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게 다 서러울 때가 있다.

그냥 문득, 한 번씩 울컥한다.

by 가애KAAE


혼자 사는 건 이제 제법 익숙해졌는데, 그래도 한 번씩 울컥할 때가 있다.

집에서 가장 높은 의자를 딛고 서있는데도 닿지 않는 선반이라던가, 어떻게 해도 열리지 않는 병이라던가, 손잡이가 부러진 참치캔을 마주할 때라던가. 어떻게 해도 닿지 않는 선반은 안 쓰면 되고, 손잡이가 부러진 참치캔은 테두리를 따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열리지 않는 병은 정말 깨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


어릴 때부터 농부의 딸로 자라 보통의 남자들 한 명 몫은 하는 나인데 헬스트레이너들도 생각보다 힘이 세다고 놀라는 나인데 고작 병 하나를 못 따서 도움을 청하려고 하는 내가, 그리고 그걸 열어줄 이 하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내가, 그게 뭐라고 그렇게 서러운지 모르겠다.


같이 사는 사람이 있었을 때는 오만가지 방법을 다 쓴 후에 조르르 달려가 열어달라곤 했다. 이걸 못 열어? 라면서 본인도 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서 웃는다거나, 열릴 때까지 또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본다. 그건 여자건, 남자건 모두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였다.


오늘은 한번 열었다 닫은 토마토소스를 다시 열면서 최근에 어떻게 해도 열리지 않는 병은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갇힌, 내가 세워둔 벽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나의 심연을 담아둔 병이 아니었을까. 병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병은 절대 안에서 열 수는 없고, 밖에서 열어야 한다. 처음에 열 때는 진공상태를 벗어나면서 맑고 경쾌한 뻥! 하는 소리가 날 것이다.


이 병을 안에서 열 방법은 없는 것일까.

누군가 한번 열었다 닫았다면

이 병 안에 있는 모든 의자를 쌓아올라가 뚜껑을 살살 돌려본다면 열 수 있지 않을까?


이 병이 한번 열렸던 병인지 어떻게 알지?

여기가 진공상태인지 아닌지 확인하면 되지.


진공상태인지 어떻게 확인하지?

외부와 내부의 압력 상태를 비교하면 되지


외부와 내부의 압력을 어떻게 비교하지?

... 어쩌면 한번 열었던 병이어도 내가 나한테 부여한 압박 때문에 다시 진공상태가 되었을 수 있겠네.


토닥토닥. 쓰담쓰담.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그리워지는 걸 보니 잠에 들 시간인가 보다.


아, 오늘 세시간 밖에 안 자긴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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