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 야수> 벨과 야수의 자식들은 불행했다.

벨와 야수, 마을의 미래 <미녀와 야수>

by 구삼모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과 실사 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하 듯, 영화 미녀와 야수(2017)도 유럽의 고전 설화를 바탕으로 화려한 비주얼과 뮤지컬을 음악을 첨부하여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고전을 만들어 내었다. 미녀와 야수의 원작은 프랑스의 1740년대 '가브리엘 수잔 바르보 드 빌뇌브 부인'이 그리스의 고전 설화인 프시케와 에로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발전된 유럽의 비슷한 이야기들을 기초로 정리하여 연재하고 역시 프랑스의 '잔 마리 르 프랭스 드 보몽 부인'이 이를 수정하여 1757년 동화로 출판한 것이 원작이다. 미녀와 야수의 설화에 대해서는 중세 유럽은 연애결혼이 아니라 서로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하는 중매결혼이 대다수였는데, 이에 여자들이 못생긴 남편이랑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것을 걱정하는 마음은 이야기 속에서 야수로 형상화되었고 야수의 착한 심성에 벨이 사랑을 느끼는 것은 결혼생활을 하면서 못생긴 남편일지라도 장점을 발견하며 그에 안주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두가지 버전으로 잘생긴 야수

동화의 후반부에 야수의 정체는 원래는 잘생긴 왕자였음이 밝혀진다. 원래 왕자였던 야수는 요정의 저주에 걸려 마을의 백성들에게 잊혀졌고 하인들은 가구로 변했으며 본인은 야성미 넘치는 야수가 되어버렸다. 근데 우리가 대부분 직책이 왕자라고 생각하는 야수는 영화에서는 '프린스'라고 불리운다. 영어 'Prince'는 대부분 한국어로 왕자로 번역되지만, 사실 왕자와 100% 뜻이 일치하는 단어는 아니다. 공작(공국의 왕), 영주를 뜻하는 단어가 되기도 하며 높은 귀족의 아들을 뜻하는 단어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현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공식 직위 중 하나는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안도라의 국가 원수인 안도라 공작(Prince of Andorra)이다. 따라서 '미녀와 야수'의 야수는 왕자라기 보다는 공작 또는 'Prince'의 칭호를 할 수 있는 대영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정확한 배경이 없고 프랑스 지역으로 추정만 되지만 영화에서는 확실한 시대와 배경이 나온다. 벨의 마을은 1740년대 프랑스 남부의 빌뇌브 마을로 나온다. 1720년에 프랑스 남부인 마르세유에서 흑사병이 실제도 유행하였고 이로 인해 근처에 살던 벨의 어머니가 사망했다고 가정한 다음, 원작 책의 출판이 1740년대라는 것을 고려하면 적절한 배경 설정이긴 하다. 그럼 이 시대의 프랑스 남부 지역의 'Prince'는 누구일까?


내 생각에는 야수는 현재도 'Prince'라는 국가 원수의 호칭을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 남부의 모나코 공국(Principality of Monaco)의 공작(Prince)이며 그리말디 가문의 수장으로 가정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모나코의 수도는 바닷가이지만 대충 넘어가자

Monaco-Map.jpg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과 매우 밀접한 모나코
1612년에는 Prince를 자칭하였고, 1642년에는 프랑스의 루이 13세에게 공작 위를 하사 받으면서 제노바령이면서도 프랑스의 보호국이라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그 이후로는 제노바 공화국 내의 자치령으로 남아있다가, 제노바 공화국이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하면서 이곳도 프랑스의 통치를 잠시 받았다. (출처 : 나무위키의 모나코/역사)

모나코는 원래 작은 나라로 이탈리아(제노바 공화국, 사르데나 왕국), 스페인(아라곤), 프랑스 같은 다른 나라의 보호국이 되었다가 억압받았다가, 전쟁이 일어났다가 하는 등 잦은 외침으로 복잡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악역인 개스톤이 원작에서는 직업이 사냥꾼인 것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직위가 대위(Captain)였던 전직 군인인 것도 이런 배경에 설득력이 있다. 아트북에 따르면 12년 전에 포르투갈에서 침공해오자 마을을 방어해서 전쟁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그레이스 켈리와 모나코의 공작(Prince)

