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7주차, 입체 초음파
임신 27주차, 입체초음파를 하는 날이었다. 입체초음파란 일반 초음파보다 조금 더 자세하게 태아를 볼 수 있는 검사로, 보통 이 시기 즈음에 한 번쯤 선택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임신 기간 동안 초음파를 통해 아가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운’에 좌우되는 면이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음파 화면을 통해 아가와 인사를 나누고, 얼굴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마주하는 일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들이 꽤나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입체초음파는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다. 산모나 태아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검진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부부가 이 검사를 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의 아가가 보고 싶기 때문'
정기 검진 때마다 기본적인 초음파로 아가를 만나긴 하지만, 그 화면 속 모습은 늘 흐릿하고 단편적이다. 얼굴의 윤곽이나 손가락, 발가락을 자세히 보기란 쉽지 않다. 상상 속에서만 그려오던 얼굴을, 현실의 화면으로 한 번쯤은 확인하고 싶어지는 마음. 입체초음파는 건강보다 그 마음에 더 가까운 선택이었다.
입체초음파를 예약해둔 날 아침, 아내는 이미 여러 후기들을 통해 나름의 ‘요령’을 익혀두고 있었다. 초음파를 하기 전에 어느 정도 식사를 하거나, 달달한 음료를 마시면 좋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하면 태아의 움직임이 활발해져 초음파를 보기에 조금 더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아내는 이 이야기를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전날 밤에도 몇 번이나 관련 글을 다시 확인했다. 정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다는 얼굴이었다.
'달달한 초코우유 먹고 가자.'
아내의 제안에 우리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초코우유와 작은 간식을 고르며, 이 행동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잠시 생각했다. 어쩌면 이건 의학적인 방법이라기보다, 마음을 다잡기 위한 작은 의식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에게 작은 위안을 주었다.
사랑이가 어느 정도 자라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아빠를 닮았을지 엄마를 닮았을지 상상하는 마음을 안고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화면이 켜지고, 의사의 안내에 따라 시선을 옮겼다. 드디어 사랑이의 얼굴을 찾는 순간이었다. 화면 속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는 그 짧은 침묵의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혹은 사랑이다웠다고 해야 할지, 사랑이는 우리에게 쉽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탯줄이 얼굴 한쪽을 가리고 있었고, 손과 발마저 모두 얼굴 쪽으로 향해 있는, 꽤나 특이한 자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대체 이 친구는 어떻게 이런 자세를 하고 있는 거야...?'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어이없는 실소를 터뜨렸다. 킥킥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화면 속 사랑이는 탯줄과 손과 발로 얼굴을 완벽하게 가린 채, 마치 지금은 보여줄 생각이 없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이래서 초음파로 아가의 얼굴을 본다는 일에는 ‘운’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나 보다 싶었다.
태아의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처음 화면을 마주했을 때 얼굴이 가려져 있더라도, 움직임이 있다면 자세가 바뀌고 탯줄이 치워지며 다시 기회가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달달한 것을 먹고, 걷고, 움직이며 그 ‘운’을 조금이라도 끌어당기려 애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이는 끝내 탯줄을 치워주지 않았다. 기다림 끝에 볼 수 있었던 것은 얼굴의 일부, 대략 60~70% 정도였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실망보다는 묘한 납득이 먼저 찾아왔다. 벌써부터 이 아이는 자기 방식대로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을 나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태교라는 것 혹은 아이를 맞이한다는 것은, 보고 싶은 걸 다 볼 수 없다는 사실, 원하는대로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인지도 모르겠다고. 우리가 아무리 준비하고, 정보를 모으고, 요령을 익혀도 끝내 통제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조금 덜 조급해지고 조금 더 기다리는 것뿐이라는 사실 말이다.
아마 사랑이는 언젠가, 자기가 보여주고 싶을 때 더 많은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 오늘은 그저, 이만큼만 보여주고 싶었던 날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반쪽짜리 얼굴로도 충분히 만난 것 같았다.
한 줄 정보
1. 입체초음파는 임신 중 선택적으로 진행하는 검사로, 태아의 얼굴과 외형을 비교적 자세히 볼 수 있다.
2. 태아의 얼굴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는 태아의 자세와 움직임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3. 27주가 넘어가며 태아의 장기들이 일정 수준 이상 발달해 구조적 이상 여부를 비교적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는 시기이다.
4. 입체초음파에서는 뇌, 심장, 척추, 복부 장기, 사지 길이와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한다.
5. 입체초음파는 의학적 확인과 동시에, 부모가 태아를 ‘구체적인 존재’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6. 검사 전 가벼운 식사나 단 음료 섭취는 태아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7. 입체초음파는 의학적 진단보다는 부모의 정서적 교감을 목적으로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8. 태교 과정 이라는것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며,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