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28주차, 성심당 임산부 프리패스
'아기 나오기 전에 대전은 꼭 한 번 가야해!'
아내가 이 말을 꺼낼 때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연애의 초반, 내가 근무하던 도시가 대전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가장 풋풋한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곳도 대전이었다. 퇴근 후 무작정 걸었던 갑천 산책로, 주말이면 꽃구경을 핑계 삼아 찾았던 근교의 공원, 지도에 별표를 찍어두며 하나씩 채워가던 맛집들. 누군가는 대전을 ‘노잼 도시’라 부르지만, 우리에게는 각자의 고향 다음으로 정이 많이 가는 도시였다. 먼 훗날 정착지로 삼아볼까, 진지하게 이야기해본 적도 있을 만큼. 그래서인지 대전을 떠난 뒤로 아내는 종종 말했다.
'우리 거기 다시 한 번 가야지!'
특히 대전에서 유난히 많이 갔던 식당들과 성심당 이야기를 꺼낼 때면, 그 말에는 늘 작은 설렘이 묻어 있었다. 아내의 고향인 대구 맛집은 그리 자주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대전의 맛집 리스트는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강렬한 추억과 더불어, 대전에 다시 방문해야할 이유는 한 가지 더 늘었다. 바로 성심당이 '임산부 프리패스' 제도를 운영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대전에서 한창 데이트를 하던 무렵에도 성심당은 전국적으로 아주 유명한 제과점 이었지만, 지금에 비하면 그래도 그나마 상대적으로 웨이팅이 덜했다. 적어도 우린 수 시간을 기다려서 빵이나 케익을 사진 않았는데 지금은 성심당의 유명한 딸기시루같은 케익이나 빵을 사려면 가게 밖에서부터 줄을 서서 오랜 웨이팅을 감내해야 한다.
점점 유명세를 더해가면서 웨이팅의 수준이 달라지는 성심당의 모습을 보니, '이젠 우리의 추억 성심당에 갈 엄두를 못내는 걸까'(?)조바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우리에게 한줄기 빛이 보였으니, 바로 성심당이 감사하게도 임산부는 웨이팅 없이 바로 매장에 입장할 수 있게끔 배려를 해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장모님의 생신, 그리고 아내의 생일을 기념하여 대구를 내려가는 일정을 짜면서, 이번에야말로 꼭 대전을 성심당을 들러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계획을 세웠다.
장모님의 생신과 아내의 생일을 기념해 대구로 내려가는 길, 우리는 대전을 들르기로 했다. 점심은 칼국수였다. 대전은 칼국수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유명한 집이 많지만, 또 하나의 새로운 맛집을 발견하며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다.
대전역 인근에서부터 대전시내의 풍경은 그야말로 성심당이 어느정도 꾸며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치는 중소형 카페에서는 '성심당 빵 반입 가능' 현수막이 걸려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쇼핑백이 아닌 연두색의 '성심당 케익 가방'을 들고다닌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에 키득키득 거리면서 성심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위풍당당하게 임신 확인증을 챙긴 채로 말이다.
그런데 우린 또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임산부 라인에도 적지 않은 대기가 있었다는 것. 듣기로는 ‘딸기시루’가 첫 출시되는 날이면 일반 줄은 세 시간, 임산부 줄도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린다고 했다. 우리는 다행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잠깐의 대기와 빵을 고르고 계산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합치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매장 안은 쾌적하다기보다는 활기차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직원들이 분주하게 안내하고 있었지만, 절대적인 방문객의 숫자가 워낙 많아 혼잡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불평이 생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 엄청난 인파 속에서도 임산부를 위한 통로를 따로 마련해두었다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졌다.
우리는 양손 가득 빵과 케이크를 들고 매장을 나왔다. 분명 시간을 단축시켜준 제도였지만, 그래도 한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 짧게 느껴졌던 건, 우리가 누군가의 배려 안에 서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임산부 프리패스'로 입장을 했지만, 사실 성심당에서 빵과 케익을 사는 과정 자체는 '쾌적'이나 '여유'에 가깝진 않았다. 결코 매장의 규모가 작지 않았지만 엄청난 인파로 붐비는 매장 내부, 직원분들이 계속해서 안내를 해주고 계셨지만 절대적인 방문고객의 숫자가 많았기 때문에 혼란만을 방지하는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성심당의 임산부 프리패스가 소용없다거나 매장의 운영 방식이 부적절하다는 말이 아니라 체계적인 시스템과 모든 직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심당의 인기가 엄청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이러한 프리패스 제도로 인하여 시간을 엄청 단축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야 빵과 케익을 살 수 있었다는 점에 놀라기도 했고, 그와 동시에 이런 제도를 운영해준다는 점에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먼저 버튼을 눌러주는 사람, 식당에서 조심히 의자를 빼주던 직원, 지하철에서 '여기 와서 앉아요' 하고 자리를 양보해주는 시민분들, '우린 임산부를 좋아해'라고 웃으며 말해주던 어느 식당 사장님의 한마디. 꼭 거창한 제도가 아니어도, 이러한 말 한마디나 작은 배려는 기억에 오래 남기 마련이다.
대전에서의 반나절도 안되는 짧은 여행은 '빵'이 전부가 아니였던 듯 했다. 우리가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는 이렇게 또 하나의 장면을 추억에 담았다.
언젠가 아이에게 말하는 날이 올까?
'엄마 아빠가 여기 빵 되게 좋아했었어!'
한 줄 정보
1. 대전의 성심당은 임산부 프리패스 제도를 운영하여 임산부가 웨이팅 없이 우선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2. 임신 확인증은 병원에서 발급 가능하며, 공공기관·문화시설·일부 상업시설에서 배려 제도 간 활용되기도 한다.
3. 임신 중 장시간 대기는 복압 상승과 피로 누적을 유발할 수 있어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4. ‘배려받는 존재’가 된 경험은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감정의 결을 바꾼다.
5. 임신선이 나타날 수 있다. 흔히 임신선은 배꼽주변만 생각하지만 배, 가슴, 엉덩이에도 보라색 혹은 갈색톤의 피부색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6. 태아는 아직 시각을 인식할 순 없지만 이제 눈을 깜빡거릴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