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

2026년 3월 1주 차

by 가애KA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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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만 되어있는 글들이 있다.

말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온다는 게 어이가 없다. 그날 까지는 한 달이 남았는 데 자꾸 내 멘탈을 흔들고 망할 몸뚱아리는 괜찮다 싶다가도 아슬아슬 해지고를 반복한다. 혹시나 싶어서 내가 나를 조절하지 못할 것 같아 긴급 연락처에 잘 등록해 놨나? 하고 확인한다.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언제 또 들지 모르니까.
그래 어떻게 안 힘들겠어, 그렇게 일을 하는데 안 힘든 게 이상하지. 내가 지금 해야 되는 게 한두 개야?
그렇다고 아무 나를 붙잡고 욕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고 한가한 사람도 없는 데 그 사람들한테 징징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상 혼자 살 것처럼 그러더니 사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체감한다.

라고 작년에 적어놓은 글을 꺼낸다. 그날을 말하는 걸 보니 11월에 저장해 둔 글 같다. 뭐가 그렇게 불안하고 힘들었을까? 그럼 지금은 불안하지 않고 힘들지 않을까? 아니 지금도 불안하고 힘들다.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떠나보내고 사라지고 싶은 사람은 사라지게 두고 있는 힘껏 잡을 수 있는 것들 중에 욕심부리는 건 없는지 보고 과욕은 버리려고 애쓴다.

‘욕심부리는 건 없는지 보고 과욕은 버리려고 애쓴다’는 문장에 얼마나 많은 모순이 섞여 있는 가. 욕심(慾心)은 애초에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하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인 것을,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욕심은 결국 탈이 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레이디 두아를 정주행 했다.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 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 김미정은 사라킴이 된 자신을 거울로 마주하며 이 말을 반복한다.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 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 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 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


그리고 그녀는 죽어서 진짜 사라킴이 된다.


나라는 존재의 원본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항상 팔을 뻗어오는 그 심연들이 내 진짜 모습이라고 믿어왔다. 불안해하고, 불안정한 그 우물에서 허덕여 다른 이들까지 우울하게 만드는 내가 빛을 쫓는다는 것이 욕심이며 양지로 드러나고 싶어 하는 것 역시 과욕이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진짜 나는 존재하지 않다. 온전한 사랑을 받을 수 없어 항상 눈치를 보고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게 불편해서 표현하지 않고 입을 닫고 그러려니 하면서 삭히던 나도 존재하지만, 사실은 이게 서운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답답해하는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사람들이 떠날까 봐 전전긍긍해하는 나도 존재한다. 수 없이 존재하는 나인데 이중 무엇이 진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애초에 진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가짜가 존재하는 것 아닐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진짜를 찾는 강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회사용 MBTI가 있는 시대이다. 사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 다 가짜이자, 모두 다 진짜다. 애초에 가짜와 진짜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괜찮은 척 포장하고 싶은 사람에겐 포장하고 포장하기 싫은 사람한텐 포장하지 않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겠나. 이제는 오히려 왜 그렇게 보여주냐고 뭐라고 하는 사람한테 네가 그 정도까지만 바라지 않았냐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내가 고심 끝에 심연 속에서 꺼내온 검고 진득한 덩어리에 아무도 관심 없다는 걸 안다. 그건 그냥 내 거다. 꺼내서 나만 보면 된다. 굳이 진짜네 가짜네 논할 대상도 아니다. 오히려 그걸 건드리려는 사람을 의심해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빠르게 날 공략해서 뭐든 해먹으려는 수작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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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회의감이 들 때가 올 텐데, 나는 왜 이렇게 자주 오는지 모르겠다. 한 허탈이 가면 한 허무가 오고 한 허무가 가면 한 자괴감이 온다. 아무래도 역시 나는 혼자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올 때면 한 번씩 오는 것 같다.

거절도 한두 번 당해야지 계속 당하면 확률상 거절 비율이 높아져있으니 말도 안 꺼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역시 나는 혼자 버텨내는 게 맞다는 프레임에 다시 갇힌다. 그런 거 가지고 징징댈 만큼 중요한 일들도 아니고 꺼내봤자 결국 나한테 떨어지는 말은 미안하다, 이해해 달라는 말 외에는 돌아오는 것도 없다. 시간이 오래되었건, 관계가 깊었던 그런 건 하등 중요하지 않다. 그런 사이면 오히려 더 상처가 깊고 아플 뿐이다. 그렇게 상처받을 바에 그냥 선을 건드리지 않게 적당히 포기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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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회의적인 상태지만 생각보다 우울하진 않다. 불안은 하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이 불안도 그냥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사라질 불안이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가 사실은 그것을 그 존재의 본질을 보는 것이라고 하시던데 조금씩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 나가는 것 같아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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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고 건강하기 싫어서 이렇게 태어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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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내가 비위 맞추어야 하는 사람이 싫다. 눈치 봐야 하는 사람도 싫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주눅 드는 건 더 기분 나쁘다. 그게 사무실, 회의실, 차, 기차, 버스 어떤 공간이던 그냥 그 상황이 발생하면 그들의 배려없음에 감탄한다. 너네 기분 나쁘고 짜증 나는 걸 내 시간을 써서 봐야한다고? 합의점 찾겠다고 해도 지랄이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것도 지랄하면 나도 지랄로 받아칠 수밖에 없다는 걸 왜 모를까? 벌어진 건 벌어진 거고 그걸 왜 엄한 내가 같이 기분이 나빠야 할까? 나는 그 꼬라지 보기 싫으니까 그냥 내가 자리를 피할게. 제발 그럴 거면 날 찾지 마. 나랑 같이 갈거면 알아서 저한테 맞추세요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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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챗이 돈이 잘 벌리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럴싸한 말을 하는 AI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주니까. 정말 그럴싸하게. 대리만족 수준으로. 유사연애던,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서 RPG처럼 즐기던, 몰입하면 그 그럴싸함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그럴싸해졌으니까.

이런 걸로 충족이 가능한 가치들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AI는 불평하지 않아서 AI에 적응한 사람들은 불평이 생기는 인간과의 관계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글을 봤다. 인간관계라는 게 저런 걸로 대체가 가능해지면 사랑도, 우정도 무의미해지는 시대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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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한 사람은 항상 예쁨을 받는다. 근데 나이먹어서도 똘똘하다는 표현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 결국 똘똘한 사람들이 일 잘하는 사람이 되니까 결국 예쁨 받을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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