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유언장도 아닌 유서를 고칠까

미로(miiro)는 숨을 쉰다면 죄를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by 가애KAAE

가끔 유서를 수정하고 싶은 날이 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에 나타난 그 유서를 보지 않기로 한 결정이 원죄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죽고 싶나요? 아니요.

살고 싶나요? 아니요.

어쩌고 싶나요? 아니요.

네?


유서에 적는 말은 항상 똑같다. 소중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고, 하고 싶은 말을 적고 지우고 적고 지우고 적고 지우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미안해로 끝낸다.

그 크리스마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까, 누군가는 제2의 내가 될까 봐. 미리 미안하다고.


유서를 쓰면서 항상 생각한다. 누가 나를 기억해 주지?

그리고 다시 기억해 낸다. 너를 누가 기억해 주지?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지만, 내가 너를 기억해 줘야지.


유서를 마무리하면 무기력해진다.

무기력은 죽겠다는 의지마저도 잠식해 버린다. 그리고 또 울겠지, 우는 소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아니면 울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로. 모든 의지를 잃어버린 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울고 또 울 것이다. 그것 말고는 떠오르는 방법이 없어서.


올해는 유서를 세 번 고친 것 같다. 누군가의 이름을 넣고 빼고 다시 넣고 결국 네 명의 이름만 남기고 다 지워냈다.


9월이 되었다. 이후에는 수정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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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9월이 너무 싫다.


9월이 되면 그만하고 싶다고 헤어지자고 울먹거리던 나로 다시 돌아간다. 한 번도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지만 그 장면이 아니라 그 말을 뱉던 나로 돌아온다. 나는 왜 하필 생일날 이별을 통보했을까. 왜 참지 못 했을까. 그날도 어김없이 핸드폰만 보는 그 사람이 싫증 났을까, 재택근무 했으면서 집에 쌓여있는 분리수거와 그 사람과 나의 빨래가 문제였을까, 애매하게 먹은 술이 문제였을까, 생일날 그러고 있는 내가 불쌍했을까


전부 맞고, 전부 틀린 이유를 반복해서 생각해 낸다. 이렇게 해봤자 남는 건 결국 불안 밖에 없다는 걸 안다.


알아, 나도 안다고. 그만해. 그냥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이야.

어쩌면 광교를 떠난다면 길을 건너다 마주치는 일이 아얘 없다면 더 기억하지 못할까? 모를 일이다.


아이러니하지, 이렇게 불안한 사람이 사람들을 이끌겠다고 나서는 것도. 그리고 사람들이 그렇게 평가를 해준다는 것도.


오늘은 억지로라도 몸 좀 챙기라는 말을 들었다. 한동안 안 들었는데 아차 했다. 그 와중에 화자야 말로 진짜 안 챙긴 당사자라는 사실은 인지 못하고 이제야 생각났다. 근데 맞는 말이라서 할 말은 없다. 신경쓰긴 해야지.


무기력한 나는 무능한 상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태. 삶과 죽음 중에 선택하라고 나를 강요하는 순간. 내가 태어난 9월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달이다.

회사에선 웃고, 집에서는 감정을 잃어버린다. 이게 다 9월이라서 그렇다. 9월에는 내가 고장 난다. 고치는 방법은 생일이 지나가길 비는 것뿐. 작년처럼 해외에 있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를 사랑하기엔 글렀지만 오늘은 죽을 생각이 없으니까 살아야지. 그다음은 내일 생각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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