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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의미 Sep 02. 2023

세상은 좁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한다

간호사, 의사 모두 돌고 돌아 만난다

신규 때 다녔던 병원 이후, 쭉 병원을 서울과 우리 지역에서 다니고 있었다.

작년을 기점으로 대학병원 퇴사 후 요양병원으로 이직했다.

이직한 병원은 재활전문병원이라 뇌경색 환자들이 급성기 치료를 종료하고 재활목적으로 오는 병원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감염환자를 아예 받지 않았고 장기 환자들이 많아 깔끔했다.

재활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다보니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주치의와 일하게 됐다.

그 때 회진을 같이 돌았던 재활 과장님이 맺고 끊음이 분명하고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도 있으면서도 

오더를 잘 주셔서 참 좋았다.






그 과장님과 7~8개월쯤 일했을까? 과장님은 병원내 일로 그만두게 되셨다.

그래도 말도 통하고 오더도 잘 주셨던 과장님이라 이 과장님이 가고 나서 소통 안되는 주치의가 올까봐 

걱정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이 근방 오픈병원으로 가신다는 말을 하면서 선생님도 같이 가자고 말씀을 하셨었다.

그러나 나는 굳이.. 오픈 병원에 가서 고생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냥 웃기만 했다.

더군다나 그 병원은 투석실도 있는 병원이라 했다. 감염 환자 웰컴할 게 뻔했고 그 말은 초기 병원 셋팅의 정신 없음과 시스템 미비와 인력 문제, 그 우후죽순 과정에서도 나는 일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그 병원으로 결론적으로는 이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가 급성기 치료 종료후 재활병원에서 재활병원으로 전원한 곳이 그 병원이었다.

나는 그 과장님이 그만두셨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있을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아빠를 입원시키는 날 결론적으로 그 주치의를 만나지 못했기에 

아 여기 가셨다길래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그만두셨구나 싶었다.





 



© julianhochgesang, 출처 Unsplash







아빠의 발병과정은 이렇다.





12월 말일 코로나 양성 확진과 동시에 소뇌경색 진단(응급실 통해 입원) -> 12월 말일 입원 24시간만에 낙상 -> 후두부 개두술 진행 -> 대학병원 중환자실 케어 3주 정도 -> 신경외과 병동에서 3주 입원(보호자 간병)

-> 1월 31일 대학병원 퇴원후 재활병원 입원 -> 4월 초 공동간병 없어 타 재활병원으로 전원 -> 4월 말

brain angio CT및 brain MRI+MRA 위해 신경외과 입원/ 신경외과 치료 종료후 재활의학과로 전과/

전과 후 연하치료 3주 시행(재활의학과 병동에서 연하재활) -> 퇴원 후 자택 3일있다 재활병원 재입원






재활병원으로 재입원 후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재활병원 대표번호였다.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너무 낯익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 OOO님 보호자 분이시죠? "



" 저는 OOO님 주치의 인데요. 아버님 진료 회신서 보고 궁금한 점이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

" 경관식을 600kcal만 드셨던데 그 이유가 있나요? "



" 아빠가 그 때는 복시, 어지러움, 속 울렁거림이 있어 하루에 2~3번 정도 구토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병원에서는 600kcal로 유지하자고 했어요.

나중에 제가 칼로리를 늘리자고 말은 했었는데 구토를 해서 잠깐 늘렸다가 다시 감량한 걸로 알고 있어요. "




" 그래도 아버님 키도 크고 체격에 비해서 600kcal는 너무 적거든요. 여기 오시고 부터 구토는 안하셔서

일단 900kcal로 늘려보고 나중에 구토 안하면 상태봐서 1200kcal까지 늘릴게요. "





(* 경관식 칼로리란 아침, 점심, 저녁 식사량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400kcal면 2캔, 200kcal면 1캔 이런 식이며, 경관식마다 300kcal가 1팩인 경우도 있다.

