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내, 계절의 냄새
매년 이맘때 즈음, 우리 집의 풍경은 비슷하다. 내가 가정이라는 형태를 이루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날숨에서 입김이 하얗게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12월이 서서히 다가오면 눈이 내리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쌓여간다. 그렇지만 나는 그와는 반대로 비우고 정리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을 한다. 몇 번의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보냈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매년 이래왔으니까 기억나지 않는 게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상자를 접고 물건들을 종류별로 모아 담는다. 골이 접히는 방향을 엄지로 더듬고, 테이프 끝을 이로 물어뜯었다. 손끝이 마른 종이의 섬유를 지나가며 스륵 거리는 소리를 냈다. 잡동사니가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나고 버릴 것과 남겨둘 것을 구분 짓는 이 풍경은 잊을 만하면 되살아난다. 마치, 아득해져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으려 할때 쯤이면 다시 찾아오는 똑같은 내용의 악몽이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말이다. 꿈을 꾸었던 당시에는 지극히 기분 나쁘고 불쾌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런 지겨운 악몽.
현관문을 열자 트리 상자에서 흘러나온 반짝이 가루가 거실 한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아내는 식탁에 앉아 아이에게 밥을 먹이며 시선을 아이와 식탁에 고정한 채 물었다.
“이번엔 어디로 가는 거야?”
“아직 모르지...”
나는 군복을 벗으며 대답했다. 거실은 아이가 놀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알록달록한 장난감들과 유아용 책, 그리고 얼룩덜룩하고 축축한 옷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내는 아이에게 한 숟가락씩 밥을 먹이고, 아이가 흘린 음식을 닦아주길 반복했다. 아이의 장난감을 다시 정리하려는 찰나 아내는 다시 말했다.
“작년엔 예약금까지 냈던 식당 취소 했었잖아”
나는 대답 대신 의자를 밀어 아내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내의 분위기와는 달리 아이는 내가 반가운지 방긋 웃어주었다. 나는 아내가 들고 있던 아이 숟가락을 집어 들며 말했다. “우리아가~ 너도 친구가 다 바뀌면 슬프니?” 아이는 대답 대신 꺄르륵 웃었고, 이어서 아빠가 먹여주는 밥을 먹었다.
아이 밥을 다 먹일 동안 아내는 육아에 지친 눈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이의 식사가 끝나고 아내가 식기를 정리하는 사이, 나는 장난감을 정리하기 위해 거실로 향했다. 몇일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상자가 거실 구석에 나와 있었다. 그 큰 상자 안에는 예전에 사두었던 조립식 트리가 구겨넣어져 있었다. 작년에도 반쯤 꺼내다 말았었다. 바닥에 반짝이 가루가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트리를 꺼내보려던 아내의 의지가 시작과 동시에 떨어져 나간 듯했다. 트리 끄트머리의 인조 가지 두어 개와 솔잎 몇 잎이 초라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먼지가 공기 중으로 떠올랐다. 아내가 말없이 나를 보았다. 나는 트리를 절반쯤 끌어내다가 이내 멈췄다. 꺼내면 바로 집어넣어야 할 것이었다.
“그래도 올해는 인사이동이 12월 말부터 시작한대.”
내가 말하자 아내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인지 체념인지 모를 움직임이었다. 아이는 어느새 식탁에서 내려와 내 바짓단을 잡아끌다가 금방 장난감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반짝이를 긁어모았다. 트리 상자는 우리 셋의 그림자 사이에서 유난히 커 보였다.
나는 상자를 한 번 더 들어 보았다. 무게는 작년과 비슷했지만 손끝의 감각은 매년 달랐다. 종이의 결이 변해서가 아니라 내 손바닥의 살이 얇아진 탓 같았다. 아이가 상자 옆면의 찢어진 곳을 손가락으로 더듬다가 내 눈치를 보았다. '안돼, 나중에 꺼내자.'하고 말하려다 멈췄다. 안 된다는 말은 이 집에서 너무 자주 쓰였다.
