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가리느라 애쓴 나를 떠나보내며

2024년 회고

by 가애KAAE

2024년 12월 31일. 오늘은 서른둘의 나를 마지막으로 마주하는 날이다.

서른둘의 내가 맞이한 2024년은 타인에게서 상처를 받고 스스로가 상처를 내고, 그리고 또 그런 상처들을 가리느라 바쁜 시간이었다.


잘하는 척, 괜찮은 척, 멀쩡한 척, 다 이겨낼 수 있는 척.

잘하지 않고, 괜찮지 않고, 멀쩡하지 않고, 다 이겨낼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한 해였다.


이제까지는 일단 해내기 시작하면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해냄의 정도가 아니라 해냄의 밀도가 더 많이 중요한 연차가 되었다. 나는 많이 처리하는 것은 잘 하지만 꼼꼼하고 밀도 있게 해내는 것에는 약한 사람이었다. 스스로도 내 그 몹쓸 성격이 만들어낸 구멍에 죄책감을 가지며 수습하고는 했다. 급한 마음에 급하게 해낸 것들이 결국 다시 나와 내 팀원들에게 돌아왔고 두 번, 세 번을 작업하게 만드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반복되다 보니, 내가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당연히 그 연차니까 알 수 있는 '개발은 못하지만 그 짬바는 무시 못해'의 주인공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바라는 건 개발을 잘하진 않아도 다른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도의 실력을 가지는 것이었다. 나에게 '못하지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내가 자신 있어하는 것이 사실 별거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내세우는 나의 가치들이 '별것'인지에 대해서는 내가 정의할 수도 있지만 타인에게서 인정을 바라던 나로서는 타인이 나의 것을 '별것'이라고 평가하고 정의해 버리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는 것은 불행한 일임을 안다. 그것이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것이라면 더더욱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내가 볼 수 없었던 다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은 내가 무언가를 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붙이는 렌즈처럼 다른 부분을 확인하는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한번 더 느꼈다.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일만큼 잔인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런 상처를 준 사람이 한 명이 아니었다는 점이 다시 한번 놀랍다. 화도 내고, 빨리 이겨내기 위해 충분히 생각해 내서 털어내려고 노력했지만 아직도 전부 그러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혼자만 겪어낸 것은 아니니까 괜찮아야 했고, 막상 당사자는 아니어서 화만 내고 넘어갈 수밖에 없기도 했다. 사실 아직도 괜찮지 않다. 아직도 그들 모르게 의지해두었던 그 자리가 주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의지할 곳을 찾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그럴 힘이 남아 있지 않다. 그냥 이대로 방황하게 두고 싶기도 하다. 강박적으로 찾지 않고 그냥 그대로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회복력이 좋아서 조금 더 무리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회복력이 좋은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관심이 없어서 멘탈이고 건강이고 얼마나 무너졌는지 모르는 거였다. 분기별로 몸살 걸리는 건 예삿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상반기동안 수액을 몇 번을 맞은 지 모르겠다. 한 주면 끝나는 장염과 위염을 한 달을 넘게 앓았고, 체중은 급격하게 줄었다. 괜찮은 게 아니었다. 팀원들과 친구들이 아무리 말해도 나만 몰랐다. 내가 스스로 괜찮다고 최면을 걸던 결과물은 이렇게 돌아왔다. 멀쩡하지 않았다.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더 건강하고 강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아무 일도 없고, 다 이겨내서 더 강한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아직은 시련과 상처를 경험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지금은 그 시련과 상처를 이겨내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다.


한 가지는 확실히 이해했다. 나는 많이 쉬고, 자주 쉬고, 쪼개서 쉬고 다양한 방법으로 쉴 수 있을 때 자주 쉬어야 한다는 것. 나는 항상 잘하지 않으며 괜찮지 않을 때도 있어서 다 멀쩡하게 이겨내려면 잘 쉬어서 충전해야 한다는 것. 나는 쉽게 방전되는 사람이라 평소에도 나를 잘 타일러서 챙겨주고 먹이고 쉬어줘야 한다는 것.

내가 이제까지 쉰다고 생각하고 해 왔던 방식들이 나의 방식은 아니었다는 것. 내가 가장 나답게 쉬는 방법을 더 많이 찾아놔야 한다는 것.


서른이 넘으면 무엇인가 되어있을 것 같았던, 그래서 서른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기대했던 나는 그렇게 서른을 넘어 서른셋이 된다. 2025년에는 상처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길 바라며. 이미 나 있는 상처 위에 약을 잘 바르는 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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