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삼모델 Jul 31. 2020

<반도> 그 자체인 한국 영화의 디스토피아

빛과 소리를 좇는 좀비만이 가득한 한국영화의 미래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너무 많이 남용되어 클리셰의 변주가 필수적인 좀비물이지만, 한국의 콘텐츠 산업에서 좀비물은 이제 막 물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활동력이 한창 좋고 여기저기 감영 시킬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기다. '반도'는 그런 한국 좀비물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부산행'의 감독 연상호의 속편인 만큼, '반도'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연하게도 코로나 19로 암담해진 영화시장에서, 코로나 시대의 자가격리를 연상하게 하는 '#살아있다'가 물꼬를 트고, 바로 이어서 좀비 영화가 개봉했다. '#살아있다'가 보여주지 못한 스케일과 액션을 '반도'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살아있다'에서는 희망이라도 있는 결말과 함께 아쉬움이라도 있었지만, '반도'는 한반도만 멸망한 상황처럼 한국 영화를 멸망시킬 수 있는 분노만 가득 남은 영화다. 


- 너무 편해서 좀비처럼 달려 나가는 감염된 개연성

우선 시작부터 신파로 시작한다. 태워달라는 이정현을 뿌리치며 괴로워하는 강동원과 배에 남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문을 재빨리 닫는 강동원을 천천히 슬로 모션으로 잡아준다. 이 영화가 강동원의 PTSD 극복기라는 것을 빨리 알 수 있다. 그 후로 상황이 활용하기 편하게 흘러간다. 무슨 질병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피난자 격리 및 환자 체크도 제대로 안 한 미군, 단 하루 만에 붕괴한 군사강국 한국 정부와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70%를 담당하는 한국을 너무나도 간단히 버려 버리는 세계, 홍콩 삼합회 보스가 영어를 쓰는 백인이고 바이러스 유출을 위한 삼엄한 경계를 너무나도 쉽게 뚫는 삼합회의 배 등, 그냥 한국이 고립되었다는 이야기를 편하게 전개시키기 위해서 개연성이 감염된 좀비처럼 달려 나간다.


- 그때그때 변하는 설정

좀비가 빛과 소리를 좇는다는 아주 기본적인 설정은 직접 말로 설명해주지만 그때 그때마다 상황이 아주 편리하게 적용된다. 사람 하나 없는 그 조용한 서울에서 차량 소리가 들려도 좀비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도로에는 빼곡히 차들이 있지만, 차량 한 대가 지나갈 때는 딱 차량 한 대 분량만 지나갈 정도로 길이 있으며 후반부 추격전을 할 때는 차들이 어딘가로 사라져 있다. 4년이 지난 차가 배터리 좀 충전했다고 시동이 걸리는 것도 신기하지만 나중에는 배터리 충전 안 해도 시동이 잘만걸리며, 배터리는 4년 동안 방전되었겠지만 차량의 도난 경보음은 잘만 울린다. 


- 인내력이 뛰어난 좀비들

그리고 악역들은 어찌나 조준을 신중하게 하는지 그 가까운 거리를 조준하는데만 몇 초가 지나간다. 좀비들은 참을성이 많은지 그 엄청나게 큰 헬기 소리를 내지만 UN군에는 접근도 하지 않으며, 주요 혈관이 지나다니는 허벅지에 관통상을 당해도 발목 접질린 것처럼 뛰어오는 이정현이 슬로모션으로 나올 때는 웃기기까지 한다. 

 

- 어디서 본듯한 장면들

존 윅을 봤는지 휙휙 돌아가는 강동원의 총구와 좀비와의 총기 육탄전 그리고 워킹데드에서 본 득한 숨바꼭질 놀이, 매드 맥스를 감명 깊게 봤지만, 반도 못 따라간 차량 추격전과 '내가 나서야 하나' , '살고 싶으면 타요' 너무나 예의바르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다 써가며 구해주는 유치한 대사들은 나름 멋있으려도 넣은 것 같아서 더 한심하다. 


- 울어라 울어라 신파 + 잘생긴 주인공 + 멋있는 CG와 액션

한국 영화의 적폐이자 공식과도 같은 이 설정들은 끝끝내 이 영화에서 터져버렸다. 대다수의 평론가들은 반도를 악평하겠지만,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도 꽤나 많으며, 코로나 사태에서도 200만이 넘은 흥행과 많은 해외 판매를 기록해 돈을 꽤나 벌은 영화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우리는 할리우드라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자 베낄 수 있는 원본이자 배울 수 있는 고전들이 가득한 곳이 있지만, 실패를 반면교사 삼을 수는 없나 보다. 총기가 없는 좀비물이자,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좀비라는 독특한 콘셉트가 있었지만, 반도는 그저 그런 좀비 아포칼립스를 한국이라는 배경에 옮겼을 뿐이다. 주인공에게 가혹할 정도의 신파와 발전된 액션만 남은 한국영화가 갈 미래는 빛과 소리를 좇는 좀비만이 가득한  <반도> 그 자체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익숙함과 어색함 <#살아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