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리 두 병원에 전화해서 전원(병원에서 타병원으로 옮기는 것) 가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챙겼고
보통 소견서, 그동안 피검사했다면 피검사, 소변검사 결과지, 투약 기록지, 퇴원약
PCR 검사 결과지 혹은 신속항원키트 결과지 등이 필요하다.
재활병원에서 재활병원으로의 전원이었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당일 오전 9시경에 전화해서 옮길 병원에서 그동안 있었던 병원으로 EMS(구급차)를 보내주기로 했다.
2~3개월 지내면서 짐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에 그 짐도 EMS에 싣어달라고 부탁했다.
전원 가는 병원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오픈 병원에다
아빠의 발병일이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발병일이 오래되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치료갯수가 많고, 이 말은 곧 지원받는 비용이 많다고 예상된다) 들어줄 만한 건 들어줬던 것 같다.
비용은 기저귀나 재료대(드레싱 재료 등등)을 포함해서
180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재활, 식사, 입원비, 간병비 포함 1:6간병 기준)
만약 개인간병을 하게 되면 하루 10만원이라 계산하더라도 월 300만원 이상이었다.
그리고 하루 10만원이 아니다. 코줄(L-tube)이 있거나 재활치료를 하는 환자는 간병협회에서
비용을 더 받았다. 기본 12~13만원부터였다. 동생도 나도 월 300만원 플러스 병원비까지 내다보면
400~450만원 정도 들텐데 2분의 1을 해도 200만원 이상이었다.
우리에게는 간병비가 너무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고모들에게 계속 보호자 간병을 부탁할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모부가 쓰러진 김에 공동 간병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먼저 전원할 병원으로 출발하고 나는 퇴원 수속 후 전원갈 병원으로 향했다.
신축에 오픈한지 얼마 안 된 병원이라 깨끗했고, 간호사들 분위기는 오픈 한 지 얼마 안되어
직원들 조차도 정신 없는 분위기 였다.
간호사는 아빠에 대한 병력 및 history(간호정보조사)를 물었고 나는 최대한 친절하게 대답했다.
병실은 깨끗했고, 6인실이었으나 3명만 자리에 있었다. 아빠까지 하면 4명이었다.
나는 아빠가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인 것처럼 불안했다.
낙상이라도 하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치료는 도루묵. 다시 일어날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 daiga_ellaby, 출처 Unsplash
고모도 같이 오셨는데 아빠와 고모는 서로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렸다.
두 분 다 만감이 교차하시는 듯, 여성 호르몬이 넘치시는 것도 같았다.
고모는 또 고모 나름대로 아직 온전하지 못한 동생을 두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나에게 고모부가 실신한 게 꾀병같기도 하다면서 이야기했다.
나중에 아빠가 괜찮아지면 광주에 데리고 가서 보살펴주고 싶다는 말도 함께.
나는 " 아니. 고모. 그건 아닌 것 같아요. "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게 애썼다.
" 더 이상 고모 아들 딸, 고모부에게 염치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 라는 게 내 속마음이었다.
아빠에게 필요한 병실용품을 메모해서 쿠팡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간병사에게 아빠를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고 아빠에게는 자나깨나 낙상조심을 강조하고
대변은 기저귀 차고 보라고 했다. (안다. 아빠는 절대 그러지 않을 분이라는 걸)
그럼에도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는 것보다 기저귀를 하는 게 더 안전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다.
아빠는 수고했다고 하면서 너도 애들 보러 가야하니 얼른 집에 가라고 했다.
내 잔소리가 듣기 싫으셨던 듯하다.
© mvdheuvel, 출처 Unsplash
고모는 지방으로 내려가셔야 했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가셔야 했고 기차 시간이 7시 30분이었다.
고모를 모시고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대접했다.
깔끔하게 회와 초밥을 시켰고,
근검절약이 몸에 배이신 고모는 니가 무슨 돈이 있냐고 이 비싼 걸 시키냐고 했다.
그래서 그동안 고생하셔서 밥 사드리고 싶었는데 이 기회에 사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고모는 맛있게 드셨고, 엄마도 같이 와서 형님 그동안 고생하셨다 고맙다는 말을 했다.
고모는 우리 아들을 보더니 엄청 개구쟁이라 너가 힘들겠다 하시고 조카가 새로 장만한 집에 처음 와보셨다. 아빠네 집보다 우리집이 조금 더 넓었는데 여기는 넓고 수납공간도 많다며
" 아따. 아야. 너네집 좋다. " 전라도 구수한 사투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반전 둘째 고모는 나보다 더 부자시다.
어쩌다보니 대출 잔치로 마련한 집을 그렇게 고모에게 소개해드리는 셈이 됐다.
영등포에서 기차를 탄다고 해서 저녁을 먹고 역까지 바래다드렸다.
둘째 고모는 내려가면서 넷째 고모에게 내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역까지 데려다 줬다며
오늘 있었던 일의 근황 보고를 마치셨다.
고모가 역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차를 뺐다.
역 앞이라 차를 오래 대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 오늘 하루도 길었다.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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