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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삼모델 May 05. 2020

런던에서 밥 굶으며 뮤지컬 보기

남자가 뮤지컬에 한을 품으면

사실 내가 런던에 8박 9일이라는 긴 일정을 잡은 이유는 뮤지컬 때문이다. 뉴욕에서 '라이온 킹' 단 한 편만 봤다는 게 너무나도 한이 되어서 런던에서 뮤지컬을 제대로 보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매일 저녁 런던의 모든 극장에서 뮤지컬이 펼쳐지지만, 뮤지컬 좌석은 엄청 비싸다. 그나마 배우들의 얼굴이 보이 는 1층 자리는 적어도 최소 100파운드(15만 원)부터 시작하며 중 앙에 가깝고 앞으로 갈수록 비싸진다. 하지만, 나 같은 가난한 여 행객을 위해 평일 아침 일찍 극장에 줄을 서면, 약 10파운드 정도 의 가격에 맨 앞 좌석이나, 저렴한 좌석을 얻을 수 있는 데이 시트 (Day Seat) 라는 제도가 있다.


- 1일 1식

그래도 여전히 비싼 뮤지컬 값은 나에게 여전히 부담이었고 나 는 뮤지컬을 위해 여행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행 비를 포기하는 대신 나는 '밥을 굶었다'. 영국 슈퍼마켓에는 meal deal이라고 해서 샌드위치+과자+음료 조합을 3파운드에 파는 행사를 한다. 하루에 밀딜 하나 먹고 배고프면 마트에서 할 인 하는 미지근한 콜라를 1.5L씩 마셔셔 배를 채웠다. 식당에서 딱 한 번 식사를 했고 친구가 있을 때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 다. 비가 와서 공원 벤치에 앉을 수 없자 그냥 우산을 들고 걸어 가며 먹기도 했다. 이렇게 절약한 덕분에 6편이나 되는 뮤지컬을 볼 수 있었다.

여장 남자가 나오는거라 예상 못한 내가 바보

- 킹키부츠

처음 본 뮤지컬은 킹키부츠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뮤지컬이지 만, 줄거리나 내용은 전혀 몰랐고 보려고 했던 뮤지컬도 아니다. 비행기 연착으로 허무하게 첼시 스탠퍼드 구장 투어를 날리고 피 곤함으로 아무렇게나 런던 거리를 떠돌며 트라팔가 광장 근처에 서 영국을 맛보고 있을 때, 반짝이로 휘황찬란한 극장이 눈에 들 어왔다. 킹키부츠 극장이었다. 이제 곧 뮤지컬이 시작하기 직전이 였지만, 1층 맨 뒷 자리가 20파운드나 했다. 처음에는 안 보려고 했지만, 허무하게 시간을 날릴 수 없어 보기로 결정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빨간색 여장 남자가 나와서 매우 당황했다. 하 지만 곧 '드래그퀸 로라'의 매력에 빠져들어 즐기기 시작했다. 영 국식 영어에 익숙해지기 전이라 가사가 잘 들리지도 않았고, 1층 맨 뒷자리에 않아서 사람들 머리 사이로 로라를 바라보았을 뿐이 지만, 영국에서 처음보는 뮤지컬에 혼자 신나서 방방 뛰었다

- 알라딘

두 번째로 본 뮤지컬은 알라딘이다. 이미 뉴욕에서 라이온 킹을 봤기 때문에, 디즈니의 

 번째로 본 뮤지컬은 알라딘이다. 이미 뉴욕에서 라이온 킹을 봤기 때문에, 디즈니의 뮤지컬에 친숙해서 선택했다. 아침에 3등 으로 줄을 서면서, 딸을 위해 티켓을 사러 온 레게머리에 문신이 가득한 영국인과 이집트 대사관에서 일하시는 외교부 직원을 만 났다. 셋이서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티켓을 샀다. 오후 2시 반 공연 전까지 근처 내셔널 갤러리에서 시간을 때우고 뮤지컬을 봤다. 그런데 재스민이나 알라딘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지니 혼자의 원맨쇼로 모든 객석을 휘어잡기 시작했다. 배역 단 한 사람이 주 는 무게감과 무대 장악력은 뮤지컬이 진행되는 2시간 내내 유지 되었고 알라딘과 쟈스민만 나오면 지니는 도대체 언제 나오나 기다렸다. 공연 후 같이 줄을 서서 본 사람과 차이나 타운에서 음식 을 포장해 서 오랜만에 햇살이 좋은 트라팔가 광장에서 피크닉을 즐겼다.


-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 극장은 중심지라 사람이 엄청 많다.

세 번째는 사실상 뮤지컬을 보기 위해 런던에 온 이유 자체인 ' 레 미제라블'이다. 알라딘을 본 이후 7시 공연이었다. 가장 기대 했던 뮤지컬인만큼 은 좋은 자리로 보고 싶었고 데이 시트 제도 가 없어서 거금을 들여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영화와 같은 화려함 과 대규모의 웅장함은 없었지만, 세트장의 빙글빙글 회전해가면 서 사람들이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나 도망치는 통로 같은 세세하 고 다양한 배경들을 표현하며 세밀함을 더했다. 게다가 라이브로 듣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은 영화와 비교 할 수 없었 다. 후반부에는 혼자 감격에 차고 눈물을 흘려서 뮤지컬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최고의 뮤지컬을 보고 나니, 영 국 여행에 좀 더 여유가 생겼다.


