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로그 #2] 보통 보다 조금 더

♬ jack ocean - can't get happy

by Sylvan whis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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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보통보단 가난해’


엄마는 어린 내게 이런 말들을 했다. 엄마 나름의 세상에 대한 반항이 담긴 말이었을까? 젊은 엄마도 세상의 불합리함과 불공평함을 느꼈겠지. 자신의 형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엄마는 내게, 퍽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보통 보다 조금 가난해’


엄마는 왜 ‘가난하다’도 아니고 ‘조금 안 좋아’따위의, 어정쩡한 표현을 했을까? 이 말의 모호함은 이도 저도 아닌 행동의 아이를 낳았다. 나는 좌절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올바르게 크지도 않았다. ‘우린 부자가 아니구나’하며 자랐다.



그런 말들은 내게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스며들었다. 젊은 엄마가 그런 언어를 내뱉는 빈도가 많았거나, 아니면 어린 나는 그런 말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정확한 의미는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그 비관적 뉘앙스에 눈을 떠버린 아이였던 것이다. 이 깨달음은 아주 작은 비극이라고 해도 좋다. 아주 작고 성가신 비극.


그 아주 작고 성가신 비극이란 것은 가령 이런 것이다.

나는 새 학기를 맞이하여 필요한 걸 묻는 엄마에게 ‘저 용돈 남은 거 있어요’라고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얘가 이렇다니까’ 엄마는 지인들에게 그런 어린 나의 모습을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용돈 받기를 거부하는 아이’를 보고 어른들은 어떤 경탄이 섞인 시선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기도 했다. ‘착하고 어른스러운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썩 좋았다.

그와 동시에 나는 엄마의 저금통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챙기거나, 10원과 100원짜리 동전을 찾기 위해 집안 온 구석구석을 뒤지는 아이였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용돈을 주지 않는 엄마를 미워하면서 말이다.

엄마를 미워하는 동시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였다. '조금 가난해' 그런 말을 주기적으로 내뱉는 엄마보다 용돈을 요구하는 아이에게 곤란한 표정을 짓는 엄마가 싫다는 생각을 하는 아이. 그래서 나는 엄마의 그런 표정을 보기보단 엄마의 저금통에 손을 대고 매를 맞기를 택했다.


아주 작고 성가신 비극은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같이 성장이라도 한 건지, 나는 꽤나 이 역사에 얽매인 사람이 되었다. 하찮은 결핍을 주기적으로 언급했던 엄마, 그리고 그 결핍이 삶에 스며들어버린 아이는 이제 작고 성가신 결핍의 역사에 얽매인 어른이 된 것이다.


그리고 결핍은 욕망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욕망을 '욕망'이라고 부르지 않고, ‘목표’라고 부르기로 했다. 때문인지 때때로 내 가족은 나를 쫌생이, 구두쇠라고 부른다. 이건 내 씀씀이를 증명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가 얼마나 그 결핍에 묶여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작은 비극은 잔잔하게 내 삶의 다양한 측면에 침투했다. 그리고 이건 내게 고통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게 내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 욕망을 ‘목표’라고 지정한 순간부터 말이다. '나는 어느정도 가난해'라는 생각은 '내 형편에 그걸 어떻게 사'라며 삶의 소소한 불편들을 감수하는 작은 고통이 되기도 하였고, 또 그와 동시에 그 생각은 '부자가 되어야해, 돈을 아껴야해'라는 목표로 이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니, 스스로 자각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이런 성향의 근원이 엄마의 '조금 가난해'라는 말에서 온 것이 아닐까? 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나의 동력이자 고통의 근원이 나의 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더 괴롭혔다.


나무 밑으로 들어가면 피할 수 있을 만큼의 비가 내리는 날, 수화기 너머로 친구와 안부를 주고받던 나는 나의 이 결핍이 너무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친구는 자기도 잘 안다고 답했다. 내 고통의 근원을 안다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비슷한 고통을 안다는 말이었을까? 나는 더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보통 보다 조금 더. 이 기억은 내 삶에 동력을 주기도 했고, 지금은 그 동력보다는 통증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서글픈 것은 이제 그런 언어를 내뱉는 사람은 엄마가 아니다.


나는 보통보다 조금 더 못한 사람이고, 그렇지만 보통보다 조금 더 잘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이제 엄마가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고통의 근원은 이제 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결론은 퍽 나를 강도높게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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