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나던 등원&출근길이 폭우로 통제되어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차에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우리는 나와 너, 그러니까 엄마와 아들이다. 게다가 그날은 아들의 세 번째 생일. 평소라면 2~30분이면 도착했을 길. 기약없이 움직이지 않는 차에서 이러다가 아들이 짜증부리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과, 늦으면 어린이집에서 생일파티도 못 받겠네, 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채웠다. 그덕에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졌다.
걱정과는 다르게, 아들은 잘 참아주었다. 도리어 통제된 길로는 못 가서 평소와 다른 길로 갔더니 "엄마, 새로운 나무들이네? 알록달록 나무 있는 길로 가줘서 고마워."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조바심낸 나와는 다르게 아들은 지겨운 차 안에서도 새로운 바깥 풍경을 나름대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즐기던 것이 아니라도 해도 기특하다. 엄마의 기분을 헤아려준 것이므로. 그 따스한 말을 들으니 내 마음도 환해졌다. 그 전까지는 전혀 보이지 않던, 맑아져 새파래진 하늘도, 그 속에 떠 있던 깨끗한 뭉게구름도 드디어 눈에 넣을 수 있었다. "유현이 생일이라 하늘도 맑고 날씨가 좋은가봐!" 라고 했더니 "그런가봐!" 라며 맞장구 쳐 주던 아들.
때때로 아들이 어쩌면 나보다 더 성숙할 때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짧은 인생이지만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면 아직 때가 묻지 않아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또렷하게 볼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삼십 여년을 살았다고 마음과 생각에 먼지가 잔뜩 낀다.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다 가려진 채로 산다. 어쩌면 아들은 그런 나의 오염된 마음을 구조하러 온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이야기하면 맑아지는 마음. 웃는 얼굴만 봐도 정화되는 마음이 보여주듯이.
그 다음 날에도 여전히 날씨가 좋지 않아 등원길은 무지 길었지만, 내가 "유현이 고생했어." 하니까 "응, 엄마도 고생했어." 라고 말해주었다. 고작 3살짜리가 고생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를 테지만 힘들었던 게 끝나고 하는 말임을 느꼈나보다. 예쁜 아들의 말은 고생을 고생이 아니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 아들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이들도 이 순수한 말의 기록에 마음이 맑아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아들이 커서 더 이상 이런 아름다운 말들을 꺼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앞선 아쉬움 때문에 아들의 말들을 적어두려고 한다. 만 4세가 되는 동안 수없이 많은 감동을 주거나 기상천외한 말들을 많이 했는데, 벌써 서서히 잊혀지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구슬이 구르듯 알알이 예쁜 말들을 최선을 다해 예쁘게 엮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