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40] 실전 아빠연습

임신 26주차, 친구부부와의 여행

by Sylvan whisper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운 좋게도 우리가 새롭게 이사 온 도시에서, 마음만 먹으면 바로 만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우연은, 그 친구 부부와 우리가 거의 같은 시기에 임신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이가 생긴 시점은 불과 1~2주 차이. 거의 같은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내에게 그 친구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같은 몸의 변화를 겪고, 같은 걱정을 나누며,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든든한 일이다.


그 부부는 우리가 결혼하기 전부터 넷이 함께 어울리던 사이였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이어오던 우리는, 어느 날 내가 먼저 그 부부에게 올해가 가기 전에 한 번 여행을 가보자고 제안했다. 두 산모의 배는 점점 불러올 것이고, 그 집에는 이미 첫째 아이도 있었기에, 올해를 놓치면 당분간은 이런 시간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제안은 아내를 통해 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연락을 했다.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번 여행은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저녁 식사마다 자연스레 곁들였던 술은 사라졌고, 식전주나 웰컴드링크조차 알코올이 들어간 것은 입에 대지 않았다. 숙소를 고르는 기준 역시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아이’가 가장 먼저였다. 친구 부부의 첫째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온수 수영장이 있는 곳이 우리의 숙소가 되었다.


점심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한 뒤, 저녁 전까지의 일정은 온전히 ‘아이의 수영 시간’으로 채워졌다. 어쩌면 아이가 충분히 에너지를 쓰고 일찍 잠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위한 시간 같았지만, 동시에 우리 어른들을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알코올 없는 바비큐로 저녁을 마친 뒤, 우리는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의 대부분은 ‘육아’였다. 나머지 10퍼센트도 결국은 육아로부터 파생된 삶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예전엔 일, 취미, 여행이 중심이던 대화가 이제는 기저귀, 수면 패턴, 이유식으로 옮겨가 있었다. 우리는 이미 조금씩 다른 세계로 이동하고 있었다.

다음 날, 바로 헤어지기에는 아쉬워 강변의 한 카페로 향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의 교통체증과 아이의 일정까지 고려하면 망설여지는 선택이었지만, 이런 시간이 또 언제 가능할지 알 수 없었기에 우리는 카페로 들어섰다. 그렇게 우리는 차를 마시며 또다시 ‘아기’ 이야기를 한참을 이어갔다.


'아가 응가 한 것 같은데?' 친구 아내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단번에 바뀌었다.




문제는 지금 우리의 장소가 교외의 작은 카페였다는 점이었다. 기저귀를 갈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밖은 쌀쌀했고, 차로 이동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남은 선택지는 카페 화장실뿐이었다. 하지만 화장실 칸 안에는 아이를 눕힐 공간도, 물티슈와 기저귀를 올려둘 자리도 충분치 않았다. 한 사람이 두 팔로 감당하기에는 여건이 여간 까다롭지 않았다. 산모인 엄마들보다는 아빠가 나서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친구 남편이 아이를 안고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예비 아빠인 내가 그 뒤를 따랐다.


사실 내가 한 일은 많지 않았다. 물티슈와 기저귀를 대신 들어주고, 화장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안고 있는 친구를 대신해 기저귀를 채워주는 일을 거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은 내게 예상보다 깊은 울림을 남겼다.


아기를 안은 팔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작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물음이 계속 떠올랐다. 아이의 다리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기저귀를 어느 정도로 조여야 할지, 모든 것이 서툴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잔잔한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아, 그래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물론 그것은 다른 집 아이였고, 나는 잠깐 거들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라는 역할이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다가온 첫 순간이었다.




흔히들 조리원을 퇴소한 뒤, 처음으로 아이의 용변을 처리하는 날을 가장 긴장되는 순간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아마 그때의 나는 훨씬 허둥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의 이 경험은, 그날의 나를 조금은 덜 떨리게 해줄 것 같았다. 우연처럼 찾아온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게는 제법 의미 있는 예행연습이 되었다.


아직 우리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 잠시 ‘아빠’가 되어보았다.






한 줄 정보

1. 같은 시기에 임신한 친구 부부와의 여행은 예비 부모에게 정서적 지지망이 되어준다.

2. 임신 이후 부부의 여행 기준은 ‘즐거움’보다 ‘아이 중심 환경’으로 이동한다.

3. 술 없는 저녁과 육아 중심 대화는 이미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4. 외출 중 기저귀 교체 상황은 초보 부모에게 가장 현실적인 육아 과업 중 하나다.

5. 예비 아빠에게는 사소한 일이라도, 아이를 돌보는 일은 실제 육아의 감각을 미리 경험하는 시간이 된다.

6.. 산모보다 아빠가 육체적으로 대응하는 상황은 임신기 부부 역할의 자연스러운 전환이다.

7. 조리원 퇴소 후 처음 겪는 육아 과업의 긴장감은 대부분의 초보 부모가 공통적으로 경험한다.

8. 태아에게 지방층이 생기면서 피부가 퉁퉁해지기 시작한다.

9. 산모는 눕는 자세도 점점 더 불편해진다. 임산부용 바디필로우 등이 도움이 되며, 베개를 배 밑, 무릎 사이에 두는 것이 혈액순환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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