하게 여기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 48 p.
"이렇게 메모를 하면서 노트가 가득 차면 열심히 산 것 같았고 안심이 되었다. 메모는 수많은 밤, 나의 일부였고 기쁨이었다. 메모도 책 읽기나 글쓰기처럼 자발적으로 선택한 진지한 즐거움, 놀이의 영토에 속한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을까를 스스로 결정하는데 왜 즐겁지 않겠는가?" - 63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