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4주 차
-
인간은 평생 유한한 생물이면서 왜 유한하다는 걸 인지해야만 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가. 내 주변의 내가 사랑을 나눠주는 것들이 내 옆에서 유한하게 살아 숨 쉰다는 걸 절절하게 느끼고 나서야 그들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죽고 싶어 하면서 왜 미래를 위해 연금을 내고, 걱정을 하고 내일을 이야기하고 이별을 예측하는가. 결국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죽음을 마주하는 나를 통해 살고 싶다는 절규를 하는 것일 뿐이다. 처음 그랬던 그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냥 요즘은 그렇다. 죽고 싶은 이유보다 살아낼 이유를 더 찾는 것 같다. 신발을 벗자마자 현관에 눕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힘들어도, 아무도 내가 그렇다는 걸 알지 않아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서러워도 마야가 있고, 하고 싶은 게 있고, 이제는 내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결국 다시 무너진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내일은.
-
출근시간에 2호선을 타면 신림에서 신대방을 향해 가는 구간이 있다. 그땐 지하에서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햇빛이 전철 안에 쏟아지며 환해진다. 이때 나는 보던 책을 덮고 고개를 돌려 창밖에 쏟아지는 아침햇살을 본다.
나는 이 구간을 좋아한다.
자꾸 지하에 나를 가두는 스스로가 지하가 아닌 가장 환한 곳에 나를 두는 연습을 계속 해내고, 마침내 아침해와 함께 지하에서 벗어나길 바라면서 그리고 언젠가는 남들처럼 햇빛을 즐길 수 있길 바라면서 그 순간을 즐긴다.
사람들은 햇빛 알레르기도 아닌데 햇빛 금지령을 당한 기분을 알까? 난 안다. 별거 아닐 것 같지만 정말 별로다.
루푸스라고 확진하기 위해서는 11개의 조건 중 4개를 충족해야 한다. 그 조건 중 필수조건은 항핵항체 양성 진단이다. 나는 우연히 양쪽 아킬레스건에서 염증이 발생해서 정형외과에서 먼저 류마티스내과로 옮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그 뒤 검사에서 항체가 나왔다.
첫 검사했을 땐 1:180이었던 역가수치가 갑자기 1:300, 그리고 반년뒤엔 1:400으로 치솟은 적이 있었다. 그때 병원에서 제안한 방법이 햇빛 피하기였다. 자외선에 의해서 면역세포가 활성화되면서 항체가 늘어날 수 있어서 선크림과 직사광선을 피해 다니라는 안내를 해주셨다.
잔디밭에 누워 소풍을 하고, 비타민 D를 핑계로 햇빛아래서 산책하던 일상이 사라진 건 이때부터였다. 항체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호수가 보이는 정남향 집에 살면서도 햇빛을 피해 다니기 바빴다.
햇빛 금지령을 받은 시점의 나는 호야가 아프고, 아끼던 프로덕트는 사라졌고, 강제로 회사가 흡수되고, 코로나 시국에 창업한 것도 잘 안되고 아빠는 사고 치는 매일이 반복되는 상태였다. 그땐 당장 26층에서 뛰어내릴 수 있었고 아침에 눈을 떠도 이불밖을 나올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였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아찔했다. 그냥 무시하고 산책했으면 덜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추적진료를 하지 않지만 4개의 조건 중 두 개만 충족된 거지 루푸스가 아얘 아닙니다! 는 아니어서 햇빛 금지령이 사라진 건 아니구나 하고 느끼는 요즘이다. 추적진료가 끝난 작년 이후로 햇빛 무시하고 다녔더니 병원 가봤자 이상 없다고 나올 만큼 야금야금 관절들이 아픈 걸 보면 다시 사려야 할 것 같다.
햇빛 아래서 낮잠 자고 싶다. 호주에서도 당당히는 못 자고 후드 덮고 잤는데 그냥 편하게 햇빛 아래에 눕고 싶다. 남들은!!! 당연하게!!! 쐐는 햇빛을 나도 좀!!! 이거 때문에 보험 안 되는 것도 억울하다!!!
-
3월이 코앞이다. 이제 네 생일이 오겠지.
생일축하해.
-
숨 막히게 바쁜 한 주를 보냈다.
핸드폰에서 카톡을 열 때마다 빨갛게 떠오른 알림들이 줄 세워져 보인다. 회사 PC카톡은 잡담단톡을 다 숨김처리해 놓고 중요한 갠톡만 한두 개만 상단 고정해 뒀다. 그런데 기다리는, 그리고 중요한 사람들에게서 오는 갠톡방은 숫자가 쌓이지 않고 잡담방이라고 정의 내린 단톡방에만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애들이 어떻고, 휴가가 어떻고 자기 야근이 어떻고... 나를 부르기 전까진 숫자만 지우고 말하지 않고 일을 한다. 급하면 알아서 날 찾을 테니까.
문득, 이렇게 바쁜 내가 누구를 배려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내가 배려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러던 중 문득 팀원들이 한 명씩 나를 거쳐간다. 자리를 옮겨야 되는데 도와주겠다고 왔다 가고 작게 작게 간식을 주고 가고 숨 돌리라고 농담을 한 번씩 얹고 간다. 자연스럽게 배려받겠다고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이 만들어진다.
템플스테이를 갔다 온 뒤라서 내가 내려놓게 된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그렇게 갑자기 변한 걸까, 화를 내려다가도 한 번씩 보이지 않는 챙김이 지나간다. 그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어쩌고를 떠나서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