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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개봉한 아델라인을 봤다.

by 가애KAAE


어느 날 갑자기 릴스에 아델라인이 떴다. 이전에 포스터를 본 기억이 있었고 대강의 줄거리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릴스로 나타나서 그냥 이런 영화가 있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릴스에 또 아델라인이 나왔다. 이전에 봤던 장면과는 완전히 다른 장면이었다. 그냥 이걸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저녁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그 영화를 봤다.

무언가 울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라 그 영화가 눈에 들어왔는지 많이 울었다. 신부전에 걸린 강아지를 데려간 아델라인이 의사에게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라는 질문에 의사가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면서 둘이 만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하라던 말이 호야를 생각나게 했고 호야가 너무 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다가 10년 단위로 신분을 바꾸는 삶은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제까지의 나를 부정한 채로 살아가는 삶은 어떤 걸까. 아델라인은 딸을 위해 이렇게 긴 시간을 살아간 걸까, 어쩌면 자신을 기억해 주는 이가 있어서 그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걸까.

내 존재를 남기기 위해 흔적을 남기고 있는 나라면 어느 순간 지친다며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충분히 잘 살았다고 생각하니까.

마지막에 그는 알고 있다는 말에 플레밍과 함께 울었다. 아 이제 아델라인은 진짜 자신과 살아가겠구나. 자신의 진실을 아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자신이 진실을 고백해도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이와 함께. 어쩌면 스스로가 떠나지 않았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줄 수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마침내 제니가 아닌 아델라인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겠지. 아델라인의 행복을 함께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용기가, 그리고 행복을 향해 가는 결말인지 알 수 없는 내 삶이 서러웠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생각한 건 만들어진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과연 진짜 나까지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델라인은 영화다. 만들어진 이야기를 통해 흔하게 적용하는 해피엔딩을 향해 설계된 영화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이미 알지 않나.


일전의 사건들을 통해서 내게 호감을 보였던 사람들은 전부 내가 밝고 멘탈과 생각이 건강해 보여서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게 내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빠르게 나를 떠난 것도 안다. 밝고 건강해 보이는 나도 내게 존재하는 모습이고 어둡고 우울하고 병든 나도 내게 존재하는 모습이라는 것도 안다.


... 다 안다.


어쩌면 멘탈이 건강해 보인다는 말에 아무렇지 않게 감사합니다.라는 대답을 한 내가 역겨웠을 수 있다. 항상 왜 그 순간이 아니라 하루를 정리할 때 자기혐오가 몰려오는지. 그렇게 혐오스럽고 역겨우면 반박을 했어야지! 아직도 어지간히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가보다.

이제 X에는 끊임없는 자기혐오만 남아 있다. 몇 번이고 계정을 리셋하고 다시 써도 결국 그런 글만 남는다. 호응해 주는 이 없이 그냥 자기혐오를 배출하는 창구가 되었다. 결국 그냥 그렇게 두기로 했다.


그렇게 남들의 입에서 나오는 안된다. 싫다. 못한다는 부정의 말은 듣기 싫어하면서 스스로에게는 싫다. 짜증 난다. 못났다는 말은 잘한다. 이것도 잘못됐다.


누군가 내게 언제 행복하냐고 물으면 나는 항상 똑같은 장면을 떠올린다.

창문 너머로 파도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어떤 이의 알람도 울리지 않는다. 핸드폰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고, 모두가 한없이 게으르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어리광을 부려도 그저 으이구 라고 귀여워해주는 사람과 그렇게 그냥 이불속에서 살을 맞대고 조잘대며 시간을 죽인다.

정말 이젠 언제인지도 기억 안 나는 이 장면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게 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제는 내가 환상을 꿈꾼다는 생각도 든다. 몇 번 있던 일도 아닌데 그게 전부 한 명이었다는 것도 참 어처구니없다. 가장 최고의 행복과 최악의 이별을 준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정말 우습다. 뭐가 그렇게 우습고 웃기고 어처구니없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아쉽다.


말 한마디에서 시작해서 영화를 보고 여기까지 생각하는 나도 모르겠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 아마도 떠나고 싶은 것 같다. 어디든 도망가야 할 것 같다. 이번엔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럴 땐 10년마다 신분을 바꾸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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