남자 칼로리로 600kcal면 정말 낮은 편이기는 했다* 보통 1200kcal에서 1600kcal를 먹기도 한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 이런 것도 신경써주시다니 참 세심한(?) 주치의구나 싶었다.   

그리고 평소 대학병원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질문했다.




" 대학 병원에서는 L-tube를 끼고 있어 목으로 삼킬 때 자세나 이런 부분에 있어 방해가 된다고 하더라구요. L-tube를 제거하고 PEG 권유를 받았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




주치의는 아직 발병후 이제 3~4개월 지났는데 벌써 끼기에는 섣부른 것 같다고 했다.

아직 더 지켜봐도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아빠에 대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듣고 통화를 종료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목소리가 OO 과장님 같았다. 그치만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뭥미!?ㅎ)








© freestockpro, 출처 Unsplash







얼마 후 대표번호로 전화가 또 걸려왔고, 주치의였다.

과장님도 내 목소리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하면서, 의학적 지식과 말투를 들어보니

나인 것 같았다고 했다.





왜 아는 척 하지 않았냐고 하면서 서운함을 엄청 티냈다.

혹시나 해서 병원 EMR(병원 전산 시스템) 기록을 찾아서 보니 보호자가 나로 되어있었다면서 

그래서 전화하셨다고 했다. (역시... 이래서 의사하시는 듯... 근데 나도 이런 편이라...궁금한 건 못참지...)

그래도 같이 오래 일했고 나름 의사로서 잘 해줬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오더도 빨리 빨리 내주시고 내 딴에는 과장님과 일하는게 편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동의했다.   

언제까지 일하고 퇴사하는데 얼굴 한 번 보자고 했다. 편하게 아빠 질환에 대해 궁금하거나 치료과정에 대해 궁금하면 연락하라고 하셨다. 재활 병원에 전화해서 주치의 면담을 원한다고 했다.

말로는 주치의 면담이었지만 거의.. 사심이 95% 정도였다.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노크를 하고 과장님 방에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같이 일하는 병원 아닌 곳에서 보면

더 반가운 것은 왜 그럴까?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아빠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정작 지금은 뭘 물어봤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결국 L-tube 제거하지 않고 PEG를 삽입하지 않길 잘했다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과장님도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고, 유부녀에 맞벌이에, 의료 현장에서 일하는 공통점,

결혼에 왜 했지? 에 대한 회의감으로도 동질감 충만...

할 말이 왜 이렇게 많은지, 위화감 1도 없이 이야기했다.

너무 개인사를 이야기하는 것도 같았으나 이상하게 그 분위기가 편했다.






과장님은 혹시나 아빠 치료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연락할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번호를 주셨다.

그렇게 번호 교환함...  












알고 보니 아빠에게 OO이랑 친하다면서 손도 잡아주시고 말도 걸어주시고 나름 신경써주셨었다.

아빠가 너 친구라던데 그러면서 잘해줬다고 고마워하셨다. 딸래미 덕분에 어깨뽕 올라간 아빠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런 아빠를 바라봤던 같은 병실 사람들과 간병사도 말이다.





그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과장님께 굉장히 고마웠다.

병원에서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제법 많이 차이났었기에

아빠의 투병 생활에 그렇게 한줄기 빛이 되어주셨다.






그 이후로 한 번 정도 더 전화하고 연락은 못 드리고 있지만 어디선가 열심히 환자들을 위해

일하고 계실 과장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 _jorgesvd, 출처 Unsplash







결국 이 근방 동네에서 이직한다면 결국 돌고 돌아 만나는 것 같다.

간호사, 의사 가는 병원 다 거기서 거기다 보니 만나게 된다.






그래서 오늘 하루 나는 어떤 모습, 어떤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하고

동료들을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밤이었다.

 






어느 업계든 마찬가지겠지만 이 바닥은 정말 좁다.

그러니 잘 살자 다짐했던 하루였다. 

 





 

© dariamamont,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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