안 되는 것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트리를 켜는 일, 예약을 취소하지 않고 식당에 방문하는 일, 같은 동네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는 일, 아이가 같은 친구들과 내년에도 사진을 찍는 일, 그리고 내가 이 악몽에서 벗어나는 일. 말로 꺼내놓지 않으면 덜 진짜 같아서, 나는 말하지 않았다. 트리뿐만이 아니라 상자 뚜껑과 바닥 사이로 많은 물건들이 담겼고 또 꺼내어졌다. 이런 과정을 반복할 때마다 얇은 공기가 드나들었다. 나는 그것을 ‘집의 숨’이라 불렀다. 그런데 집은 오래 숨을 참지 못했다. 그 집의 폐활량은 언제나 이사 트럭의 일정표에 맞춰 줄어들었다.
“올해는... 그래도 미리 꺼내볼까?” 부엌에서 아내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상자의 옆면을 밀어 벽에 더 붙였다. “내일 내가 꺼내줄게, 오늘은 좀 피곤해서.” 이렇게 말하면 내일은 대개 오지 않았다. 내일의 얼굴을 한 다른 날이 올뿐이었다.
술집은 미지근했고 오래된 인테리어처럼 흘러나오던 음악의 멜로디마저 낡은 것처럼 느껴졌다. 최신 음원차트를 차지하고 있는 노래인지, 오래된 유행가인지 모를 팝송이 알코올 냄새와 섞여 흘렀다. 동기가 잔을 내려놓고 몸을 기울였다. “올해는 네가 남겠지.” “아니. 애가 있는 내가 더 위험해.” 우리는 계산을 했다. 어느 부대에서 누가 빠졌고, 누가 어느 부대의 어떤 보직을 신청했으며, 어떤 보직이 빈 채로 기다리다 누구에게 연결될지 따위의 것들이었다. 숫자와 이름들이 소주잔 밑에서 번졌다. “결국 다 정해진 거야.” 그가 말했다. “알아. 그래도 계산은 해봐야지.” 우리는 웃었다. 웃음 뒤의 침묵이 더 길었다. 술에 취해가듯 우리의 계산도 아득해져 갔다.
처음으로 배정받은 부대, 첫 보직의 공기가 생각났다. 알 듯 모를 듯한 쇳내가 나던 공기 말이다. 차갑고 얇아서 폐까지 스며드는 냄새.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가 긴장감에 휩싸여 착각처럼 느꼈던 거라 생각했는데, 이 냄새는 부대를 옮겨 처음 도착하는 곳에서는 항상 약속이라도 한 듯, 내 코를 자극했다. 이 자그마한 자극으로 인해서 나는 언제나 조금 작아졌었다.
“그래도 올해는 늦게 시작한다며?” 동기가 물었다.
“응. 12월 말부터 라네.”
“그럼 좀 낫겠네.”
“인마 그게 좋겠냐? 그게 그거지”
나는 동기에게 '인사이동의 시작점이 늦어진다는 것'이란 '결과발표 직후에 바로 움직여야 한다'는 숨은 의미를 설명했다. 동기는 종이에 원을 그리며 말했다. “여기가 A시, 여기가 전방 B, 이 보직이 C. 여기서 한 명이 빠지면…” 그의 손가락이 종이 위를 미끄러졌다. 우리는 지도를 그리는 게 아니었다. 빈자리의 이동 경로를 그리는 중이었다. 서로 자리를 바꿔서 순환하는 사람들의 연결고리 말이다. “그래도 너는 이번에 힘든 보직이었으니, 한 번 더 버티면 다음이 편해질 수도 있지 않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이러한 예상들은 빗나갔다. 그러니 이런 부질없는 예상은 사실 희망고문에 가까웠다.
우리는 늘 그런 문장으로 서로를 달랬다. ‘곧 나아질 거야.’ ‘이번만 지나면.’ ‘내년엔 다르겠지.’ 말들은 짧고 가벼웠다. 가벼운 말은 오래 떠 있었다. 무거운 말은 바닥에 가라앉아 입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술집의 창문 너머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다. 나는 잔을 들었다 내려놓고, 물컵에 손가락을 넣어 얼음을 굴렸다. 들었다 놨다 만지작 거리는 술잔에서 금속과 유리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새로운 숙소, 새로운 사무실에서 물건들을 정리하고 사물함을 여닫는 소리와 닮았다. 비어 가는 술잔에 술을 채워주며 동기가 물었다.
