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1주차, 도쿄 태교여행 Day 1
‘마지막으로 갈 수 있는 해외여행인데,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는 이미 가고 싶었던 여행지들이 몇 군데 있었다. 태교여행지를 정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혼하기 전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꼭 한 번 가자고 약속해왔고, 프랑스는 아내가 나와 다시 한 번 가고 싶다고 늘 이야기하던 나라였다.
체력이 좋고 신체적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않는 산모라면 임신 중에도 장거리 여행을 다녀오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임신 이후 아내는 장시간 이동에 이전보다 훨씬 쉽게 피로를 느꼈다. 가본 여행지는 피하고 싶었고, 동남아 휴양지는 이미 여러 번 다녀왔기에 자연스럽게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그렇게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니, 마땅한 목적지는 좀처럼 남지 않았다.
최종적으로는 대만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한 곳은 일본 도쿄였다. 비행 시간이 짧다는 점, 그리고 육아용품을 구매하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마음 한편으로 아내가 가보지 않은 나라에서 관광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육아용품을 직접 보고 살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 같다.
이제 아이가 태어나면 장거리 해외여행은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다. 꿈처럼 멀어질지도 모를 여행들을 떠올리며, 언젠가는 꼭 다시 함께 떠나자는 막연한 다짐만을 품은 채 우리는 일본으로 향했다.
비행기에 오르고 이륙을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대고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안전벨트를 매는 손길은 평소보다 조심스러워 보였고, 창밖을 바라보는 표정에는 설렘보다 긴장이 먼저 묻어 있었다. 이륙 순간, 아내는 무의식적으로 배 위에 손을 얹었고 나는 그 손 위에 잠시 손을 포갰다. 비행 시간이 짧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이 정도 거리여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 여행이 정말로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감각이 조용히 마음 한켠에 내려앉았다.
태교여행이란 과연 어떤 콘텐츠로 채워져야 할까. 태교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나는 이 여행이 결국 부모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맞이하기 전, 몸과 마음을 잠시 쉬게 하고 맛있는 것과 즐거운 것들을 충분히 누리며 에너지를 채워두는 시간 말이다.
일본 도쿄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사랑이를 위한 육아용품 쇼핑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오히려 우리를 위한 쇼핑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여행의 첫날은 자연스럽게 ‘쇼핑’으로 채워졌다.
도쿄로 출국하기 전까지 나는 업무로 꽤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 탓에 여행 일정이나 쇼핑 품목들을 거의 들여다보지 못했는데, 도쿄를 이미 한 번 다녀왔던 아내가 모든 계획을 대신 짜주었다. 도쿄에 도착해 시내로 이동하고 호텔 체크인까지 마치니 어느덧 늦은 오후였다. 우리의 첫 끼니는 내가 전부터 궁금해하던 두툼하고 육즙이 가득한 가츠동이었다. 일본 여행 관련 SNS 게시글을 볼 때마다 한 번쯤은 꼭 먹어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던 메뉴를, 아내가 기억해 첫 식사 장소로 정해둔 것이었다.
도쿄 시내를 걸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평소보다 아내의 걸음에 속도를 맞추게 되었다. 몇 걸음 걷다 보면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조금 느린 속도로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내가 쇼핑백을 들려 하면 괜찮다고 말했지만, 결국 무거운 것은 전부 내가 들게 되었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몸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식사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쇼핑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몇 달이나 지나서야 받게 된 내 생일선물을 고르기 위한 매장이었다. 요즘 러닝에 빠져 있는 나를 위해 일본에 온 김에 아식스 러닝화를 사주고 싶었다는 아내의 말에 괜히 더 들떴던 기억이 난다.
이어서 유니클로와 GU 매장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아내도 부담 없이 기본적인 옷을 살 수 있고, 옷에 큰 관심이 없는 나 역시 무난한 옷을 저렴하게 고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아내는 마음에 드는 옷이 없다고 했고, 나는 이번에 거의 수년 치 옷을 한꺼번에 산 것처럼 여러 벌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자기 것만 잔뜩 샀네?’
농담처럼 던진 아내의 말에 웃어넘겼지만, 그 말은 하루가 끝나갈 즈음까지 계속 마음에 남았다. 문득 떠올려보니, 그날 하루 동안 우리는 육아용품 매장에는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 사랑이를 위한 물건을 하나쯤은 샀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장바구니에는 내 신발과 내 옷들만 가득 담겨 있었다. 태교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첫날은 부모가 되기 전의 나를 위한 하루였다는 사실이 그제야 또렷해졌다.
도쿄에 도착한 첫날은 시간 자체가 많지 않았기에 식사와 쇼핑으로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일본 편의점에 들러 간식 몇 개를 담았다. 달달한 간식과 맥주를 앞에 두고 하루를 돌아보니, 오늘 하루는 유난히, 모든 일정이 사랑이도, 우리도 아닌 '내 위주'로 흘러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숙소로 잡은 호텔 근처에는 내가 먹고 싶어 했던 가츠동이 유명한 식당이 있었고, 첫날은 식사 한 끼를 해결하고 나면 곧 저녁이 될 테니 쇼핑을 먼저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러닝화를 선물로 사달라고 했으니 아식스 매장을 먼저 들르고, 그 다음 GU와 유니클로를 가면 동선도 딱 맞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저렴하고 질 좋은 옷들을 몇 벌 사고, 유니클로에서 남자들이 쓰기 좋은 가방까지 사면 좋겠다고—아내는 아마 그런 생각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첫날 일정을 짰을 것이다.
아내가 도쿄를 먼저 다녀왔기에 맛있었던 것들, 쇼핑하기 좋은 곳, 효율적인 동선을 알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내가 첫날 계획을 세우며 떠올린 모든 요소들이 자기 자신도, 뱃속의 아가도 아닌 나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뭉클해졌다.
아내에게 그날의 마음을 그대로 말하지는 못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왠지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조금 어색했다. 대신 이렇게 글로 남겨두기로 했다. 언젠가 이 기록을 다시 꺼내 보게 된다면, 그때의 나는 아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설계했는지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로 하지 못한 마음을, 기록으로라도 남겨두고 싶었다.
‘아내가 가고 싶어했던 여행지를 갔으면 좋았을걸.’
생각만 했던 나에 비해, 아내는 이미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 줄 정보
1. 태교여행은 임신 중반기가 권장된다. 배가 더욱 나오기 시작하면 산모가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 임신 후반기에는 실제로 장거리 이동은 위험부담을 수반하는 일이다.
2. 장거리 비행기 탑승시 후반기 항공사에 따라 산모에 대한 산부인과 소견서를 필요로 한다.
3. 임신 중 태교여행은 일반적으로 비행시간이 짧고 의료 접근성이 좋은 국가가 선호된다.
4. 태교여행은 태아 자극 뿐만 아니라 부모의 정서 안정과 스트레스 완화 또한 목적으로 둔다.
5. 일본은 육아용품의 품질 대비 가격 경쟁력이 높아 태교여행지로 자주 선택된다.
6. 태교여행에서의 ‘마지막 해외여행’ 감정은 부모가 되는 전환기 상실감과도 연결된다.
7. 태교일기는 여행 기록이자 부부 관계의 감정 기록물로 기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