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37] 우리는 임산부를 좋아해!

임신 25주차, 맛집에서의 환영

by Sylvan whisper

이제는 가릴 수 없을 만큼 배가 나온, 임신 중반에서 후반기로 넘어가고 있는 25주차. 고성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고성 또한 장거리 이동이긴 하지만, 이번 출장은 3박 4일로 주말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평일을 보내야 하는 일정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같이 움직이길 선택했다. 명절이나 처가댁 방문 등, 그동안 장거리 이동에 대한 경험치가 쌓였던 덕분인지 큰 걱정은 없었다. 강원도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중 하나인 고성까지, 우리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도착했다. 아내가 이동 중 절반가량은 차 안에서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던 것이 한몫했다.

출장 첫날은 거의 이동을 위한 날이었다고 봐도 무방했기에 숙소에 체크인을 한 뒤, 우리는 바로 고성 시내로 향했다. 설악산 울산바위가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단풍이 붉게 물들어가는 시기의 강원도를 천천히 바라봤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계절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풍경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카페 주변을 계속 맴돌던 아기 고양이 세 마리도 우리의 기분을 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누군가 기르는 건지, 아니면 밥만 챙겨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괜히 마음이 풀어졌다. 영랑호에서의 조용하고 아늑한 산책까지 마치고 나서야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만 보면, 하루는 매끄럽게만 흘러갈 것 같았다. 하지만 저녁식사에서 우리의 하루는 잠시 제동이 걸렸다. 유명 유튜브 채널에 소개됐던 두루치기 맛집을 먼저 시도해 보았는데, 평일에도 웨이팅이 길다는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예약 취소라도 하나 생기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안 되면 바로 떠나기로 하고 식당으로 향해보았다.

예상대로 웨이팅은 마감시간보다 길었다. 미련 없이 방향을 틀어, 몇 년 전 여행 때 정말 맛있게 먹었던 순대국밥집으로 향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문이 닫혀 있었다. 재료 소진도, 영업 종료도 아닌 임시 휴업 이라니! 이곳저곳을 오가다 보니 해는 이미 저물고 있었다. 고성에 살고 있는 선배에게 급하게 연락을 해 식당을 추천받기도 했지만, 하필이면 그날은 문을 닫은 날이거나 거리가 애매했다. 식당들이 하나둘 불을 끄기 시작했고,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결국 처음에 겉핥기처럼 시도했던 두루치기 맛집에 전화를 걸어 포장을 문의했다.


결과는 간발의 차이로 성공이었다. 매장에서 바로 먹는 따끈한 한 상은 아니었지만, 이 일대에서 가장 기다림이 가장 긴 집의 음식을 손에 넣게 된 셈이었다. 식당앞에 다시 도착하였고 음식을 픽업하러 식당으로 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내는 차에 있고, 내가 혼자 음식을 받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아내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음식은 이제 막 나오기 직전이었고, 우리는 문 앞에서 5분 남짓을 기다리고 있었다.




'배 모양을 보니 알겠네~ 아들이지?'


식당 한켠에 앉아 계시던 어머님이 말을 건네셨다. 반반의 확률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동시에 눈이 커졌다. 성별이 딱 맞았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아들인 경우 배가 아래로, 옆으로 퍼진다고 설명해 주셨다. 딸은 윗배가 더 볼록하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아내의 배를 다시 보게 되었고, 어머님의 눈썰미가 괜히 신통하게 느껴졌다.


'여기는 반찬 좀 더 담아줘!'


어머님은 임산부인 아내를 보며 반갑게 웃으셨다. 원래 포장에는 반찬이 나가지 않는데, 특별히 챙겨주시는 거라고 했다.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며 짧은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식당을 나서기 직전, 어머님은 한 마디를 더 덧붙이셨다.


'우리는 임산부를 좋아하거든.'


군인과 임산부는 특별대우라며 웃으셨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보호해야 할 존재를 ‘귀한 손님’이 아니라 ‘좋아하는 존재’라고 표현한 것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꼬일 대로 꼬였던 저녁 일정이, 그 한마디로 조용히, 완벽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날 두루치기는 우리가 마지막 포장이었다고 했다. 우리는 데워진 음식과 함께, 데워진 마음을 안고 숙소로 돌아와 밥을 두 공기씩 비웠다.




돌이켜보면, 이날은 특별한 태교를 한 날은 아니었다. 그날 우리는 임산부를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식당에서, 사랑이가 이미 사회의 한 구성원처럼 대우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고, 품에 안아본 적도 없지만, 누군가는 먼저 알아보고 말을 걸어주고, 반찬을 하나 더 얹어주었다.

아마 사랑이는 그날 처음으로, 우리 둘만의 세계를 벗어나 다른 사람의 시선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날 고성의 저녁은,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부모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조용히 확인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된 우리,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사랑이가 있는 하루였다.








한 줄 정보

1. 이제는 옷으로 가려지지 않을 만큼 배가 나와있을 시기이다.

2. 엄마도, 아빠도 본격적으로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시작한다.

3. 태아의 움직임이 점점 뚜렷해진다. 산모마다 다르지만 보통 오전시간대에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다.

4. 아이가 커지면서 갈비뼈나 골반의 통증이 수반되기도 한다. 점점 횡경막이 눌리면서 호흡에 불편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5. 산모의 하반신 또한 점점 압박을 받는다. 하지 정맥류가 나타날 수 있다. 아빠는 혈액순환을 위해 다리 마사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주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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