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지 못한 시간에게
1
교수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특별한 칭찬을 덧붙이지도, 그렇다고 따가운 질책을 하지 않았다. 그저 다른 학생들도 들을 수 있도록 몇몇 문장을 언급했고 더 힘을 주어도 될 부분, 고치지 않고 그대로 가도 될 부분을 짚어주었다. 나는 강의실 앞쪽에 앉기를 선호했는데, 이런 순간이 올 때면 뒤에서 시선들이 느껴지는 듯했다. 따분한 일상 속에서 나는 그 시선이 정말로 존재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문창과의 수업시간은 항상 정갈하게 흘렀다. 학생들의 글들은 도마 위에 오르는 순간들이 몇 있었고, 교수는 정확히 해줄 수 있는 말만 코멘트로 남겨 주었다. 너저분 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깨끗하지도 않은 비평. 그렇기에 나는 이 수업들에 대단한 불평을 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떤 만족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필기구가 사각거리는 소리는 내가 유일하게 이 수업들에게 만족스러워했던 부분이었다. 내가 썼던 글들이 자주 언급 되었지만, 색다를 것 없는 학기가 지날수록 이 또한 점점 내겐 어떤 자극이 되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이 장면들을 오래 기억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었다. 의심을 해본 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굳이 심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글을 쓰면 이름이 불렸고, 학우들의 반응이 있었다. 나는 그 흐름 속에 있었고, 특별한 사건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2.
자취방의 모습은 블랙, 화이트톤의 깔끔한 모습을 유지했다. 미니멀리즘을 유지하는 '집'의 모습을 나는 퍽 중요하게 여겼다. 사실 이 자취방이라는 것에 나는 '거주'의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작업실'로써의 의미를 더욱 많이 부여했다. 루틴처럼 내가 원하는 시간대에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다. 하얀 벽지와 최소한만 갖추어진 무채색의 가구들 속에 유일한 색깔을 가진 물건이었던 책상이 창가에 놓여있었다. 책상 위로는 작업용 노트북이 한가운데 놓여 있고 오른쪽 끄트머리에 가끔씩 들춰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그리고 내 일기장이 놓여있었다. 책과 일기장은 '휴식과 평안' 보다는 작업실로써의 정체성을 부여해 버린 이 공간의 타는 듯한 긴장감을 그나마 묘한 안락함으로 덮어주는 요인이었다.
내가 원하는 시간, 주로 해가 지기 시작하는 무렵부터 새벽까지 어둑한 시간에 나는 글을 썼다. 특별한 각오 없이 책상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밤과는 어울리지 않는 음료인 커피를 마셨다. 문장은 생각보다 쉽게 나오기도 했고 도무지 쓸 수 없는 날이 오기도 했다. 몇 시간씩 혹은 며칠씩 같은 단락을 붙잡고 있다가도 전부 지워버리거나 혹은 하나의 단어도 쓸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엔 일단 쓰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수십 페이지씩 써버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이 쓰는 행위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의지라기보단 습관이라고 하는 것이 더 가까워 보였다.
대학시절의 나는, 내 작품들은 많은 이들에게 읽혔다. 교수는 내 이름을 자주 불렀으니까, 내 이름이 불리면 학우들은 내 글을 궁금해했으니까. 유별나지 않은 나의 성격과, 대단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창피하지도 않아 자부심을 가질만하다는 점으로 인해 나는 가감 없이 내 작품을 공유했다. 이렇게 공유될 때면 그 뒤엔 내 작품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을 귀담아듣는 편은 아니었다. 나는 그보단 다시 새로운 글을 쓰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이었다.
여러 피드백, 여러 의견들을 귀담아듣는 게 더 나은 길일까? 적어도 내겐 아닐지도 모른다. 정신을 산만하게 하고 과거에 매몰될 것이다. 어차피 내 작품은 훗날 대중의, 역사의 판단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읽힌다는 감각을 굳이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새벽이 깊어질수록 문장은 단단해졌다. 불필요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중심이 또렷해졌다. 나는 그걸 느낄 수 있었다. 몇 번의 새벽이 더해지고 작품의 깊이는 충분함을 갖추어갔다.