현재로서도 모나코는 국무총리를 프랑스 정부의 추천으로 임명하고 군사권과 외교권을 프랑스에게 이양하고 있기에 완벽한 독립 국가로의 지위는 사실상 가지고 있지 못하는 입헌군주국이다. 그래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카지노를 개발하였고 조세회피처로 육성하여 백만장자들이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또한 모나코 공(公)과 결혼 하여 진짜 Princess(공비)가 되어 버린 할리우드의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가 시댁으로 유명하니 그레이스 켈리가 현실판 '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동차도 2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의 마르세유와 모나코 (출처: Google map)

그럼 이런 추론이 가능하다. 벨의 가족은 1720년대 초 마르세유 지역에서 살다가 마르세유 인구의 절반이 죽어나가는 끔찍한 흑사병으로 인해 어머니가 죽고 흑사병을 피해 같은 프랑스 남부 지역에 그리말디 가문이 지배하는 모나코 공국의 한 마을로 이주하여 1740년까지 살아갔던 것이다.


원작에서는 야수가 저주에 걸리는 이유의 설득력이 좀 부족하다. 비 오는 날에 묵을 곳을 청하며 장미꽃을 내미는 노파를 비웃고 거절했다고 노파로 분장한 분노한 요정의 저주를 받아 내면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외면의 아름다움만을 중시한다고 저주를 받았다. 나는 비가 오는 밤에 이상한 할머니가 와서 하루 밤만 재워달라고 하면 무서워서 안 재워 줄 것 같다. 애초에 성에서 파티하는 와중에 늙고 추레한 복장으로가서 재워달라고 하는게 거절 당할줄 알고 벌인일이다.

노파(아가타)=요정역의 해티 모라한

그런데 어차피 영화에서는 영상미를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에 미남 미녀배우들을 캐스팅했고


우리의 아름다움은 내면이 있지만 야성미 넘치는 야수버전과 잘생긴 인간 버전, 반전의 두 모습을 가진 츤데레 왕자가 있고 벨의 배우는 엠마 왓슨이며 노파(아가타)=요정 역의 배우는 사실 예쁘다


라는 반론이 가능할만큼 원작의 주제인 내면의 아름다움을 전달하기에 영화의 영상과 주제는 부합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혹한 세금을 많이 걷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이 영화에서는 저주의 이유로 추가되고 가혹한 세금으로 힘들어하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성안의 사람들과 성의 존재를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마을 주점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는 것도 이해가 된다. 세금을 안 걷는데 나 같아도 춤추고 노래 부르며 술 마실 것 같다. 우연의 일치로 현재 모나코도 경제를 위해 조세피난처로 국가를 육성하여 소득세를 걷지 않는다.


그럼 벨과 왕자가 결혼한 이후에는 행복했을까? 백성들은 어찌 되었을까? 유투버 스크린 정키즈(Screen Junkies)의 '솔직한 예고편(Honest Trailers)'에서는 영화에서 머스킷 총이 등장하며 이는 프랑스혁명이 곧 다가온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프랑스혁명의 연도는 1793년으로 영화의 배경과는 50년의 차이가 있다. 머스킷 총이야 17세기부터 사용되었고 외세의 침약이 잦은 모나코의 특성상 총기 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당시 모나코는 프랑스 왕국의 보호 아래 있었다. 프랑스는 태양왕 루이 14세가 만든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18세기에 매우 강력한 나라였지만 루이 15세가 즉위하고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1740~ 1748년)과 7년 전쟁 (1756~1763년)에서 패배하며 빚을 떠안게 되었을 뿐더러 7년 전쟁으로 대부분의 해외 식민지를 상실해 경제적으로 좋지 않았고 세제 개혁에 실패하여 백성들이 빵을 못 먹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는 프랑스 혁명으로 향하는 밑거름이 된다. 프랑스의 상황이 이러한데 보호국인 모나코의 백성들이 좋지는 않았을 것 추측할 수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그래도 영화의 결말 이후에 야수가 개과천선해서 세금을 가혹하게 걷지 않는다면 그 당시 빈번한 농민 봉기를 피해 공작인 야수와 벨의 시대에서는 그럭저럭 살아남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성에 괴물이 있다고 처들어가는 마을 사람들의 성격으로 보아 세금이 더 가혹해진다면 벨과 야수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을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가 단두대에 올라가는 프랑스 혁명(1793년)이 일어났고 혁명 전후로 각지에서는 농민 봉기가 일어나 영주가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모나코에서도 혁명이 일어나 프랑스 혁명군은 모나코를 장악해 직접 통치를 했고, 그리말디 가문은 공작의 지위를 박탈당하며 프랑스의 일부가 되었다.

