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능력만 키우는 대한민국 교육
“엄마, 요즘 수행평가가 너무 많은데 전부 외우는 것뿐이야. 심지어 체육도 암기야”
“응? 체육이 왜 암기야?”
“어떤 체조를 외워서 똑같이 하는 게 수행이거든 “
대한민국 교육이 여전히 암기와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알았지만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싶다. 어쩌면 작년에 미국교육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 심각성을 이 정도로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미국 가기 전에도 웬디가 중2 때 치렀던 수행평가 내용을 보고 기가 막히긴 했다. 수학 수행평가의 경우 20문제를 주고 이 문제를 20분 안에 풀이과정까지 다 쓰는 것이었다. 그럼 1문제당 1분 만에 풀이과정까지 다 써야 시간 내에 할 수 있다는 얘기다. 20문제는 미리 프린트해서 나눠준다. 아이들은 그걸 미친 듯이 외운다. 생각은 필요 없다. 그저 주어진 시간 안에 외운걸 빠르게 써야 할 뿐이다. 시험이 끝난 후 아이의 소감은 팔과 손가락이 아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평가가 대체 아이들의 수학 학습능력 향상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웬디는 미국에서 중학교 한 학기, 고등학교 한 학기를 짧게 경험하고 왔지만 우리나라 교육이 뭔가 이상하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도록 도와주는 느낌이었다면, 한국에서는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점수를 못 받게 할까를 고민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줄 세우기를 하려면 변별력이 있어야 하고, 변별력을 만들어내려면 선생님들도 문제를 꼬고 또 꼬아서 학생들이 함정에 빠지도록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항상 제한시간이 따라붙는다. 뭐든지 시간 안에 빨리 해내야 한다. 게다가 표현하는 방법도 자유롭지 못하다. 정해준 방법으로 정해진 내용대로 해내야만 한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대한민국 교육은 캘리가 30년 전에 받았던 그 교육프레임에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캘리는 귀국하면서 중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아이들이 어차피 공교육을 받을 거라면 입시교육의 최전선에 있는 학군지로 들어가 부딪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번째 중간고사가 지난 시점에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름 생각이 통통 튀는 아이들로 키워왔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양의 암기만 소화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 시스템 안에 넣어두는 게 맞는지 자꾸만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캘리가 지금까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수업방식 때문이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빠르게 풀어야 하는 스킬만 알려주는 방식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런데 일반 고등학교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해진 답을 외워야만 하는 공부가 대부분이다.
물론 공부에 어느 정도의 암기는 필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이제 AI가 모든 것을 처리하는 시대가 코앞인데 깊은 사고 없이 수동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지식들이 과연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지 모르겠다.
이런 우리나라의 주입식 암기교육에 대해 주변 엄마들도 답답해하는 걸 많이 봤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이 그런 걸 어쩌겠느냐. 우리나라에서 대학 가고 취직하려면 거기에 맞춰서 공부할 수밖에.라는 결론으로 마무리가 되곤 했다.
누가 봐도 좋은 교육시스템이 아닌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
그럼 울며 겨자 먹기로 이 퇴행하는 교육을 반짝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시킬 수밖에 없는가?
우리나라에서 대학 안 가고, 우리나라에서 취직 안 한다면?
캘리는 방법은 그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가 대학입시를 위한 기능만 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학교 다니는 걸 너무 좋아하니 당장 다른 교육기관을 찾아볼 마음은 없다. 하지만 수능과 내신을 위한 주입식 교육으로 중고등 시절을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캘리는 아이들이 책을 읽고, 지식을 확장하고 또 책을 읽어서 깊이 들어가고, 생각을 정리해서 쓰고 토론하는 그런 교육에 시간을 많이 쓸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한다. 또한 아이들이 미국에서 1년 지내면서 영어로 대화하는 것에는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그 감각만큼은 유지해 주기로 했다. 그래서 원어민 화상영어를 일주일에 2번 45분씩 시작했다. 아이들이 그런 수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걱정이었는데 샘플 수업을 받고 나더니 오랜만에 영어로 떠들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는 얘기를 해줬다.
듣기 평가를 위한 공부가 아니다. 주어진 주제에 대해 본인 생각을 이야기하고 선생님의 생각도 들어보며 토론을 하는 그런 수업이 목적이다.
한창 교과공부 선행을 해야 할 중고등 나이에 화상영어라니... 누가 들으면 공부 포기했냐는 소리를 할 것 같아서 어디 가서 얘기는 못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입시교육은 너무 많은 에너지와 비용이 들어가는 것 같고, 가장 중요한 건 이러한 수동적인 공부에 아이들을 적응시키고 싶지가 않다.
남들 다하는 방법으로 똑같이 살다가는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