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42] 비워둔 일정, 채워진 마음

임신 27주차, 김장철의 딜레마

by Sylvan whisper

'결혼을 하고 나면 스케줄 정리하는 일이 두 배, 아니 세 배는 어려워진다.'


결혼을 준비하던 때부터,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 중 하나다. 부부가 삶을 합친다는 것은 단순히 한집에 사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인연과 시간을 함께 껴안는 일이다. 물론 내 친구는 나 혼자 만날 수 있고, 아내의 친구는 아내 혼자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부부동반 모임’이 늘어나고, 무엇보다 가족의 일정은 정확히 두 배가 된다. 부모님의 생신이 두 번이고, 명절에 찾아뵐 집도 두 곳이다.

철없던 어린시절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날들 또한 이제는 달라진다. ‘우리 집’의 행사가 아니라 ‘우리들’의 행사가 되기 때문이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두 집안 모두에게 서운함이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더 오래 고민하게 된다. 도리를 다하고 싶은 마음이 일정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내가 임신을 한 지금, 그 복잡함은 한 겹 더 얹어졌다. 일정만이 아니라 컨디션과 안전까지 함께 고려해야 했다. 그 변화가 가장 또렷하게 드러난 시기가 바로 김장철이었다.

우리에게 이 시기는 단순한 '김장철' 하나가 아니었다. 양가 어머님 모두 김장을 준비하고 계셨고, 그 즈음 아내의 생일과 양가 어머님의 생신이 겹쳐 있었다. 불과 1~2주 사이에 다섯 개의 주요 일정이 몰려 있었다. 달력을 들여다볼수록 머릿속이 분주해졌다.




시댁이 우리 집에서 더 가까웠기에 김장 일정을 먼저 맞추기로 했다. 엄마의 생신은 김장날에 함께 축하할지, 아니면 따로 자리를 마련할지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처가 쪽 역시 김장 일정이 있었기에 장모님 생신은 그날에 맞춰 내려가 돕기로 했다. 아내의 생일은 내가 따로 준비하기로 했다. 일정을 조율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두 집안 모두에게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임신 중기를 거의 지나가던 아내의 배는 제법 불러 있었다. 김장날,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를 나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때문에 김장날 한켠에 임산부가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이 혹여 불편하지는 않을지, 오히려 더 눈치가 보이지는 않을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아내는 꼭 찾아뵙고 싶어 했다.


'당연히 챙겨야되는 일이야, 단순히 김장만 하러 가는게 아니잖아~'


그 말에는 미안함과 애정이 함께 묻어 있었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부모님들은 이해해주실 걸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역할을 다하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결정을 정리해준 것은 뜻밖의 전화였다. 김장 당일 아침, 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감기 기운이 거의 가셨지만 혹시라도 산모에게 옮길까 마음이 편치 않다는 말이었다. 이미 일주일 전부터 “감기 다 낫기 전엔 오지 마라”고 하셨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괜히 왔다가 아내 고생시키지 마라. 약도 못 먹잖아.'


그건 방문을 취소하자는 통보가 아니라, 며느리를 딸처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순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우리'의 방문은 결국 미루기로 했다. 일정이 틀어졌다는 아쉬움보다는, 배려받고 있다는 감각이 더 크게 남았다. 아내는 집에 남고, 나는 혼자 본가로 향했다. 이 또한 아내가 시댁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기인한 결정이었다. 아내의 배려와 본가 부모님들의 배려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김장날의 부엌은 여전히 분주했다. 배추를 씻어 털어내는 소리, 양념을 버무리는 손놀림, 김치통 뚜껑이 닫히는 소리들이 겹쳐졌다.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아내의 몫까지 배추를 버무렸다. 배추 속 사이로 양념을 채워 넣으며 문득 생각했다. 순간 김장은 단순한 계절 행사가 아니라, 세대를 잇는 일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내게 해주던 김치가, 이제는 내 아이에게로 이어질 시간이었다.


일을 마치고 나자 엄마는 김치뿐 아니라 고춧가루와 수육까지 한가득 싸주셨다. “아내 많이 먹여라.” 그 말 속에는 아쉬움도, 애정도, 미안함도 섞여 있었다. 트렁크에 김치통을 실어주며 몇 번이나 당부하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일정 하나를 비운 것이 아니라, 마음 하나를 더 채운 날이구나.


돌아오는 길, 차 안은 김치 냄새로 가득했다. 그 냄새는 어쩐지 훈훈했다.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수육 봉지를 받아들며 웃었다. 김장날에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 안에는 대신 건네받은 배려가 있었다. 임신은 우리 부부의 일상을 바꾸는 일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 시간은 부모님과의 관계에도 새로운 결을 더해주고 있었다. 덜 찾아뵌 날이었지만, 오히려 더 깊이 연결된 날이었다.


그날 우리는 김장에 함께하지 못했지만, 가족이 되어간다는 감각은 분명히 함께 나누고 있었다.








한 줄 정보

1. 결혼 후에는 양가 가족 일정이 합쳐지면서 행사와 기념일이 자연스럽게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2. 가족 간 배려는 일정의 완성보다 건강과 안전을 우선하는 선택에서 드러난다.

3. 태아의 폐는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았지만, 호흡 연습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4. 산모는 배가 눈에 띄게 커지면서 허리 통증과 골반 압박을 느끼기 쉽다.

5. 철분 요구량이 증가하여 빈혈 검사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6. 태아는 눈을 뜨고 감을 수 있으며, 수면과 각성 리듬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7. 자궁이 커지면서 위를 눌러 소화불량이나 속쓰림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8. 태동은 규칙성이 생기기 시작하며 하루 중 활발한 시간대가 구분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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