'이 정도면...'
더 밀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이 글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장이 될 것 같았다. 그 판단은 늘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디서부터 인지 알 수 있었다. 깜빡이는 커서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를 대체했던 새벽이 흐르기를 수개월이 지났다. 페이지 수는 그대로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아 버렸다. 이 '멈춤'은 고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고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항상 열려있던 노트북을 덮었다. '완성'이라는 말이 떠오르진 않았다. 그저 더 이상 손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책은 그렇게 완성되어 있었다.
3.
출판사의 목록을 정리했다. 몇 군데는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었고 몇 군데는 검색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메일 초안을 여러 개 만들어 두었다. 자기소개 문장은 매번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 변화엔 딱히 의미가 담겨있지 않았다. 차라리 모든 메일을 통일시켜 버리는 게 나을 정도였다.
작품을 쓰는 것보다 이 이메일 한통에 담을 비교적 짧은 내용의 '자기 어필'을 작성하는 것이 훨씬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어느 날은 지나치게 겸손했고, 어느 날은 불필요하게 설명이 자질구레했다. 첨부파일은 변하지 않고 제목도 바뀌지 않고 늘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이메일을 작성했다가 지우거나, 전송 버튼에 커서가 맴돌기를 반복하던 무렵에는 첨부파일의 작품을 다시 열었다. '완성' 했다고 느낀 작품은 다시 열어보지 않는 나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아마도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품을 다시 들여볼 때면 보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느꼈다. 일말의 조바심도 잠재울 수 있었다. 작품은 충분하니까 말이다. 이 사실은 늘 안심을 주었다. 때문에 파일을 열고 닫는 일이 반복되어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메일의 날짜만이 바뀌어갔다. 비슷한 날들이 몇 번 더 흘렀다. 출판사 목록도 그대로였다. 작품은 여전히 파일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내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읽히는 일이 없었던 작품이 종래에는 나에게 마저도 읽히지 않게 되었다. 시간은 무심히 흘렀다.
4.
마침내 나는 첫 번째 이메일을 전송했다. 편지가 날아가는 듯한 심볼이 약간의 후련함을 선사했고 나는 작품을 완성했을 때에 이어 두 번째로 노트북을 덮을 수 있었다.
정리해 둔 출판사 목록들 가운데, 가장 영세한 출판사처럼 보이는 곳을 선택했다. 출간된 책의 개수마저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곳이었다. 그렇지만 이 출판사가 가지고 있는 색깔, 분위기가 내 문체나 작품에 손색없을만한, 잘 어울릴만한 매력을 지닌 곳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메일함을 자주 열어보지는 않았다. 전송 직후에 한 번, 그날 밤에 한 번,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한 번 정도였다. 그 이후로는 굳이 확인해야 할 이유를 찾지 않았다.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보다 기력이 드는 일이었다. 열어보려고 할 때는 기력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없었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항상 기력이 빠지는 느낌이 났다.
며칠이 흐른 뒤, 그 사이 메일함에는 광고 메일 몇 통이 더 쌓였고 자동 알림 같은 것은 오지 않았다. 읽지 않은 메일의 숫자가 늘어나도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숫자를 그대로 두는 쪽이 편했다. 답이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는 건,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판단을 유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침묵은 안정적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출판사를 떠올리지 않았다.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마침표처럼 느껴졌다. 할 일을 하나 끝낸 기분이었고,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기다림은 점점 기다림이 아니게 되었다. 그냥 그런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어느 순간부터는 메일함을 열지 않는 날이 생겼다. 하루, 이틀, 사흘. 답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않아도 일상은 문제없이 돌아갔다. 침묵은 점점 배경음처럼 희미해졌고, 나는 그 위에 별다른 의미를 덧붙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하나의 결론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5.
며칠 뒤, 본가에 들렀다. 문을 열자 익숙한 냄새가 먼저 맞이했다. 언제 맡아도 변하지 않는 향기였다. 부엌에서는 물이 끓는 소리가 났고, 도마 위에서 칼이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소리들이 집 안의 공기를 안정적으로 채우고 있었다.
“아들, 밥은 먹었어?”
