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게 보내는 작별인사
안녕, 나와 1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준 서른 세 살아. 나는 이제 너에게 인사하려고 해.
올해는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한 해였던 것 같아.
음? 뭘 좋아했냐고? 음. 나는 생각보다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걸 좋아했더라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인스타를 보고 영화를 보는 게 생각보다 괜찮았어. 그리고 재미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때 제일 재밌어하더라. 물론 마무리는 못했어. 이건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아 그리고 스몰토크로 소소하게 사람들의 취향이나 내게는 없던 경험을 듣는 것을 좋아했어. 되게 의미 없는 사담 같지만 막상 또 듣다 보면 재밌는 이야기들이 나와서 재미있더라고. 그리고 관계 후에 살을 대고 나른함을 느끼면서 조잘대는 것을 좋아했어 물론 누구와 그러냐도 굉장히 중요하더라. 좋아하는 사람과 그러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해야 할까. 이건 행복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안 어울리는 것 같고, 편안해진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
생각보다 노래를 듣는 것보다 주변의 소음이 내 귀에 들어오는 채로 두는 걸 좋아했어.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거랑은 별개로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지?라는 궁금증도 아니고 그냥 그 상태 자체를 좋아하더라고 그건 지하철이나 카페나 장소에 상관없이 모두 동일한 것 같아. 그런 환경 안에서 만들어지는 그 상황자체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생각보다 손으로 끄적거리는 작업을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틈 나면 글씨를 손으로 쓰는 걸 좋아했어. 일기를 쓰려고 마음먹고 일기를 쓰려고 하기까지가 어렵지 막상 앉으면 줄줄 잘 써지더라. 그리고 주마다 회고할 겸 글을 매주 썼는데 너무 좋았어. 가끔은 내가 쓴 내 문장을 보면서 심취해있기도 했었어.
아, 그리고 생각보다 내가 로맨스를 좋아하더라고 물론 아직도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라 근데 나의 해방일지, 아델라인, 비포선라이즈, 비포선셋을 보면서 굳이 박장대소하지 않아도 되는 작품들을 보는 건 좋았던 것 같아. 넷플릭스 있으니까 종종 보려고.
그리고 은근히 먹는 걸 좋아하더라고 아무래도 콘서타 때문에 약이 도는 동안에는 그런 니즈가 약하긴 한데, 약을 먹지 않았을 때는 많이 잘 먹더라고 내가 예전에 살이 안 빠졌던 이유가 이거였겠다고 생각했어. 커피를 아주 싫어하진 않지만 그래도 설탕이 들어간걸 더 좋아하긴 하더라. 하지만 아무래도 건강상의 이유로 많이 먹을 수는 없으니까 자제해야겠지? 그런 걸 좋아한다고 뇌이징하는 것보단 그냥 몸 생각해서 안 먹는다고 인식하는 게 맞을 것 같아.
여전히 뭐든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고 생각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멍하니 뚫어져라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하더라 이건 사람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거랑 같은 맥락인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 남자들이랑 섞여서 대화하는 것도 편하고 재밌지만 역시나 소규모의 여자들이랑 모여서 소소하게 이야기하는 게 더 재밌는 것 같아. 아무래도 이건 어쩔 수 없나 봐.
생각보다 의미 없이 돈 쓰는 거 좋아해서 까딱하면 파산하겠어. 지출 관리를 좀 힘들게 해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이번에도 느꼈지만 나 여행 가는 거 좋아하는 데, 그동안 맞춘다고 여행을 하도 안 가서 그렇게 착각했던 것 같아. 그리고 확실히 깨달았지만 계획 타이트한 여행은 너무 싫어. 그냥 카페 몇 군데만 찾아서 사람 구경하고 앉아있고 조금 움직이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는 여행이 취향인 것 같아. 그러지 않으면 쉰다는 느낌이 없는 것 같아.
싫어하는 건 한번 고민해 봤는데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지적하는 걸 싫어하고 맞다고 우기는 것도 싫어. 그런데 멍청해서 일 못하는 건 더 싫어. 어떻게든 손해 안 보려고 주변에 피해 주는 것도 싫어.
항상 변하지 않는 불변의 싫어함이 있다면 그건 '나' 일거야. 내가 불안해지는 것도 싫고, 불안해하는 나도 싫고 불안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나도 싫어. 그리고 괜히 넘겨짚어서 오해하고 불안해하는 건 더더욱 싫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어하는 '나'를 아직은 내가 놓지않았고, 조금 더 내가 좋아하는 모습의 '나'로 만들기 위해 올해도 많이 노력했다는 거. 그리고 아직은 내가 '나'를 더 개선할 수 있는 모습이 남아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러다 보면 나도 '나'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자주 떠오르는 올해였어. 많은 사람들과 이별했고, 많은 사람들을 떠났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내게 어떤 일인지 고민하고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서 상처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어. 나는 다정하게 나를 쓰다듬는 손길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쓰다듬는 사람은 그게 행복이 아닐 수 있고 내가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게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사랑은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을 올해 정말 많이 했어. 사랑은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라고 말하던 내게 정말? 그게 맞아?라고 몇 번을 물었어. 답? 모르겠어. 사랑은 뭘까? 고통스럽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평안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 대신 내가 이 사랑이라고 느끼는 이 감정을 더 이어나갈 거냐, 아니면 거둘 거냐를 고르게 한다는 건 알겠어. 고통을 감수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면 이건 사랑이지 않을까? 사람과 사람을 떠나서 무엇이든. 일이 되었건 무엇이 되었건. 결국 희생이 따른다는 건 자기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다들 손해보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이 사회의 분위기에서 그런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있어야 더 특별한 존재가 아닐까 싶어.
여전히 나란 인간은 혼자 살아나가기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무리하지 않아도 되고, 아무 데나 의지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한해의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여실히 깨달았어.
이제 몇 시간 뒤면 모든 시계가 2025를 지우고 2026을 표시하겠지.
그럼 나는 이제 너에게 인사를 하고 서른네 살의 나에게로 갈게.
올해 너무 고마웠어.
안녕, 낡은 서른세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