세 번째는 사실상 뮤지컬을 보기 위해 런던에 온 이유 자체인 '레 미제라블'이다. 알라딘을 본 이후 7시 공연이었다. 이것 만큼은 좋은 자리로 보고 싶었고 데이 시트 제도가 없어서 미리 인터넷으로 예매했다. 2층 앞자리에서 보는 느낌이 좋았다. 영화와 같은 화려함과 대규모의 웅장함은 없었지만, 세트장의 빙글빙글 회전해가면서 사람들이 쌓아 올린 바리케이드나 도망치는 통로 같은 세세하고 다양한 배경들을 표현하며 웅장함을 더했다. 게다가 라이브로 듣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은 영화와 비교할 수 없었다. 후반부에는 혼자 감격에 차고 너무 울어서 뮤지컬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위키드 입장 전과 무대

- 위키드

네 번째는 도로시의 재해석인 초록색 서쪽 마녀가 주인공 나오 는 '위키드'다. 극장이 숙소 근처에 있어서 발 빠르게 데이 시트를 확보할 수 있었다. 줄을 서며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왔던 독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아직 몇 가지 한국어 인사말과 소 맥, 술 게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라이온킹을 나는 레 미 제라블을 최고의 뮤지컬로 뽑으며 서로 옥신각신 했고,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금세 줄이 줄어들었다. 일찍 줄 선 덕택에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맨 앞자리는 최고였다. 단상 덕택에 조금 올 려다봐야 하지만, 배우가 내 눈앞에서 살아 숨 쉬면서 노래를 했 고 눈가 주름 때문에 마녀의 초록색 분장이 조금 떨어지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무대에서 중력을 거스르고 노래를 부르며 하늘을 날아오르는 장면에서는 왜 한국에서 공연할 때마다 지하철 광고 판이 초록색으로 도배되는지 알 수 있었다.


- 마틸다

다섯 번째 뮤지컬은 '마틸다'이다. 영화를 재밌게 보기도 했고 이 날에 하는 뮤지컬이 마틸다 밖에 없어서 선택했다. 데이 시트 티 켓가격이 달랑 5파운드였다. 매우 싼 가격에 큰 고민을 하지 않고 보았는데 곧 싼 가격의 이유를 알게 된다. 3층 맨 구석 자리는 인생에서 가장 최악이었다. 계단이 너무 가팔라서 앞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고 가뜩이나 작은 아이들은 점보다 작게 보였으며, 아이들의 혀 짧은 발음과 소리에 음향이 뭉개져서 잘 들리지도 않았다. 잘 보 이지 않는 건 싼 좌석이니 백번 이해하지만 잘 들리지 않을 줄은 예 상 하지 못했다. 아이들이다 보니 춤과 몸짓도 범위가 한정적이라 그랬다. 2시간 동안 관람이 아니라 버티다가 나왔다는 게 맞다.


- 맘마미아

여섯 번째는 ABBA의 노래로 유명한 맘마미아이다. 데이 시트 가 없었고 친구 표 까지 사느라 맨 앞자리 티켓을 조금 비싸게 샀 다. 친구가 예정에도 없는 비싼 돈을 쓰게 되었다고 나를 비난했 지만, 뮤지컬을 보고 난 뒤로 생각이 달라져서 극찬하였다. 다양 한 연령대가 혼재하거나 젊은 사람들이 주로 관람하는 지금까 지 의 뮤지컬과는 다르게 나이 지긋하신 관객분들이 많았다. 아마도 아바의 노래가 유명하던 7~80년대에 청춘을 사신 분들로 추측된 다. 뮤지컬 내내 노래를 조그마하게 따라 부르고 어깨가 들썩 들 썩 거리는 할머니들과 빨래판 복근의 남자 배우들과 야한 농담에 자지러지는 아줌마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맨 앞자 리 에서 소피 역을 맡은 배우들의 그리스의 바다 같은 파란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 눈동자 속에서 춤을 추고 싶었다. 마지막 커튼콜 에 는 모두 다 일어나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배고팠던 내 런던 뮤지컬 투어가 끝이 났다.

런던에서 뮤지컬을 6편이나 봤으나, 보고 싶었지만, 못 본 뮤지컬들도 많다. 라이언킹은 뉴욕에서 봤으니 미리 제외해두었고, 오페라의 유령에는 관심이 없었고 북 오브 모르몬을 보고 싶었으나 데이 시트가 없어서 표값이 비싸니 포기했다. 뮤지컬은 아니지만 연극인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가 보고 싶었으나 데이 시트가 없고 1,2부로 구성으로 표 값이 두배여서 포기했다. 런던에서 뮤지컬을 6편이나 보면서 뉴욕의 한이 어느 정도 풀렸다. 하지만 아직도 못 본 뮤지컬이 남아 있는 만큼 나는 또 뮤지컬을 보러 갈 것이다. 한국에서 원어로 뮤지컬을 한다면 비싼 걸 감수하더라고 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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