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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대 병동에서 일할 때 나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오버타임(퇴근 시간보다 일이 안 끝나서 늦게 퇴근 하는 것)이 허다했고,
새로운 병동, 새로운 병원에서의 출발이었기 때문에 늘 긴장 상태였다.
쉬는 날이나 출근 전 후에 정보 자료실에서 공부를 하다 집에 가고는 했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든 적응해서 병동에서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그런데 교대 근무를 하다보니 아이들을 케어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오버타임을 하는 날에는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을 봐주셨는데 둘째는 특히 더 나를 찾고는 했다.
그 당시 18개월이 좀 넘어갔을 무렵이니.. 5시가 넘어가면 엄마가 왜 안오나 하고
창밖을 내다보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무리했다.
데이(6am~2p) 퇴근하면 녹초가 되어 깜박 잠들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집안일, 아이들 케어 모두다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병원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요리할 만한 멘탈과 체력이 되지 않았다.
저녁은 거의 배달을 시켰다. 빨래와 설거지도 겨우 했을 정도니까 말이다.
이브닝(오후2pm~11pm), 나이트(10pm~7am)에 들어갈 때는 더 많이 해두려고 노력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했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였다.
남편이나 친정 부모님에게 미안했다.
사실 그 당시 제일 힘든 사람은 당사자인 나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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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고 집안일이고 뭐고 다 내팽겨치고 싶은
다음날 또 출근해야한다는 게 압박감을 느끼면서.. 그렇게 하루 하루 버텨가고 있었다.
너무 지쳐있었고 남편의 마음을 보살펴 줄 여유, 아이들의 마음을 챙길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남편은 급성 장염으로 입원하게 됐다.
나는 이브닝 근무중이었고 일이 끝나지 않아 전화 받기가 곤란한 상황이었다.
남편은 내가 아픈데도 일이 더 중요하냐며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일이 아직 마무리 되지 않았는데 남편이 아프다며 말을 꺼내기가 뭐했다.
다들 예민해져 있었고 얼른 일을 끝내고 퇴근만 기다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일이 끝나자 무튼 나는 말을 했고, 남편이 갑자기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는 바람에
원래 이브닝 근무였으나 아이들을 케어할 사람이 없어 데이 근무로 해줄 수 없는지 요청했다.
거의 3~ 4시간만 자고 나와서 너무 피곤했다.
그 날 어떻게 근무했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생각보다 염증수치가 높고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입원을 1주일 정도 했다.
남편이 없는 기간동안 백업했던 건 나와 친정 부모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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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병동 관리자)님께 그리고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에게 양해를 구했지만
개인사로 인해 다른 사람의 근무가 바뀐 것, 남편이 없어 아이들을 돌봐야했던 친정 엄마아빠에게 미안했다.
남편이 없는 공백기간 동안 일하랴 아이들 챙기랴.. 정신이 없었다.
남편과 통화는 했지만 남편까지 챙기기는 상대적으로 어려웠다.
그렇다고 내 마음에 남편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못가봐서 미안하고 마음이 쓰였다.
그 때 나는 남편을 병원까지 데려다 준 그 사람에게 고마워하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