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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미 Jan 14. 2024

제발 효도는 병원말고 집에가서 하세요


전지적 간호사 시점에서 바라보면 병원 입원 시 나타나는 보호자 국룰이 있다. 그동안 연락이나 했을법 싶은, 자주 왕래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도 모든 친척을 동원해서 병문안을 오고는 한다. 이 코로나 시대에...

사실 마스크도 오픈하는 마당에 그럴수 있나 싶기도 하지만 대학병원도 아니고 우리 같은 요양병원에서 보호자를 관리하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원무과라도 이런 보호자를 관리해야 하는데 우리 병원 원무과는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어서옵쇼... 하는 모드다. 당일 전화해도 면회를 연결시켜줄 정도인데, 뭐 일가 친척 다 오는 것쯤이야 뭐.... 신속항원 이라도 확인하고 들여보내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다.





몇 명은 하고, 몇 명은 안하는 식. 게다가 신속 항원 키트는 본인 부담해서 해와야 하는 건데 병원에서 해주는 거 아니에요? 이런 스탠스로 나오는 보호자도 종종 있다. 입틀막... 병동의 환자와 보호자 직원을 보호해야 하는 간호사 입장으로서는 기본적인 면회 지침과 개념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1차적으로는 우리 병원 원무과에서 응대가 잘 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한다. 2차적으로는 정말 DNR(심폐소생술 포기) 환자, 정말 임종 직전의 환자가 아닌 이상은 퇴원하고 만나면 되지 않나 싶다.





입사한지 얼마 안됐을 무렵, 정형외과 환자가 입원한 적이 있었다. 척추 협착으로 수술한 환자였는데 나이가 많았다. 할아버지의 주호소(주된 문제)는 식사를 못해서 기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욕창도 있었지만 신경써서 드레싱을 정기적으로 하니 나중에는 모두 힐링(없어졌다)되었다. 보호자가 많았는데 다섯째인가 여섯째까지 있었다. 문제는 이 아들들이 돌아가면서 아버지 상태는 어떠시냐 식사는 얼만큼 하시냐를 매일 전화해서 물어봤다는 점이다. 너무 시달려서 나중에는 이렇게 하시면 우리는 일을 못하니 제발 보호자들끼리 상의해서 이 보호자 저 보호자 전화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럼에도 퇴원할 때까지 보호자는 6형제중 2-3명이 돌아가면서 전화를 했고, 말이 예쁘게 나가지가 않았다. 더 자세히 설명할 수도 있었지만 이럴 때는 대화를 빨리 끊어야하기 때문에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이유는 업무를 할 수가 없다) 그런데다가 면회는 매일 신청해서 매일 밑에서 환자를 만나는 중에도 병동으로 전화를 했으니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간병사에게 물어볼 수도 있는 것들도 병동으로 전화를 해서 이 보호자 전화를 받느라 일을 못할 정도였다. 얼른 퇴원했으면 했는데 갑자기 퇴원한다고 하더니 2달 좀 안되서 퇴원했다. 그 뒤로 그 보호자 전화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다.      











© attentieattentie, 출처 Unsplash






그 다음도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효도 배틀이다. 홀어머니로 아들 딸을 키웠던 환자가 있었다. 다리가 골절되어 입원하게 됐는데 아프기 전에도 식사를 잘 드시지 않았다 했다. 우울감도 있는 분이라 기존에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었던 환자였다. 2인실을 썼는데 보호자가 우리 병원 원무과의 허술함을 알아서였을까 매일 드나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아마 자영업이나 개인 사업을 하는 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부모에게 내가 효도하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는가. 그러나 다른 환자들이 같이 있는 병동이라면 그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직 코로나 상황이고, 병원은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한 환자들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신속항원 검사도 하지 않고 제 집 드나들 듯 병원을 왕래하는 것은 다른 보호자, 환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다.





우리가 라운딩(회진전 간호순회)갔을 때도 보호자와 만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 옆방 다인실에서 이 부분에 대해 컴플레인이 나왔고, 아래층 이동 도우미 선생님도 불만을 토로했다. 가면 안된다고 말해도 보호자가 무대뽀로 병동에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수간호사도, 우리도 말했지만 그분의 효심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환자가 조금만 식사 못하고 우울하다고 하면 찾아와서 엄마를 달래고는 했다. 결국 그분도 우리가 눈치를 줘서였는지 1달 만에 퇴원했다.





얼마 전, 또 효심이 지극한 보호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마침 주말이었다. 환자는 피검사 수치상 역격리를 할 정도의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염증 수치가 높았다. 면회보다는 환자가 편히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치료에 더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해서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환자 컨디션이 좋지 않으니 피검사 결과가 호전된 이후에 면회를 하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러더니 보호자 왈 자식들이 시간이 지금밖에 안되고 이미 일정을 잡아놨기 때문에 꼭 오늘 면회를 해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무과 OOO 대리가 병실면회를 꼭 해주겠다고 하면서 2명까지는 가능하다고 들었다고 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원무과에서 이렇게 또 일을 만들어주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친절이란 환자 보호자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것이 친절함이 아니다. 컴플레인을 다 들어주는 것이 친절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병원의 존재 이유, 목적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병원의 목적, 비전은 아픈 환자들을 낫게 하는 것, 만약 나을 수 없는 질환이나 상황이라면 환자들이 더 나은 삶,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의료 행위를 하는데 있어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며, 형평성에 어긋나서도 안된다. 돈이 많고 적음, 보호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그 의료행위가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돈이 많고 적음, 보호자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환자라면 공정하게 진료를 받고 간호를 받아야한다. 그런데 이렇게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병원 시스템, 내부에 균열이 생긴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렇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 내가 내 엄마, 내 아빠 보러간다는데 왜 못하게 하냐고 생각할수는 있다. 그러나 이 보호자가 요구한 병실면회는 임종 직전, DNR 상태, 혹은 환자의 컨디션이 도저히 휠체어를 타고 못내려가는 상황인 경우에 한해 이례적으로 가능한 것이지, 이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무과 직원들이 이런 원칙을 자꾸 깨고 보호자의 요구를 들어주면 어떻게 될까?