“잘 챙겨 먹어요. 걱정하지 마.”
“그래, 너는 네가 알아서 잘하니까. 엄만 아들 믿어.”
그 말은 예전에도 여러 번 들었던 말이었다. 특별히 새롭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그날은 그 말이 오래 귓가에 남았다. 믿는다는 말에는 기대와 동시에, 맡겨두겠다는 뜻도 함께 담겨 있었다.
내가 쓰던 방은 이제 엄마의 방이 되어 있었다. 책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구성은 달라져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읽었던 소설들과, 학창 시절에 끄적였던 일기장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남아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내가 알지 못하는 책들과 소품들이 들어와 있었다. 공간은 같은데, 주인은 바뀐 느낌이었다. 오래된 유적지가 보존은 되었지만 박물관으로 바뀌면서 어쩔 수 없이 그 위에 무언가가 덧씌워지는 것처럼, 그 변화는 낯설기보다는 자연스러웠다. 또한 자연스럽지만 묘한 긴장감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식탁에 앉자 엄마는 친척 이야기를 꺼냈다. 누가 어디에 취업했다더라, 누가 창업을 했다가 힘들어졌다더라 하는 이야기들. 나는 그 말들의 의도를 굳이 해석하지 않았다. 엄마가 바라는 것은 단순했다. 나도 무리하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 그 바람은 조용했고,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선배들 얘기 들어보니까, 우리도 ○○ 계열로는 취업이 꽤 되더라고요.”
그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흘러나왔다.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었지만, 동시에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몇 가지 취업 정보를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대충 훑어보는 정도였지만, 생각보다 구체적인 경로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보들은 차분하고 또한 친절했다. 그 길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대안이라기보다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선택지처럼 보였다. 점점 내게 있어 그 정보들이 실체화되어가는 것이었다. 마치 추상적인 관념을 담아낸 예술작품이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붕 떠있는 듯하다가, 도슨트를 들으면서 점점 내 것이 되어가는, 관념이 살아나는 듯한 경험처럼 말이다.
여러 정보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른 성격의 활동이었다. 나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뱉어내는 것보다 바깥의 정보들을 담아내는 것이 더 힘겨운 사람이었다. 이 지루한 과정에 피로감이 느껴질 때 즈음 나는 다시금 메일함을 열어보게 되었다.
메일함은 여전히 조용했다. 내가 보낸 메일의 수신확인란은 '읽지 않음' 상태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침묵은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내게 답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 세계에 특별한 응답을 보내지 않았다.
6.
메일함을 열어보게 되는 습관은 물기가 증발하듯이 서서히 알듯 모를 듯 사라졌다. 메일함은 그대로였으니까, 새로운 알림이 없었고, 내가 보낸 메일의 상태도 변하지 않았다. 고작 이 작은 출판사로부터의 침묵은 내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때문에 이제는 그 응답여부를 확인하지 않아도 나의 하루는 문제없이 흘러갔다. 아침이 오고, 해가 기울고, 밤이 왔다. 무응답에 나 또한 무응답으로 일괄하게 되는 날들이 점점 쌓여갔다. 그 사이에 특별한 감정의 출렁임은 없었다. 불안도, 초조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그 이상함을 붙잡고 오래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즈음부터 나는 노트북으로 다른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엄마의 속내가 다 드러나는 눈칫밥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였다. 취업 공고 사이트에는 익숙하지 않은 활자들, 서사나 묘사가 없는 활자들이 난잡했다. 그러다 점점 그 활자들이 익숙해져 갔던 것이다. 산만하게 느껴졌던 단어들은 오히려 일목요연하고 일정한 틀을 갖추고 있었기에 쉽고 빠르게 의미 전달이 가능한 글자들이었다. 직무 이름과 자격요건, 근무 조건 같은 것들이 일정한 형식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항목들은 명확했고, 요구사항은 분명했다.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지원해야 하는지가 적혀 있었다. 마감일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 역시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보는 감정을 요구하지 않았고, 그러한 점은 퍽 편리한 것이었다.
