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1주차, 도쿄 태교여행 Day 4
연애 때부터 데이트를 할 때면 늘 반복되는 현상이 하나 있었다. 이른바 ‘맛집 레이더’의 성능 차이다. 이상하리만치 내가 가보고 싶어 찾은 곳, 혹은 내 검색 결과로 선택한 식당은 늘 아쉬웠다. 반면 아내가 고른 곳은 거의 예외 없이 성공이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아내의 맛집 탐색 능력은 보증수표라고 불러도 될 만큼 안정적인 성능을 자랑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차이는 단순한 입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는 늘 충분히 찾아보고, 기다릴 수 있는 만큼 기다리고, 실패할 가능성을 하나씩 지워가며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여행에서의 식당 선택뿐 아니라, 삶의 많은 장면에서도 아내는 늘 실패 확률이 낮은 쪽을 고르는 사람이었다.
둘째 날 아침, 숙소를 나서 첫 일정으로 내가 검색해 둔 카레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맛은 그럭저럭이었고, 일본 음식답지 않게 매운맛이 강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에 반해 이어서 방문한 긴자의 우동 가게는 역시나 아내가 찜해둔 곳이었다. 결과는 어김없는 대성공. 우동의 도시라 불리는 다카마쓰에서도 이렇게까지 감탄하며 먹었던 기억은 없었는데, 도쿄에서 우동 맛집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 우동도 훌륭했지만, 손님들 앞에서 깨끗한 기름으로 바로 튀겨주는 야채튀김은 아무런 조미가 없어도 놀라울 만큼 맛있었다.
다시 한 번 아내의 ‘선택의 마법’을 누리며 오늘의 일정을 산뜻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은 마법이라기보다는, 사전에 파악해 둔 정보의 밀도 차이일 것이다.)
식당에 이어 식후 카페까지도 아내의 안목은 흔들림이 없었다. 이어서 방문한 앤티크한 카페는 드립 커피를 일반적인 종이 필터가 아닌, 한눈에도 세월이 느껴지는 천 재질의 거름망으로 내리는 곳이었다. 닷지석을 중심으로 두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좁은 공간 안에서, 오랜 시간 가게를 지켜온 듯한 중년의 사장님과 젊은 종업원이 손발을 맞춰 시그니처 메뉴들을 능숙하게 만들어냈다.
아이리시 커피가 연상되는 이곳의 대표 메뉴는 핸드드립한 커피를 쉐이커에 담아, 쉐이커 모양 그대로 얼려둔 얼음 위에서 손으로 굴리며 온도를 맞추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만드는 과정은 세련되고 독특했지만, 가게의 분위기는 오히려 앤티크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카페만의 시간이 분명히 흐르고 있는 공간이었다.
이후 우리는 도쿄타워가 보이는 유명한 포토 스폿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표지판과 횡단보도, 멀리 보이는 도쿄타워와 파란 하늘이 한 장면 안에 어우러져 있었다. 그동안 흐렸던 날씨가 무색하게, 이날은 유난히 하늘이 맑았다.
우리 차례가 다가오자,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아내에게 사진 구도에 대한 지침을 받고 그대로 따르며 빠르게 촬영을 마쳤다. 그런데 사진을 확인한 아내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정확한 오더가 구현되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사진이 잘 나왔는지보다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이 먼저 부정당한 기분이 들었다. 별것 아닌 사진 한 장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늘 사소한 일도 쉽게 유치해진다. 그렇게 나는 오리 주둥이처럼 입을 내밀고, 잔뜩 삐진 채로 다음 장소로 향했다. 아마도 부부 사이에서 반복될 수많은 작은 갈등의 아주 축소된 버전이었을 것이다.
맑은 날씨 속에서 도쿄타워가 보이는 작은 공원에 도착해 피크닉을 하기로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푸딩과 샌드위치를 사 와, 둘이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돗자리를 잔디밭에 펼쳤다. 초록과 파랑의 색감이 또렷한 그 공간에서, 아내는 잠시 말없이 가방을 열었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아기 양말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작은 양말이 천 위에 놓이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그 순간, 대화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둘이 아닌 셋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말보다 먼저 공간을 채웠기 때문이다.
손이 모자라 타이머를 맞춰 사진을 찍고 있던 우리를 지켜보던 한 한국인 여성분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제가 사진 찍어드릴게요.’
우리의 모습이 너무 예쁘다며 먼저 나서 주신 것이었다. 아직 마음 한켠에 심통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습이 ‘예쁘다’는 말을 들으니 멋쩍은 미소가 자연스럽게 지어졌다. 우리가 정말 그렇게 보였을까, 아니면 그렇게 보이기 시작한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해가 기울 무렵에는 도쿄타워와 도쿄의 야경, 날씨가 좋은 날에는 후지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 잠시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하루 동안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고, 또다시 시야에 들어오는 도쿄타워는 이상하리만치 오늘의 흐름과 닮아 있었다.
저녁 식사 전까지도 우리는 쉼 없이 움직였다. 엄청난 인파로 가득한 시부야 스크램블을 지나, 한 아케이드 위에 조성된 공원에서 젊음이 가득한 시부야의 시원한 밤 공기를 느꼈다.
도쿄타워를 중심으로 수많은 장면과 감정이 오갔다. 아내의 꼼꼼함에 놀랐다가 고마움을 느꼈고, 투덜거림을 마음에 머금었다가, 낯선 사람의 말 한마디로 미리 경험하는 가족애를 느끼기도 했다. 감정의 진폭이 컸던 하루였지만, 그 진폭 덕분에 우리는 다시 하나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앞으로의 삶도 아마 오늘과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구심점을 중심으로 돌며, 때로는 멀리 다녀오고, 때로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겠지만, 결국 그 구심점으로 다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구심점은 아내와 내가 함께, 예쁘고 튼튼하게 쌓아가게 되겠지.
한 줄 정보
1. 임신 중 여행에서는 식사 만족도가 하루의 컨디션과 감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2. 산모가 미리 조사해 둔 식당·카페는 실패 확률이 낮아 동행자의 스트레스도 줄여준다.
3. 사진 촬영 같은 사소한 갈등은 여행 중 흔하지만, 공간과 시간이 감정을 자연스럽게 중재해 준다.
4. 아기 소품(양말, 옷 등)을 활용한 사진은 부모에게 ‘셋이 함께한다’는 감각을 빠르게 만들어준다.
5. 임신 중 여행은 감정의 진폭이 크지만, 그 진폭 자체가 부부 관계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