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44] 너무너무너무 많아

임신 28주차, Check List

by Sylvan whisper


요즘 우리는 ‘육아용품 체크리스트’를 본격적으로 작성하기 시작했다. 출산 전 해야 할 일, 입원 가방 준비물, 산후조리원 반입 물품, 출산 후 행정 처리, 예방접종 일정까지. 항목을 하나씩 적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너무너무’ 많다는 것.


젖병, 젖병 소독기, 수유등, 속싸개, 겉싸개, 손싸개, 발싸개, 기저귀, 기저귀 갈이대, 체온계, 아기 욕조. 이름도 생소한 물건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나는 습관처럼 카테고리를 나눴다. ‘출산 직전’, ‘입원 가방’, ‘아내가 조리원에 있을 때’. 체크 박스를 만들고, 필요 여부를 구분하고, 구매 시기를 적어 넣었다.

단순히 ‘물품’ 목록으로 끝이면 얼마나 좋을까. 시기별로 해야 할 일들도 만만치 않았다. 체크리스트 한켠에는 To do List가 함께 자리 잡았다. 모든 항목을 환경, 경제, 건강 등 성격별로 나누고 시기와 방법을 정리했다. 막 시작했을 땐 끝이 보이지 않아 오히려 한숨이 덜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리하면 할수록 리스트의 양과 다양성은 오히려 늘어났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정리하는 과정에서 안심을 얻는 편이다. 막연하던 미래가 항목 번호로 바뀌는 순간, 나는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체크리스트가 길어질수록 마음 한편은 더 조용해졌다. 이렇게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 하나를 맞이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다.




막연히 ‘아이가 태어난다’고만 생각했던 시간이 이제는 ‘언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로 변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많은 항목들 중에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일까. 젖병의 개수일까, 수유등의 밝기일까, 아니면 우리가 밤을 버틸 체력일까. 게다가 아무리 리스트업을 잘해도 실행이 따라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체크리스트를 채워가는 손은 분주했지만, 정작 부모가 되는 마음은 아직 천천히 따라오는 중인 듯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하나의 항목에 체크 표시를 했다. 완벽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앞에서 조금이라도 덜 허둥대고 싶어서였다. 사실 초보 엄마아빠는 아무리 준비해도 결국 한동안은 혼돈을 겪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 리스트는 ‘준비된 부모’가 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다가올 혼란을 미리 상상해보고 그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장치인지도 모른다.


아마 이 리스트의 본질은 준비물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과정일 것이다.







한 줄 정보

1. 출산 전 준비 항목은 물품보다 행정·지원·일정 관리가 더 복잡하다.

2. 체크리스트 작성은 준비라기보다 ‘막연함을 구체화하는 과정’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3. 산후조리원·출산 직후 2주 동선에 맞춘 준비가 가장 중요하다.

4. 육아용품은 ‘많이’보다 ‘언제, 왜 필요한지’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5. 완벽한 준비는 불가능하지만, 정리는 혼란을 줄이는 심리적 완충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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