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셉션 + 블레이드 러너 + 지구온난화 - 일본 - 재미 =
SF 장르의 영화들은 저마다 영화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핵심 주제가 있다. 그런데 SF의 세계관의 방대한 배경을 설명하기에는 2시간 남짓의 영화는 너무나 짧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스타워즈를 비롯한 SF 영화들을 시작하자마자 내레이션을 삽입하며 관객들에게 배경을 주입시키고 중심 소재를 초반부에 등장시켜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레미니센스도 딱 여기까지는 성공했다. 해수면의 급격한 상승으로 도시가 물에 잠기고, 전쟁이 발생했으며 치안이 불안정한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잡았고 '레미니센스'라는 공상과학 기계를 등장시켜 중심 소재로 삼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나치게 자세한 설정과 조금 있으면 저 여자(와츠)가 총 쏜다라고 대놓고 설명하는 초반부는 곧 벌어질 전개를 너무 뻔하게 만들었다. 가장 정확하고 빠르게 배경을 설명하려다가 영화의 세계관에 대한 흥미를 금세 잃게 만들었다.
- 그래서 전쟁 때 무슨 일
그래서 다른 SF 영화들은 초반부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하며 조금씩 전달한다. <레미니센스>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방법을 사용했다. 전쟁이나 전쟁 중에 있던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삼가고 참전군인이었던 휴 잭맨의 행동과 참전 군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전쟁의 중요성이 은연중에 드러나게 한다. 그런데 작중에서는 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쟁은 이미 끝났고 그로 인한 여파가 있지만, 이야기에 하등 영향이 없다. 심지어 넌지시 드러나야 할 핵심 스토리는 배우들의 입으로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전쟁을 맥거핀으로 활용하지 말고 좀 더 중심 스토리에 가져와 PTSD와 전쟁고아 등을 이야기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 오페라 립싱크 불륜녀
여주인공 메이를 연기한 '레베카 페르구손'과 '휴 잭맨'의 조합은 어쩐지 익숙하다 싶었더니 휴 잭맨과 위대한 쇼맨에서 오페라 립싱크 불륜녀로 이미 호흡을 맞춘 바가 있다. 그런데 그녀의 정체도 너무나 허무하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남자에게 접근해서 만남을 가졌지만, 마음만은 진실이었다.'라는 너무나도 허망한 클리셰는 이미 휴 잭맨이 영화 '울버린'에서도 써먹은 바가 있다. '그래도 알고 보니 착한 녀석이었어' 전개는 더 허망하기 그지없다. 메이가 '노래 잘하고 예쁘고 신비로운 여자 '라는 정체성에서 못 벗어나서 생긴 일이다. '메이는 과거에 마피아에게서 마약을 훔치고, 보스의 여자로 살았고, 도둑질까지 했지만 결국에는 아이를 구하는 착한 여성이다. '라는 전개가 납득 가능한지 의문이다.
- 과거란 마약
제목이자 작중 핵심 소재인 레미니센스의 뜻은 '추억'이다. 보고 싶은 과거만을 보며 추억하는 기계는 인셉션의 기계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계도 주인공이 그렇게 비판하고 혐오하는 마약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메이가 마약을 했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싫어하더니 결국 주인공은 과거로 가는 마약을 택한다. 어처구니없는 결말이다.
- 찢어진 책
이 영화는 몇 챕터가 빠진 소설책이다. 전개 상 꼭 필요한 설명 (닉이 마약을 혐오하는 이유, 결국 과거를 선택한 이유, 메이가 저런 인생을 살게 된 이유)는 설명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고, 넌지시 보여줘야 할 인물들의 배경은 구구절절이 설명하며 신비로움을 없애버렸다. 아마 리사 조이 감독이 드라마 감독 출신이라 긴 호흡의 드라마에서 적용하던 연출 방식을 영화에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한계를 느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