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풍성한 추석이란 게 있었나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by 가애KAAE

추석이다. 이제까지 추석에 뭘 했더라,


재작년 추석에는? 그즈음 호캉스를 갔던 것 같은데 그때 만나던 남자친구는 누가 봐도 여행이 가기 싫은 상태라 나는 여행 가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연휴인데 집에 있기 싫다고 하는 내 눈치를 살펴서 조율한 게 호캉스였던 것 같다. 갔다 와서는 결국 헤어졌다. 허무한 5년 반이었다.


아, 작년엔 생일 지나서가 추석이라 코타키나 발루에 갔다 왔다. 처음으로 생일을 해외에서 맞이했다. 명절연휴 시작과 함께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회사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더랬다. 어떤 얼굴로 출근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울다 깨다를 반복했었다. 그때의 남자친구는 하루 한 번밖에 못하는 전화를 할 때마다 충격받은 나를 달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는 자는 걸 확인할 때까지 동료들 눈을 피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수시로 전화했었더랬다. 이런 일이 연속된 게 문제였는지 결국 헤어졌다. 한 달인가 두 달인가


이번 추석은? 퇴사를 앞둔 상태인데 인수인계도 써야해, 이직할 회사 서류도 준비해야해, 컨퍼런스 준비도 해야 하고 사이드프로젝트도 진전시켜야 한다. 또 추석을 기점으로 헤어지진 않겠지. 가을에 태어났으면서 가을이 가장 잔혹하다. 불편한 추석이었다가, 멘탈이 터졌다가, 이번에는 일복이다. 내년에는 그냥 평범한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을 돌이켜보면 내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한, 추석은 항상 숙제였다. 자취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차례를 지내는 게 재밌으면서 싫었다. 고기보다 나물을 더 선호하는 나로서는 명절음식은 천국이지만 음식을 하는 게 나라는 건 너무 싫었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병풍은 남쪽 방향에 세우고 밤은 꼭 생밤을 사다가 남자들이 깎아야 했으며, 지방은 딱풀이 아닌 밥풀로 꼭 붙여야 하고, 증조할머니, 할아버지용 제기는 어떻게 생겼으며 등등... 거기에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시집을 잘 간다며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혼나기도 더러 혼났다. 제법 파는 송편보다 예쁘게 빚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할머니는 더 이상 계시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할머니용 제기가 추가되었다.

지금은 송편 안 빚은 지 10년이 넘어서 예쁜 딸은 엄두도 못 내겠네. 딸이 있게 될는지도 만무하지만.


차례를 지내면 명절 관습처럼 빨간 얼굴을 가진 어른들이 큰 소리를 냈고 아빠는 차례가 끝남을 알리는 것 마냥 문을 쾅 닫고 차를 끌고 나갔으며 엄마랑 나는 한숨을 쉬며 상을 치웠다. 그리고 엄마가 몇 번을 전화하며 외가 언제 가냐고 재촉해야 아빠는 돌아왔다.


이 흐름의 어디에 ‘풍성한’이라는 말이 끼어들 수 있는 가.


그럼 명절이라는 숙제를 하지 않고 혼자 보내는 추석은 풍성한이라는 말을 끼워둘 수 있는 가. 이제는 수확이라는 것도 무의미한 시대인데 풍성한 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에 넣어야 완성되는 걸까.


여전히 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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