“넌, 네가 원하는 곳이 있긴 해?” 나는 ‘원한다’는 말이 이 제도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했다.
“어디든 상관없어. 쇳내가 덜하면 좋겠지.” 동기가 피식 웃었다.
“인마, 그게 다르겠냐? 거기서 거기지” 나도 피식 웃고는 동기와 술잔을 부딪혔다.
손등이 갈라졌던 해가 떠올랐다. 눈발이 날리던 밤, 새 숙소의 현관은 얼어붙은 문턱을 품고 있었다. 방 안은 싸늘했다. 21세기에 라디에이터 난방이라니, 숙소 위생상태는 불 보듯 뻔했다. 곰팡이는 벽의 모서리를 따라 진한 지도를 그렸다. 창문을 열어 냄새를 빼내려 했지만 더 차가운 공기만 들어왔다. 걸레를 들고 바닥을 문질렀다. 금세 차가운 바람에 의해 걸레는 얼음장이 되어갔고 손가락 관절이 굳었다. 벅벅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 하나에 매달리다가 문득 밤이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걸레를 던졌다. 손바닥은 벌겋게 변하여 덜덜 떨렸는데, 이마에서는 땀이 났다. 집어던진 걸레는 철퍽 소리를 내더니 구정물을 사방으로 뱉어내 방금 전에 닦았던 방바닥을 다시 더럽혔다. 아마 그때도 크리스마스였던 것 같다.
다음엔 좀 따뜻한 데로 가면 좋겠다고 중얼거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종일에 걸친 청소로 인해 녹초가 된 나는 곧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같은 방을 다시 청소했다. 깨어나서는 어제 집어던졌던 걸레를 집어 들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회생불가, 아무리 걸레라도 다음에 다시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악몽은 그렇게, 같은 손목의 각도로 되돌아왔다.
작년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모처럼 크리스마스에 데이트 분위기를 내고자 우린 나름의 치밀한 계획을 짰다. 장인장모님이 스케줄을 빼고 우리의 집으로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는 동안, 우리는 어렵게 예약에 성공한 유명 레스토랑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식당이었는데, 동네에서는 이미 입소문을 탄 탓에 예약도 어려웠을뿐더러 육아에 지쳐 엄두도 내지 못했던 곳이었다.
숨통 트일 곳이 필요했던 우리 부부, 특히 아내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 한 달 전부터 예약을 시도했다. 예약이 성공했음을 알렸을 때, 말수가 적은 아내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분명히 작은 행복을 담았던 미소를 보였었다. 그리고 얼마뒤 인사이동 결과가 발표되었다. 우린 12월 초에 이미 짐을 싸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렇게 옮겨온 이번 보직은 작년의 그곳과는 멀리 동떨어진 곳이었다.
"멀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 연차 내서 다녀올까? 아이도 맡기고...당신이 너무 가보고 싶어 했던 곳이잖아" 나는 현실성 없는 제안을 던졌고 아내는 한숨으로 대답했다.
“올해는 여기에 그대로 있을 것 같아.”
아이는 산타 얼굴이 그려진 양말을 신고, 아내는 양말 끝을 정리하며 웃었다. 나는 예약 앱을 열었다. 지나갈 때마다 눈에 밟혔던 식당이 크리스마스날 빈자리를 내주었다. 다른 부대로 보직을 옮기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또 식당을 취소해야 하는 위험이 있긴 했지만, 올해는 이동할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다. 만에 하나 옮긴다 하더라도 올해는 모든 인사이동이 12월 말부터 시작될 것이기에, 첫 순서만 아니면 되었다. 옮기더라도 12월이 지나고 1월에 옮기면 계획했던 '데이트' 정도는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올해는 어디도 안 가.” 내가 말했다. 아내는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이 약속인지 기원인지 묻지 않았다.
나는 혼자 불 꺼진 거실에 앉아 창고에 겹겹이 쌓아둔 파란 이사용 플라스틱 박스들을 떠올렸다. 그래도 처음 이사를 할 때는 상자들을 쉽게 분류하고 알아보기 위해 라벨을 붙이고는 '식기류', '화장품' 따위의 단어들을 예쁘게 적어두었다. 하지만 지금 상자들엔 덕지덕지 찢어진 테이프들이 붙어있고, 몇몇 라벨은 아예 떨어져 나갔으며 남아있는 것도 반쯤은 뜯겨 시작점이 보이지 않았다.
