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1주차, 도쿄 태교여행 Day 2
도쿄 여행에서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정은 사실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딱 하나, 반드시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러닝’이었다. 내가 계획한 러닝은 단순히 달리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하루를 여는 작은 루틴을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의 러닝은 나에게 공간을 익히는 가장 빠른 방법이자, 하루의 리듬을 정돈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낯선 도시를 발로 훑으며 그날의 속도를 미리 맞춰보는 일, 그게 내가 러닝을 고집한 이유였다.
아내와 나는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오전과 오후를 빽빽하게 채우는 스타일은 아니다. 충분히 잠을 자고 난 뒤,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길을 나서 식사나 카페로 하루를 시작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건, 이 ‘오전의 빈칸’을 채워보는 일이었다.
아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아침 조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브런치가 될 만한 따뜻한 빵이나 샌드위치, 그리고 부드럽고 연한 라떼를 테이크아웃한다. 내가 숙소에 도착할 즈음이면 아내는 한창 외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고, 나는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한 뒤 함께 빵과 커피를 먹고 길을 나선다.
이 계획은 태교여행 둘째 날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도쿄의 맛집은 많이 알아보지 못했어도, 대신 여러 러닝 코스와 그 동선에 겹쳐 있는 카페들은 미리 추려두었다. 그런데 막상 처음으로 러닝을 나가보니 안개처럼 잔잔한 비가 내렸다. 숙소를 나설 때부터 날씨가 흐릿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하필이면 바로 어제 산 하얀색 러닝화가 젖기 시작했다.
그래도 러닝을 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오늘 찜해둔 카페에서 유명하다는 토스트와 아이스커피로 아내와 아침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방울방울 떨어지는 비쯤은 그냥 맞기로 했다.
도쿄에서 이미 러닝 성지로 불리는 도쿄 황궁 러닝 코스를 달렸다. 황궁까지 이어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의 시티런까지 포함된 코스였다. 흐린 날씨였지만, 나 말고도 많은 러너들이 있었고, 그 속에 섞여 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오늘 러닝의 만족감을 가장 크게 높여준 건, 역시 토스트를 테이크아웃하러 들른 카페였다. 구글맵 평점이 높긴 했지만, 이른 아침임에도 카페 안은 예상보다 훨씬 북적였다. 오히려 그 풍경이 ‘맛집이구나, 아내가 좋아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그니처 메뉴인 토스트는 이미 품절이었다. 다른 카페도 가봐야 했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대신 아내가 좋아할 것 같은 달달한 바나나브레드를 골라 숙소로 향했다. 다행히 아내는 바나나브레드를 한입 베어 물더니, 잠시 씹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다른 데서 먹던 거랑 좀 다른데?”
그 말 한마디와 함께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는 모습에, 괜히 내가 더 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획대로 나는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고, 빠르게 외출 준비를 마쳤다. 아직 고데기로 머리를 다듬고 있던 아내는 두 팔이 바빴기에, 나는 빵을 한입 크기로 잘라 입에 넣어주고 연한 아이스커피의 빨대를 살짝 입에 대주었다.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렇게라면 달달한 간식을 즐길 수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그리는 결혼생활, 혹은 앞으로의 육아생활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각별하게 헌신적이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개인적이지도 않은 상태. 각자의 시간이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그 시간의 일부가 자연스럽게 서로를 향해 이어지는 관계.
내 시간을 보내다가도 그 시간의 한 조각은 늘 너를 향해 있고, 그렇게 너를 향하게 된 시간은 내게 조금 더 달달하고, 조금 더 따뜻해진다.
한 줄 정보
1. 임신 중 여행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일정을 채우기보다, 수면과 휴식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산모의 컨디션 유지에 더 도움이 된다.
2. 임신 기간 중 배우자의 적정한 단독 운동 시간은 ‘개인 시간 확보’만으로 보기보단, ‘관계 유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균형 장치로 보는 것이 건강한 관계에 필요하다.
3. 임신 중 카페인 섭취는 하루 권장량 이내에서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며, 연한 라떼나 디카페인 음료가 비교적 안전하다.
4. 여행 중 익숙한 루틴을 일부 유지하는 것은 산모의 불안감을 낮추고 안정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5. ‘함께하지 않는 시간’도 ‘함께하는 시간’으로 연결되어 맞이하는 구조는 부부 관계에서 심리적 여유를 만들어준다.
6. 임신기 부부의 돌봄 행동은 거창한 배려보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작은 행동일수록 지속 가능하다.
7. 태교는 특정 행동을 잘 수행하는 것보다, 부모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와 분위기가 축적되는 과정에 가깝다.
8. 임신 기간의 여행 경험은 출산 이후의 생활 루틴을 미리 연습해보는 간접적인 준비 시간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