몇 개의 공고를 열어보았다. 조건을 비교하고, 필요한 역량을 가늠해 보는 일은 생각보다 오랜 고뇌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글을 쓸 때처럼, 도무지 쓰이질 않는 문장을 붙잡고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면 그냥 넘길 수 있었다.
취업 시장을 겉핥기식으로 들여다보는 일이, 응답을 기다리는 일보다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메일함을 이제는 다른 목적으로 열어보게 되었다. 어느새 나의 하루는 이전의 내가 보내는 하루와는 점점 다른 색깔이 번져가고 있었다. 읽히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나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았다.
기다림을 더 이상은 기다림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을 나는 보류라고 불렀다. 보류는 특별한 긴장을 동반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이것은 동시에 흔들리지 않음을 의미했다. 나는 여전히 견고했고 이 견고함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7.
일상이 바뀌어 가면서 똑같은 말의 반복처럼 느껴졌던 공고문도 내게 의미를 띄우기 시작했다. 의미가 분명하다는 측면에서 지극히 친절하지만 또한 분명함에는 냉정함이 담겨있었다. '필수', '우대', '가능', '무관' 같은 단어들이 여러 요소들의 끝마다 붙었다.
그것들을 처음 접할 때의 나는 그 문장들, 단어들을 특별한 감정 없이 읽었더랬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곧바로 탈락하는 것도 아니었고, 충족한다고 해서 선택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저 기준이 있을 뿐이었다. 통과와 선택은 다른 일이었다.
이 문장들이 글을 쓰는 행위와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내 문장을 자주 언급하던 교수는 꼭 필요한, 정확히 해줄 수 있는 말만 코멘트로 남겼었다. 너저분 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깨끗하지도 않은 비평. 더 힘을 주어도 될 부분을 알려 주었고, 고치면 좋을 부분, 고치지 않고 그대로 가도 될 부분을 짚어 주었다. 그때의 나는 교수의 잣대를 퍽 가벼이 여겼다. 그리고 공고문들에서 보이는 단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예전의 말들이 다시금 들려왔다.
'고쳐도 되는 가능', '더 밀어도 되는 우대', '그대로 가도 되는 무관' 나는 처음 공고문을 보면서도 이 조직들의 잣대를 가벼이 여겼는데 이제야 이 말들의 정확한 위치가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말들 '기준'의 정확한 위치가 인식되니 그 기준에 빗대어 '평가된 나'의 또한 정확한 위치가 어딘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저 그 기준들에 의해서 평가되었을 뿐이었다. 뒤에 앉아있는 학생들에게 선망의 눈빛을 받을 수 있는 탁월함, 교수의 입에서는 그 '탁월함'이라는 단어는 나온 적이 없었다.
8.
오래된 거울을 보는 일은 퍽 힘겨운 일이다. 현재의 나는 무난한 일상을 보내고 있고 부서지거나 꺾일만한 일 또한 없다. 그 거울은 과거의 나를 차례차례 비추어 놓는다. 생생한 기억이 다시금 떠올라서, 활자로 된 내 얼굴들이 명확하게 인식되었다.
낯설지 않은 문장들이 나를 반겼다. 그때의 내가 '작품'이라고 불렀던 부끄러운 무언가 또한,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서 다시 이야기 동산을 확장했다. 기록하는 습관을 기르지 말걸 그랬다. 그마저도 글이란 것과 멀어지면서 같이 자연스럽게 멀어졌지만 말이다. 이 수첩들도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기엔 너무 빼곡하게 남겨졌다. 꾹 눌러 담긴 문장들은 기록이라는 것의 속성처럼 오래 남는다. 녀석들은 이미 자기 몫의 시간을 지나온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모순이었다. 표현이라는 것은 듣는 이 읽는 이 가 존재하여야 마땅하나, 나는 읽히기 위해 쓰지 않았다. 노트북을 덮었던 그때의 나처럼 나는 수첩들을 다시 닫아 보관함에 넣어두었다. 끝내 살아내지 못한 삶이 그 안에 담겨 있다. 수첩의 겉모습은 낡아가지만, 그럼에도 수첩 속에 쓰인 문장의 힘은 고스란히 보존될 것이다. 끝내 살아내지 못한 거울 속의 나에게 애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