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교회에서 만났다. 말로만 듣던 교회 오빠였다.
멋지게 다른 사람들을 이끌거나 그런 오빠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용하고 숫기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반대로 나는 외향적이고 액티브했기 때문에 저 오빠는누가 데려갈까? 싶었다.
몇 년 뒤 내가 그 오빠랑 결혼할 지는 꿈에도 모르는 채.
연애 할 때 남편은 뭐든 나에게 다 맞춰주는 사람이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그랬다.
음식이며, 놀러 가고 싶은 곳,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주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남편이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바로 임신을 했고 첫째가 태어났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
조산과 임신중독증의 후유증으로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그 어려운 순간 남편은 나와 아이를
돌봐주었고 그 때 그 순간만큼은
이 사람이랑 결혼하기를 참 잘했다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신체적인 변화, 내면의 변화로 지쳐있었다.
남편은 그런 나에게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했다.
나의 아픔을 이해해주었고 공감해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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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향적이고 액티브했던지라 집에서 아이만 보고 있으려니 너무 답답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몸조리를 다 한 것도 아니었지만
붓기가 제법 빠지고 몸이 가벼워지자 돌아다니고 싶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지지해주었고 주말에는 아이를 봐주면서 나갔다 오라고 했다.
덕분에 주말마다 외출했고, 길게는 아니었지만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덕분에 1년 뒤 첫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첫째가 순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첫째는 엄마 품이 아닌 아빠랑도 잘 자는
무던한 성향의 아이었다. 더구나 통잠을 자주어(한 번 자면 8시간 10시간을 잤다.)
첫째를 재우고 우리는 집 앞에 나가 가끔 뭘 사먹고 오거나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아이가 잘 때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까먹을 정도로 우리 생활에 변함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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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끔 다투기도 했다.
싸울 때는 앞 뒤 안가리고 싸움에도 진심인 편인데
남편은 나와는 조금 달랐다. 싸우다.. 갑자기 울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했고... 왜 우냐고 물어보니 내가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화를 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더이상 화를 내지 못하고 싸움이 종료됐다.
남편을 토닥이느라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나면 나는 잘 잊어버렸는데 남편은 가끔씩 그 때 니가 이렇게 말했잖아.
라고 말해서 깜짝 놀라게 하고는 했다.
싸울 때는 화끈하게 싸우고 잊어버리는 나와 달리 섬세하고 감정적이었던 남편은
그렇게 켜켜이 쌓아두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을 때마다
처음에는 들어주었지만 반복될수록 " 아 또 시작이야? " 하고 반응하게 되었다.
(전형적인 T)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도 이런 다툼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