본인들이야 환자, 보호자에게 싫은 소리 안하고, 안듣고 올려보내면 끝이지만 병동 상황은 그렇지 않다.

첫째, 다인실이라 다른 환자가 같이 있는 상황이라는 것, 면연력이 비교적 약한 환자들에게 보호자들이 온 것 자체가 접촉 가능성이 올라감
둘째, 환자 스스로에게도 면역력이 약하고 감염수치가 올라가있는데 보호자와 오래있는 것이 과연 치료에 도움이 될까? 컨디션이 좋아진 다음에 봐도 문제 없다. 우선순위의 문제라 생각한다.  
셋째, 다른 환자들이 이 사실을 보호자에게 전할 경우, 다들 병실면회를 시켜달라고 할 가능성. 형평성 문제.
넷째,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 병실에 보호자가 있는 것 자체가 의료환경 보호를 침해받는 느낌  





사실 병원 출입, 면회에 대한 부분까지 간호사가 신경쓸 일은 아니다. 대학병원이나 다른 의료기관에서는 직원이 상주하고 있고, 코로나 검사 음성인 경우에 보호자 상주 간병인 경우에 한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다. 원무과가 해야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업무를 하는데 무척이나 힘들다. 엉뚱한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인수인계를 하는 과정에서 전화가 이 보호자 말고도 다른 일로도 왔다. 인계를 하다 끊기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됐다. 그리고 실제로 전화 내용을 들어보니 주말이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 왜 나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보나 싶었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느낌이랄까. 나또한 그 직원에게 친절하게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그건 주치의가 결정하고 설명 하는 것이니 왜 이쪽으로 전화했냐는 식으로 말했다.(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 직원은 기분 나빠하면서 본인은 몰라서 물어볼 수 있지 않냐고 말했고 나는 상투적으로 대답했다. 기분 나쁘던지 말던지. 이미 나도 그 직원이 할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에게 넘기는 바람에(보호자 병실 면회건으로) 내 업무를 하는데 방해받았다 생각했기 때문에 감정이 상해있었다.  





보호자는 상황을 몰라서, 내 부모이기 때문에 그럴 수는 있다. 그럼에도 우리 부모님만 봐달라, 너무 과한 요구는 의료행위를 하는데 오히려 의료진에게 불편함을 끼칠 뿐더러 환자를 위한게 아닐 수 있다. 아무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결국 원무과 직원의 바람대로 보호자는 2명만 병실면회를 하겠다고 했는데 3명이 올라왔고 신속항원검사 결과 음성이 나와 면회를 진행했다. 10분만 하도록 했는데 3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어서 다른 환자들도 있으니 이렇게 하시면 다음번에는 면회해드릴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보호자는 침대 옆에 물병을 달 수 있게 고리를 건다느니 설치를 한다고 했는데 사실 이것도 병실 침대 자체가 병원내 시설이기 때문에 동의 없이 본인의 필요에 의해 장치를 달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만약 필요하다면 간병사를 통해 해드리겠다고 설명했으나 끝끝내 본인이 했다. 그래서 우리는 전체를 관리하는 입장이니 이렇게 하시는 건 안된다고 설명했다. 보호자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본인의 요구가 관철될때까지 이야기했다.





다음날 오전 라운딩을 돌고 있는 데, 전화가 왔다.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을 가져왔는데 드시지 않는다면서 식당에서 설탕을 얻어다 오이지에 설탕을 넣어줄 수 없냐고 했다. 그 이야기를 간병사에게 전해 듣는 순간, 이게 무슨 소리지? 싶었다. 이걸 왜 병동에서 전화해서 컴플레인 할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이분의 특성은 주어 동사만 말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어떻게 됐는지 내가 궁금하지 않은 전후사정까지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같은 이야기를 3~4번 이상 듣는 게 너무 힘들었다. 더군다나 인수인계후 병동 라운딩 중이었다. 간병사가 멋대로 나에게 전화를 바꿔준 것이라 그것부터 당황스러운. 그래서 죄송하지만 병동 라운딩 중이니 다른 환자도 봐야한다 용건만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식당에서 설탕을 얻을 수는 없다고 설명하니 집에서 설탕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또 배개가 낮아서 집에서 쓰던 배개를 가져와도 되는지 물어봐서 OK했다.





주말인데 밑에 원무과 당직자가 있느냐 물건을 전해주면 어떻게 전달해줄 것인지 물어봐서 병원 도착후 연락주면 간병사를 통해 환자에게 전달하겠다고 하는 걸로 일단락 되었다. 이 모든 것이 24시간안에 일어난 일이다. 적다보니 숨이 헉헉찬다. 물론 보호자님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현타가 온다. 도대체 간호사의 업무 구분은 어디까지인가. 도대체 컴플레인은 어디까지 해결해줘야하는가. 오늘도 가슴속에 퇴사를 품고 근무하는 주말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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