별안간 그 상자들을 꺼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모서리를 들어 올리자 수북이 쌓인 먼지가 날렸고, 상자 안쪽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래전에 받은 카드가 나왔다. ‘어디로 가시든, 따뜻한 크리스마스 되세요.’ 웃음이 나올 듯 하다가 나오지 않았다. 내게 보통 그 문장은, 실체화 되어 본 적이 없었다.
며칠 후, 인트라넷에 공지사항이 게재되었다. 정기 인사발표였다. 나는 해당사항 없기를 기도하며 내 이름을 찾았다. 애석하게도 내 이름은 명단에 있었고 그 옆으로 새로 옮겨갈 부대와 보직, 그리고 날짜가 적혀 있었다. 다시 한 번, 날짜라도 1월이기를 기도했다. "OOO, A부대 OO담당 12월 23일 부" 철렁 내려앉은 심장을 부여잡을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끊었던 담배가 생각났지만 고개를 숙이며 담배를 잊어보려 했다.
무슨 말로 시작할지, 어떤 사유들을 덧붙일지 고민했지만 부질없었다. 아내에겐 이동하게 된 사실과 그 날짜만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아내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다시 주머니에 찔러 넣기를 반복했지만 이내 통화버튼을 누르진 못했다. 올해도 또 예상을 빗나간 인사이동 결과지를 부여잡고 나는 동기, 선후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런 비하인드가 있겠다는 둥, 누가 어디로 가서 좋겠다는 둥 가십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결과 나왔다며?"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는 곧바로 물어왔다.
“휴직자가 생겼대.” 나는 결과에 대한 이유부터 내뱉었다.
"무슨 소리야? 우리는?"
“가야지....”
“또야?” 아내는 숨길 수 없는 실망을 내비치며 말했다.
나는 대답을 고르다가 침묵했다. 아이의 양말에서 실밥 하나가 풀려 바닥에 끌렸다.
“당신 때문에 진짜 매년 이게 무슨 고생이냐고”
"아니 이게 어떻게..." 나는 욱하는 마음에 입을 열었지만, 곧바로 반박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그라들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고, 아이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눈동자가 맑았다.
“아가... 너도 친구가 다 바뀌면 슬프니?” 아이는 웃었다. 아내는 등을 돌리고 주방으로 갔다. 물 흐르는 소리가 길었다. 우리는 말하지 않았다. 내일 설치해 주겠다며 거실 한편에 방치해 둔 트리 상자가 보였다.
그날 밤, 서랍 하나를 더 비우며 우리 사이에 남은 것들의 목록을 떠올렸다. 함께 산 시간, 이사 횟수, 취소한 예약, 켜지지 않은 트리, 아이가 바꿔야 했던 어린이집, 그리고 서로에게 하지 않은 말들. 얕은 숨을 오래 쉬면 피곤해졌다. 피곤해지면 사람은 말이 적어졌다. 이렇게 해서 사랑은 견딤으로 변해가는 것만 같았다. 견딤에는 방향이 없었다. 방향이 없으면 끝도 없었다.
아이가 방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었다. "응~ 우리 아가, 아빠 정리하고 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사라졌다. 아이의 걸음걸이가 짧고 일정했다. 그나마 그 일정함은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거실에 방치해 두었던 트리 상자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 속에서 오래전 만들다 만 트리 장식이 하나 보였다. 빨간 실이 끊겨 있었다. 나는 그 장식을 조심스럽게 손바닥에 올려 보았다. 빛이 없어도 반짝이는 것들을 믿고 싶었지만, 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치고 나아가며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벗어났다.
