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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Jan 27. 2020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 1년

조민진,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평생 일을 하다가 1년 동안 합법적으로(?) 잠깐 쉬는 기분이란 어떨까? 나도 지금 (육아)휴직 중이긴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 내리 일한 5년 동안 한 번쯤은 아무 생각 없이 한 달 만이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저자는 JTBC 기자로 일하면서 1년이라는 해외연수의 기회를 얻고 런던에서 생활했다. 그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만 1년을 꽉 채우자는 생각으로 임했고, 이 책은 그런 그녀의 기록이다.


저자가 미술작품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이 책 내용의 대부분은 그림을 바탕으로 서술된다. 나는 그림 쪽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이렇게 일상생활에 녹아든 그림을 일상의 이야기와 함께 펼치니 흥미로웠다. 그림도 삶에 이런 의미를 주는구나, 이런 설명의 그림이라면 나도 내 방에 걸어놔도 좋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만들었다. 그림을 너무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읽는 내내 생각했던 건, 만약 내가 연수를 간다면, 나는 그림 대신 음악에 푹 빠졌을 것 같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로 가고 싶군.. 읏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으로 가득 채운 1년의 자유로운 연수 생활. 책은 아이를 키우며 집 안에 박혀있는 나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다. 본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집순이 of 집순이라서 외국에 나가는 건 별로 안 좋아한다. 그것보다 나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던 건,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모으고 싶은 것, 즐기고 싶은 것, 체험하고 싶은 것들을 원 없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누렸고, 또 그걸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 


만약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는 1년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하다. 나는 아마 책, 또 책, 그리고 책, 가끔 음악.. 이지 않을까. 




* 남겨두기


"그림은 내 전공 분야나 하는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는 주로 정치부나 사회부에 소속된 기자였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취재라면 문화부 장관 하마평이나 대통령 해외순방 행사 정도였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 전공이나 일이 그림과는 전혀 무관했기 때문에 마냥 그림을 좋아한 것이다. 그림 에세이를 읽고 화집을 보고 전시회를 가는 것은 모두 내가 힘든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이었다. 잘 몰라도 되고, 잘하지 못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영역이었다.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순수한 관심사가 있다는 건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 98 p.


"나는 책을 '추억의 사진'으로 여긴다. 책을 산 날의 관심과 목적, 기분이 내가 구입한 책에 오롯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함부로 버릴 수가 없다. 예를 들어 2019년 3월의 어느 날, 런던의 브릭레인 서점에서 구입한 책들의 제목을 죽 살펴보면 그즈음 내가 런던과 영어, 파리와 그림, 행복 등에 관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책을 사는 행위를 통해 나는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발견하게 된다. 혹시라도 비용을 따지거나 '언제 다 읽겠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사지 않고 그냥 서점을 나온다면 그날의 관심을 기록하거나 추억을 남기는 일과도 영영 이별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내게는 책을 읽는 것 이상으로 책을 사는 행위가 중요하다. 한아름 사들고 온 책을 쌓아두고 종일 여유를 부리며 이 책 저 책을 읽는 행복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 247 p.


"책이라면 얼마든지 더 많이 갖고 싶다. 내가 고른 책은 나의 욕망이고, 책을 사는 건 그 욕망을 사는 일이며, 구입한 책을 읽어내는 건 욕망을 실현하는 일이다. 설령 현실이 미처 욕망을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꿈꾸는 일마저 거두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나는 언제 어디서나 계속 책을 산다." - 250 p.


"어릴 때부터 닮고 싶은 누군가를 늘 동경했던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닮고 싶은 존재'가 될 수 있기를 바라게 됐다. 다른 사람을 닮고 싶어 하는 건 욕망하는 일이지만, 누군가가 나를 닮고 싶어 한다면 그건 아마도 성공의 결과일 것이기 때문이다." - 320 p.


"중요한 건 우리 삶이 기사보다는 문학에 가깝다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문학이 감동을 주기 어렵듯 감정을 전달하고 표현하는 일에 서툰 삶도 풍요롭기 어렵다." - 34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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