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32] 영락없는 사람이네!

임신 22주차, 정밀 초음파

by Sylvan whisper

정밀 초음파를 하는 날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침부터 특별히 긴장을 했던 건 아니었다. 늘 그래왔듯 병원으로 향했고,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다만 그날은 ‘정밀’이라는 단어가 유독 계속 상기되었다. 여태까지 좀 중요한 검사가 있는 날에는 사랑이가 얼마나 컸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지만 혹여나 어떤 문제가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미세하게 같이 동반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렘에 더하여 '확인'과 '판단'이 항상 따라왔던 것이다.


예쁘다는 말을 듣는 날이기만 한게 아니라 괜찮다는 말을 허락받아야 하는 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용히 마음 한구석에 아주 자그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긴장돼?'
'아니~ 그냥 빨리 보고 싶어.'


내가 묻자 아내는 고개를 작게 저으며 웃었다. 가볍게 얘기하긴 했지만 아내는 농담을 섞어 말하긴 했지만 내게 얼마전부터 '손가락 발가락 다 있는지 확인 해야지'하고 말하곤 했다. 때문에 아내도 분명 어떤 걱정을 한켠에 가지고 있을 거란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초음파 검사실에 들어가고 불이 조금 어두워지자 모니터가 먼저 켜졌다. 화면 속에는 우리가 그동안 상상으로만 불러왔던 아이가 있었다. 처음에는 무엇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회색과 검은색 사이 어딘가에서
형체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원장님께서 한 부위씩 정확히 짚어주시기 시작하면서 아주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이게 정면얼굴, 이게 지금 아가 눈동자에요'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지자
그제야 아가의 눈이 보이고 코가 보였다. 입술의 윤곽이 드러났다. 콧구멍과 입술만 따로 보이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 순간의 사진을 보니 그 하찮고 작은 콧구멍과 작은 입술이 귀여웠다. 아내도 나도 분명 그 순간에는 피식 하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직까지는 긴장감을 다시 가지고 계속해서 초음파 검사가 이어졌고 손가락과 발가락, 하나씩 차근차근 확인하였다. 왼쪽손 손가락 다섯개, 오른쪽 다섯개 그리고 발가락도 왼쪽 오른쪽 모두 다섯개. 설명을 들으며 나는 괜히 질문을 아끼게 되었다. 혹시라도 이 흐름을 끊기게 될까봐 그랬던 듯 하다.


검사는 생각보다 길었다. 모든게 정상이라는게 확인되고 나니, 정밀 초음파는 아가가 세상으로 나올 준비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받는 절차에서 우리 사랑이의 귀여움을 감상하는 시간이 되었다.


'전부 정상이에요.'


원장님의 이 한 문장이 나오자 미묘하게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혀 있던 그 무언가가 말끔히 사라졌고 그동안 쌓여 있던 말들이 한꺼번에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 들었다. 같은 화면인데도 이제는 걱정은 없고 '사랑'이 보였다. 다시금 머리속에 각인된 화면은 사랑이의 꽉 쥔 작은 주먹이었다. 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작고, 주먹이라고 하기엔 더 작은데 분명히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주먹 쥔 거 봐.'
'자기 닮았어.'

우리는 아무 근거도 없이, 정말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따듯한 마음을 느끼며, 안심을 느끼며, 이 아이가 지금 자기 몸 안에서 무언가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서 더 단단해 보이는 힘을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가족들에게 초음파 사진을 하나씩 보냈다. 사진 속 아이는 아직 누구의 얼굴도 아닌 것 같은데 다들 아주 작고 소중하지만 뚜렷한 형체를 가진 사랑이의 이목구비 손과 발을 보면서 말했다.


'영락없는 사람이네.'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욱 살가운 말투로 하트 이모티콘까지 붙여가며 '사랑이 이눔시끼'하고 말씀하셨다. 작은 이모티콘 하나가 괜히 더 진하게 다가왔다. 아이의 얼굴을 보고 웃고 있을 가족들의 표정은 사랑이의 상상속 얼굴 보다도, 사진속 얼굴 보다도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렇게 우리 아가는 아직 품에 안아보진 않았지만 여러 사람의 마음속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아가는 '영락없는 사람' 그리고 '분명히 존재하는 사랑'이었다.








한 줄 정보

1. 20주가 막 지났을 무렵의 정밀 초음파는 태아의 얼굴·사지·장기 구조를 세밀하게 확인해 선천적 기형이나 발달 이상 여부를 평가하는 검사다.

2. 이 시기에는 콧구멍, 입술 윤곽, 손가락·발가락 개수처럼 구체적인 신체 구조가 비교적 또렷하게 관찰된다.

3. 검사 전 느끼는 설렘과 불안이 동시에 존재하는 감정은 대부분의 예비 부모가 경험하는 매우 보편적인 반응이다.

4. 태아가 주먹을 쥐는 모습은 신경계와 근육 발달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5. 초음파 사진을 가족과 공유하는 과정은 개인의 사건에서 가족 전체의 서사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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