얼마 뒤, 새로운 부대 정문을 지날 때 나는 창문을 조금 내렸다. 겨울 공기가 차 안으로 흘러들었다. 알 듯 모를 듯한 쇳내였다. 새 사무실의 문손잡이는 차가웠다. 문을 열자 바람이 따라 들어왔다. 탁자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빈 서랍, 빈 파일꽂이. 달력은 벌써 깨끗한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새해의 첫 장이 '밝은 미래'의 이미지를 알리고 싶은 듯 반듯했다.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올해의 내 목소리는 얇고 길게 이어지는 선이었다. 감정을 줄이고 말의 길이를 더 줄이며, 어느 지점에서만 짧게 끊었다. 그게 오래 버티는 리듬이었다.
새로운 보직에서 새로운 업무를 시작했지만, 점심시간이 오는 것은 똑같았다. 식당 앞에는 줄이 길었다. 이곳저곳에서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연말연초, 인사이동 시기라는 것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줄은 길었지만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먹었다. 국과 반찬을 원하는 만큼 덜었다. '순서대로, 원하는 만큼' 세상에 이 간단한 규칙이 더 많이 적용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공한 마음에 열기를 채웠다.
오후에는 짧은 업무 인수인계를 마쳤고, 새로운 책상이 마침내 나의 책상이 되었다. 서랍을 열었다 닫아보았다. 미세하게 비뚤어진 레일이 덜커덕 거리며 손끝에 전해졌다. 나는 그 비뚤어짐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차이는 작지만 분명히 있었다.
창밖으로 해가 기울었다. 그림자가 길어질수록 실내의 소음이 낮아졌다. 낮아진 소음 속에서 내 호흡이 또렷해졌다. 야전상의를 걸치고 복도를 걸어 나왔다.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중령 OOO’ 병과의 인사담당자 선배였고 발걸음을 늦추었다. 눈 위에서 자박거리던 발소리가 꺼졌다.
“고생 많다. 이번엔 힘들었지?”
“예. 뭐... 다들 똑같죠”
“내년엔 꼭 안 옮길 거야. 내가 그렇게 해볼게.”
“선배, 저 그 말 작년에도 들었어요.”
“그래도... 이번엔 진짜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멀리서 캐럴 같은 소음이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의 불빛이 눈을 희미하게 적셨다. 그 말은 약속이라기보다 주문 같았다. 부적처럼 매해 반복되는 문장. “선배, 다음엔 어디로 가세요?” 전화선 반대편이 아주 조용해졌다. 별로 관심 없는 그의 행방에 대해 상투적인 대화를 했고 이내 통화 종료음 울렸다.
내년 인사이동만큼은 자기가 책임지겠다던 그의 말은, 그의 인사이동과 함께 증발할 터였다.
새 발령지에는 나 혼자 먼저 도착했다. 관사가 아직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이 이사 올 때까지 나는 부대 끝 허름한 단칸방에서 지내야 했다. 방에는 낡은 침대 하나와 철제 책상, 벽에 걸린 오래된 시계가 전부였다. 첫날밤, 형광등을 켜자 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흔들림이 마치 숨이 가빠진 사람의 호흡 같았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퇴근하여 나는 군복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웅크려 누웠다. 휴대폰 화면을 켜니 아가가 화면 속에서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빠.” 그 한마디가 방 안에 부딪혀 사라졌다. 아내와는 관사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쯤 나올까?”
“이번 달 안에는 연락 오겠지.” 서로 말끝을 흐리며 알 수 없는 낙관을 나눴다. 영상통화가 끝나자 방 안은 조용해졌다.
형광등을 끄자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았다. 창문 틈으로 겨울 공기가 들어와 이불 끝을 밀었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쇳내, 그 쇳내가 났다. 벽지에 밴 오래된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함께 코끝을 찔렀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이전 부대의 첫날들이 겹쳐졌다. 얼어붙은 수도, 곰팡이 낀 벽, 밤새 닦던 바닥. 시간은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았다.
휴대폰 화면이 꺼지자 더 이상 불빛이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누웠다. 멀리서 캐럴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멜로디가 문틈 사이로 희미하게 스며들었다가 금세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나는 내 숨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를 들었다. 그것들이 합쳐져 낯선 리듬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리듬은 내겐 익숙했다. 매년 이맘때쯤 들리던 소리였다.
나는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올렸다. 쇳내가 폐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나는 비슷한 냄새 속에서 잠들겠지. 그리고 아마도 오늘은, 잊을만하면 찾아오던 그 악몽을 꿀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