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에서 벌어지는 밤의 춤판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브뤼셀에 가지 말기를 추천한 다. 오줌 싸는 아이 동상으로 유명하지만, 그게 끝이다. 누군가는 파리에 에펠탑만 있는게 아닌 것처럼, 동상뿐만 아니라 다른 와플 이나 초콜릿을 먹어보는게 중요하지 않냐고 반문하겠지만, 아니 다. 브뤼셀은 갈 필요가 없다. 아니면 암스테르담과 파리를 이동 할 때 기차 시간을 잘 맞추어서 3~4시간 정도 만에 관광을 끝낼 수 있다.
나는 어두워서 거리에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밤에 브뤼셀에 도 착했다. 매우 배가 고팠지만, 숙소가 근처에 식사를 해결할 마땅 한 곳이 없었다. 그렇게 서성이다가 저렴해 보이는 한 가게에 무 턱대고 들어갔다. 들어가니 손님은 전부 아랍계였고, 자기들끼리 떠들던 걸 멈추고 유일한 동양인인 나를 일제히 쳐다보기 시작했 다. 내 존재만으로 얼어붙는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속삭였다.
쫄지말고 침착하게
메뉴판을 봐도 영어가 아니어서 무슨 메뉴인지 짐작도 가질 않 았고 적당히 고기가 있을 것 같은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그리고 나온 것이 향신료를 버무린 소고기구이 같은 것과 빵, 감자튀김, 샐러드의 알찬 메뉴였다. 돌아가는 고기를 칼로 썰어주고 흔한 케 밥의 이미지인 되너(Doner) 케밥과는 다른 종류의 케밥으로 추측 된다. 가격은 음료를 포함해 약 10유로 정도로 유럽 물가를 생각 하면 비싼 편은 아니다. 그렇게 음식이 나오고, 배가 너무 고파서 허겁지겁 먹어 없앴다. 과하게 친절해 보이는 주인이 어색하게 영 어로 맛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 나도 과하게 맛있다고 답했다. 맛 도 괜찮고 양도 많아서 상당히 배부르게 먹었다. 하지만 나는 이 음식의 이름을 아직도 모른다.
세상에서 제일 실망스러운 관광지 1위가 브뤼셀이라는 것이 틀 린 말이 아니다. 브뤼셀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저 조그마한 오줌싸개 동상이 끝이다. 이 곳을 중심으로 와플 가게나 기념품 가게가 붙어 있지만, 벨기에 건물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길도 좁아 사진을 남기기도 어렵다. 와플로 유명한 벨기에이지만 현지의 와플이 특별히 맛이 다르지도 않고 벨기에 와플은 우리나 라에서도 파는 곳이 많다. 물론 특별한 소스와 함께 주는 두꺼운 감자튀김은 매우 맛있긴 하나 저런 감자 튀김은 중부 유럽 어디서 든 먹을 수 있다 .
브뤼셀시(市)도 이걸 알고 있는지 도심 근처에 테마파크를 비롯 한 관광지를 조성해 놓았다. 유명한 랜드마크의 미니어처나 작은 놀이공원이 있긴하나 내가 근처를 지나갔을 때는 사람도 동물도 없는 공허함 그 자체였다. 그래도 브뤼셀 국제 박람회를 기념하는 건축물인 아토미움은 조그만 오줌싸개에 대한 불만을 잊을 정도 로 멋있다. 아토미움이라는 이름처럼, 철의 원자 구조를 본따 만 든 멋진 기념물은 과학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과학이 되는 건축계 의 호접몽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브뤼셀의 밤이 되자 사람들이 오가는 광장 의 곳곳에서 노래를 틀고 춤판이 벌어졌다. 한 광장에는 음악가들 이 연주회를 하고 옆 광장에는 노래를 부르고 또 다른 광장에서는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제일 재밌는 광장에서는 사람들이 장판을 깔고 한 사람씩 나와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 여성이 나오자 그 녀를 위한 음악을 틀어주었고 처음에는 손서리치며 수줍어하더 니, 곧 예상을 깨고 멋진 몸짓과 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볼 것 없는 브뤼셀의 밤에 볼 것을 만들어 준 것은 도시가 아니라 도시 에 사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