혁명군 대장은 개스톤?
프랑스의 기대수명은 현저하게 낮아 1770-1790년 남녀 모두 27.5-30세였다(출처: 대분기, 케네스 포메란츠)

당시의 기대수명이 30세 정도 였다는 것을 볼 때, 귀족임을 감안하더라도 프랑스혁명 때에 60~70대가 되었을 벨과 야수는 이미 사망하고 아들이나 딸이 통치하고 있을 시점이라고 추정된다. 모나코에서 일어난 혁명의 과정에서 프랑스 혁명처럼 왕이나 귀족들이 단두대에 올랐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혁명이나 봉기로 인한 왕과 영주의 운명이 좋지 않은 사례로 이어진 걸 보면 적어도 그리말디 가문인 벨과 야수의 자녀들의 운명이 밝을 것이라고는 추측하기 어렵다. 혁명의 과정이 그러하듯 혁명 이후에도 일반 백성의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았으며 극심한 혼란을 겪는다.


혁명 이후의 모나코는 아래와 같다.

주황색 땅만큼의 땅을 프랑스에게 양도 하였다.
그리말디 가문은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왕국에 붙어 지원을 요청했다. 1814년 나폴레옹 패배 이후 열린 빈 회의에서 사르데냐 왕국의 보호를 받는 조건으로 공국으로 다시 건국되었다이후 1860년 사르데냐 왕국이 군대를 철수한 이후 다시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때 프랑스는 모나코의 영지였던 니스(Nice)를 떼내 갔다. 프랑스의 지배하의 그리말디 가문은 과도하게 세금을 걷자, 멘톤(Menton)과 로크 브룬(Roquebrune) 주민들이 반발했다. 그들은 독립을 선언하며, 사르데냐 왕국과의 통합을 주장했다.이에 프랑스가 강하게 반발했다. 모나코의 샤를 3세(Charles III) 공작은 두 영지를 프랑스에 410만 프랑을 주고 양도했다. 이로써 그리말디 가문이 500년 동안 지배해온 두 영지가 프랑스에 넘어갔는데, 당시 영토의 95%에 해당하는 면적이었다. 이후 모나코 공작은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지 않게 되었다. 그리말디 가문은 이후 카지노 사업을 벌여 그 수입으로 왕실 비용을 대고 있다.
(출처 : 그리말디 가문의 나라, 모나코 / 아틀라스뉴스)


세금을 가혹하게 걷어서 저주를 받았다는 대목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야수의 자손들은 똑같은 역사를 반복하여 야수로 변하는 저주 대신에 95%의 영토를 프랑스에 넘기게 되고 5%에 해당하는 영토만 갖게 되었다. 작은 영토를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하기 위해 야수의 자손들은 카지노를 건설하고 소득세를 걷지 않아 유럽의 조세피난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후 1910년에 시민 혁명인 Monégasque Revolution이 일어나고 1911년, 헌법이 제정되어 입헌군주제가 되었지만 프랑스와의 조약으로 야수의 자손들은 권리를 보장 받았고 현재까지 공작(Prince)의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현재의 모나코 공국

미녀와 야수의 운명과 그 자손들의 운명은 벨과의 결혼 이후 운명은 가혹한 세금을 걷느냐 아니냐 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1. 가혹한 세금을 그대로 걷는다 :
결혼식 때문에 세금은 이전보다 더 걷음
-> 화려한 야수와 벨의 삶
-> 궁핍한 마을 사람들의 삶
-> 농민 봉기
-> 벨과 야수 단두대 행

2. 세금을 줄인다 :
세금은 적게 걷음
-> 농민 봉기 X
-> 벨과 야수는 잘 살음
-> 프랑스혁명으로 벨과 야수의 자손들은 외국으로 도피
-> 나폴레옹의 패망으로 공국으로 복귀
-> 세금을 더 걷으려고 함
-> 시민들의 반발
-> 프랑스에게 영토를 팔아버림
-> 세금을 아예 걷지 않음
-> 남은 돈과 영토로 카지노 산업에 올인
->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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