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24] 임신이라는 게임

임신 20주 차, 명절 귀향길의 딜레마

by Sylvan whisper


아내가 임신을 하고 맞이하는 첫 명절이 왔다. 내게 이번 명절은 마치 어떤 게임의 퀘스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임신 주차도 어느덧 중간을 관통하는 20주 차에 이르렀고 아내의 배도 꽤 불러왔기 때문이다. 직장의 특성으로 인해 지방에 거주할 일이 많았던 나는 명절에 본가를 가는 일이 역귀성인 경우가 많았고, 아내의 경우엔 친인척이 모두 대구에 거주하셨기 때문에 귀향길 귀성길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명절은 아내가 임신을 한 상태라는 사실에 더하여, 우리가 서울에 거주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번 귀향길, 귀성길이 아주 멀고 길어질 것을 의미했다.


첫 번째로는 눈치싸움이 있었다.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출발하는 게 가장 '덜' 막힐까? 우리의 고민이 언제가

'안 막힐까'가 아니라 언제가 '덜 막힐까' 였다는 것은 교통체증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는 계산이 깔려있었음을 의미했다. 그만큼 우리는 귀성길의 고생은 불가피하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때문에 우리의 고민은 어느 정도 '고통의 최소화'라고 할 수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고통의 최소화가 아니라 그저 어떤 종류의 힘듦이 그나마 나을 것인가의 문제 같았다.

덜 막히는 시간을 선택하고자 한다면 아주 이른 아침이나 더욱 확실한 것은 아예 늦은 밤에 출발하여 야간 운전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장거리 운전이나 야간 운전이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아내의 경우엔 얘기가 달랐다. 아내는 야간에 운전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가지고 있었고, 수면의 질과 양이 떨어질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낮에 이동하길 택한다면, 우리는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다. 임산부가 좁은 공간에서 오래도록 앉아있는 것은 피로도를 몇 배로 증폭시키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절충안이라고 할 수 있는 늦은 오전에 출발하기로 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아내와 나 둘 다 지극한 저녁형 인간, 올빼미였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기상하여 움직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10~11시를 넘겨서 출발한다면 오전에 출발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애매한(?) 9~10시 즈음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출발해 보니, 시간대의 선택 말고도 또 다른 딜레마가 찾아왔다. 고속도로로 갈 것이냐, 국도로 갈 것이냐라는 문제가 찾아왔다. 나는 내비게이션이 제시해 주는 루트에서 소요시간이 최소가 되는 경우를 골라 출발했다. 그런데 이 루트는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만 계속해서 길을 안내했다. 어느 정도 국도로 진행하다가, 고속도로로 올라가겠거니 싶었던 것이 1시간이 지나도 2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국도로만 달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의 첫 번째 우려사항은 아내의 '멀미'였다. 신경 쓰기 시작하면 그 신경 쓰이는 요소가 더 많이 보이기 마련이다. 운전하는 도중 과속방지턱은 어찌나 그렇게 많은지, 또 교차로는 얼마나 많은지, 방향전환이나 잦은 정지후 재출발이 동반되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한 아내의 모습이 괜히 더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과속방지턱이나 교차로 보다 더욱더 큰 요소는 길 자체의 구불거림이었다. 아무리 국도여도 그렇지! 지금 안내해주고 있는 길은 마치 산을 넘어가는 듯 너무 구불거리는 길들을 지나쳐야 했다.


'멀미 나거나 그러진 않아? 힘들면 바로 얘기해 줘'


운전하다가 아내의 컨디션도 체크할 겸 말을 건넸다. 그렇지만 아내의 대답은 영 다른 곳에서 왔다.


'고속도로 언제 올라가지? 휴게소 가야 할 거 같은데...'




아차...! 아내가 귀향길에 컨디션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쉬고 싶은 타이밍에 쉴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임산부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 지는 주기가 짧아진다. 고속도로는 휴게소와 졸음쉼터 등 원하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화장실을 갈 수 있는데, 국도는 이러한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바로 경로를 재탐색해서 고속도로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경로로 변경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전체 소요되는 시간은 크게 변동되지 않았다. 다만 고속도로에 올라서, 첫 번째 휴게소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될 듯 보였다. 이 20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내가 이 요소를 간과하였다는 사실로 인해서 땀을 삐질 흘렸던 것 같다. 이번 퀘스트를 아무런 피해 없이 완수할 수는 없어도, 피해를 가장 최소화하여 완료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임무완수의 결과물 수준이 떨어진 격이었다. 아내가 최대한 불편함을 덜 느끼도록 하여 점수를 따려고 했는데 말이다!


이번 명절에 나는 이 임신이라는 것이 주는 '딜레마'를 다시 한 번 마주했다. 임신이라는 하나의 변화는 삶의 방향성을 크게 바꿔버리면서, 동시에 수 많은 딜레마를 마주하게 한다. 내가 마주했던 퀘스트는 막히지 않는 길, 빠른 길을 찾는게 아니었던 것이다. 임신이라는 게임 속에서 마주쳐야할 딜레마들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를 묻는 일이었다. 딜레마라는 것은 그 핵심 속성이 이미 '풀기 어려운' 문제 라는 것이다. 이 딜레마를 통과한다는 것은 어쩌면 딜레마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만 정확히 파악해도 성공한 게임일지도 모른다.

이번 귀성길 퀘스트에서 소요 시간, 운전 시간대, 멀미 등의 구성요소는 파악했으나 휴식과 휴게소라는 요소는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완성되지 못한것 처럼 말이다. 이 나머지 퍼즐 한 조각을 인지하고 그 딜레마를 고민했다면 그 자체로 이 퀘스트는 성공에 가까웠을 것이다.






한 줄 정보

1. 임신 중기(20주 전후)는 장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할 경우 허리 통증과 피로도가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2. 임산부는 자궁이 방광을 압박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야 하는 주기가 짧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3. 고속도로는 휴게소·졸음쉼터 접근성이 높아 임산부 이동 시 휴식 계획을 세우기 용이하다.

4. 임신 중 이동 계획은 출발 시간보다 휴식 가능 지점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5. 임신은 생활 전반에서 선택의 기준을 ‘효율’에서 ‘회복 가능성’으로 이동시키는 변화다.

6. 임신, 출산, 육아 간에는 “잘하려는 마음”보다 “놓치지 않으려는 감각”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7. 조금씩 태동이 느껴질 수 있는 시기이다. 초기의 태동은 가스가 찬것 같거나 물방울이 뽀글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8. 배가 불러오면서 튼살이 생길 수 있다. 튼살은 생기기 전부터 관리해야하기 때문에 사후조치가 아닌 예방적 조치로 임신사실을 알게된 이후부터 출산까지 틀살크림과 오일을 발라주는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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