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로그 #4] 말하고 싶어?

Solomon - Listen up (Radio edit)

by Sylvan whisper

추천 음악 ♬ Solomon - Listen up (Radio edit)


‘아니 글쎄 내 얘기좀 들어보라니까?’


어제 밤 나는 그녀와 말싸움을 했다. 사실은 말싸움이라고 부르기 조금 애매한 무언가를 했다. 어떤 '갈등'이 '싸움' 이었다고 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언성이 높아지는 크기, 서로 내뱉는 단어가 품은 가시의 날카로운 정도 따위의 요소들로 판단 하게 되는걸까?

상대방을 할퀴고 싶은 마음이 어느정도인지는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우리는 보통 '싸움'의 크기, 그리고 그 이전에 그 갈등 자체가 '싸움'으로 정의 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우리가 내뱉는 말'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그녀와의 갈등은 '싸움'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나는 그녀의 불만을 들었고, 기분이 나빴다. 정확하게는 그녀에 대해서 미운 마음이 들었다. 어느정도는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반박을 하고 싶었으니까, 반대로 나의 서운함과 그녀의 말에 대한 반박을 하고 싶었으니까. 조금만 더 나가면 나 또한 그녀에게 날카로운 말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렇지만 우린 싸우지 않았다. 나는 입 속에 웅얼거리던 말들을 내뱉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나쁜 말들은 입속에, 머리속에 맴돌면 맴돌수록 더욱 날카로워진다는 것이다. 더욱 날카로워진 말들로 인해서 둥글던 마음에는 더 생채기가 나고 삐뚤빼뚤하게 변해간다. 이처럼, 어제의 나도 결국 언성을 높이거나 상처주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혼자 마음속으로 나쁜 마음을 키웠다.

어제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어떤 서운함을 유하게 표현한 것도 아니었고, 퍼렇게 날이 선 나쁜 말도 아니었다. '네가 이런말을 해서 나는 어쩔 줄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대화는 흐지부지 끝이 났고, 밤이 깊어 우린 각자 잠을 청했다. 겨우겨우 싸움을 피하고자 내뱉은 회피 전략이었지만 이 얼마나 비겁한 말이었는가.


명확하게 싸움이라곤 부를 수 없는 이 대화를 끝내고 다음날이 밝았고, 나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부작용이 시작 되었다. 이 애매한 대화가 어제의 일이 되고 오늘이 된 지금, 이 이벤트는 '싸움'이 되었다. 애매함에서 탈피한 것이다.


내가 이런 판단을 하게 된 것은, 오늘의 내 머릿속을 장악했던 생각들 때문이다.


'아니 진짜 내 말좀 들어봐'


나는 어제의 일을 빌미로 '상담'을 하고싶다며 대화를 시작할 상대를 물색헀다. 타겟을 잡는다면 이루어지게 될 대화는 뻔했다. '상담'을 빙자한 '뒷담화'였다. 대게 이런 대화는 그 주제가 무엇이던, 그 대화를 꾸며가는 문장들이 비슷하다. '진짜 너무하지않냐, 이게 말이 되냐?' 따위의 말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부한 뒷담화를 끝내고 나면 나를 갉아먹는 자괴감이 들기 마련이다.

어떤 갈등에서 내뱉게 되는 말 이전에, 그 말에 담는 마음이 있다. 싸움은 겉으로 드러나야만 싸움이 아님을 나는 뒷담화를 하려는 나를 보고 알았다. 상대에게는 언성을 높이지 않고, 날카로운 단어들을 내뱉지 않았지만 나는 그 나쁜 말들을 제 3자에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미 나쁜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말해도... 되나?'


대화상대를 물색하던 나를 다른 한 켠에서 계속 따라다닌 생각이다. 고맙게도 이 한 문장이 나를 잡아주었다. 결국 나는 대화상대 물색을 그만 두었다. 처음엔 상대방이 잘 들어줄까?라는 걱정이 있었고, 그 다음으로는 이런 말들을 뱉어봐야 듣는사람도 말하는 나도 좋을게 없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그냥 혼자 삭히면서 참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중간중간 튀어올랐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뒷담화'를 하고 싶었던 이 마음을 접으니, 내가 보였다. 찌질하고 못난 나의 모습이.


'말하고 싶어?'


말하고 싶었다. 이내 관두었지만 말이다. 싸움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정의하기 나름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어제밤부터 오늘 하루 종일에 이르기까지, 혼자서 허공에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나쁜 마음이 있었고 이걸 계속 내뱉으려 했다. 상대방에게는 다물었지만, 어찌보면 더 비겁하고 비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밤은 그녀에게 말해야겠다.

동글동글한 사과의 말, 그리고 못났던 내 모습을 참회하는 포슬한 말을.








keyword
작가의 이전글[뮤로그 #3] 그땐 슬펐고 지금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