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모든, 『모두 너와 이야기하고 싶어 해』
'이 사람이랑은 함께 있기 참 편하다'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대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이다. 온 얼굴로 경청해주는 사람들. 이야기하는 나의 목소리보다 피드백 목소리가 더 커서 나보다 더 격하게 기분을 함께 느껴주는 사람들. 반면에 당연히 이런 사람들도 있다. 내가 이야기를 하는데 들어줄 생각이 없다거나, 들어준다 해도 딴청을 피우며 고개만 대충 끄덕거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는 별로 함께 있고 싶지 않다. 내 이야기에 집중해줬으면 좋겠는데, 안 그런 것 같으면 그냥 가만히 입을 꾹 닫아 버리게 된다. 아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들 그런 마음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잘 들어주는 행위는 사랑의 행위와도 같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몹시도 바쁘게 살던 주인공의 휴가 3일, 그 며칠 동안 일어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휴가의 시작 하루 전, 과외 학생이 꺼내어 놓기 시작하려던 속상한 마음에 과외교사인 주인공은 자신의 귀를 닫음으로써 학생의 입도 함께 닫아버린다. 누군가의 입이 닫혔다는 것은 마음이 닫혔다는 말과도 같다. 선생님에게 털어놓아 무게를 조금이나마 내려놓으려던 속상한 마음을 그대로 안고, 아니 그 무게의 배는 더 되는 속상함을 더 떠안고서, 학생은 연락 두절이 된다.
그 이후 시작된 주인공의 휴가. 갑자기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TMI를 대방출하기 시작한다. 안경점에서 만난 주인, 남산 산책길에서 만난 부녀, 목욕탕에서 만난 세신사 등.. 주인공과 전혀 친한 사이가 아니지만 어느새 자신들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줄줄 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땐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이제 꺼낸, 엄마.
어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지극히 평온한 3일 간의 일상을 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저자는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런 것이 진짜 문학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얼마나 살뜰하게 들어왔나 생각해 보게 된다. 피곤하고 지쳤는데 이 사람은 나한테 별로 알고 싶지 않은 Too Much Information을 왜 말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평생 안 볼 나랑 관계 없는 사람의 이야기까지 왜 듣고 있어야 하나?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특히 엄마의 이야기 속에서 그랬던 게 많이 생각난다. 이제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다 잘 귀기울여 봐야겠다. 시공간적으로 나와 아무리 먼 이야기더라도, 지금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지금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