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영원하지 않을

2026년 4월 2주 차

by 가애KAAE


하루를 보낸다. 보다는 하루를 버틴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요즘이다. 교대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아니라 역삼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탄 건 아닌지 수시로 확인하고, 메신저에 쌓이는 메세지 하나하나가 버겁다. 거절하고, 대답하고, 찾아주고, 책임을 감수하고, 쓸모없는 말들을 무시하고, 상처받고, 화내고, 침묵하는 것을 반복한다.


하루는 출근길에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다 넘어졌다. 넘어지고 든 생각은 이렇게까지 출근해야 하나?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건 나였는데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출근하고 있었던 건 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그 순간이 서러웠다. 달래 줄 사람 하나 없어서, 요즘은 다들 내게 괜찮냐고 묻지 않고 조심 좀 하지라고 한다.


‘인간은 유한한 생물이라...’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나는 ‘죽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서 항상 그렇게 표현했다. 사람은 영원할 수 없는 존재다. 오늘 출근해서 보는 동료들이, 연락하는 지인들이, 내일은 보기 싫어질 수도, 내일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가녀장의 시대를 읽고 있다. 모부를 직원으로 둔 여자대표의 이야기를 소설화 한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트콤과도 같다. 가족과 저렇게 유쾌하게 지낼 수 있구나. 그래,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니까.

자신을 낳은 여자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를 영원히 보고 싶은가? 무엇이 영원히 남길 바라는 가.


적어도 나는, 나 자신은 영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영원하면 이 고통 역시 더 늘어날 테니까.

내가 이룬 것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욕심이 이뤄놓은 현재보다 더 한 것을 바랄 것이 분명하므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겠지.


영원을 바라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QA를 통과한 뒤에 맛보았던 성취감과 끝냈다는 안도감, 그리고 누워서 조잘대며 이야기하던 순간들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존재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

그리고 나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게 되는 사람들.


내가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아니까

더 많이, 자주.

아니, 내가 살아 숨 쉬는 모든 시간 동안 함께하길 바라게 되는 거 아닐까


영원이라는 말이 남기는 것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는 약속이다.

지키지 못할 영원이라는 말 대신 내 마지막 숨을 뱉을 때까지라는 말을 남겨둔다.


이것이 내가 바라보는 영원이라면, 그대는?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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