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명 Nov 23. 2015

07 모든 게 조금씩 빛을 바래도

폴란드 크라쿠프 & 바르샤바

07

모든 게 조금씩 빛을 바래도

폴란드 크라쿠프 & 바르사뱌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사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빽빽하고 무질서하게 늘어선 비석들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아늑해 보였다. 노랗게 빛바랜 낙엽이 묘마다 이불처럼 덮여 있었다. 크라쿠프 구시가지 광장 남동쪽에 위치한 유대인 지구 카지미에시의 유대인 공동묘지에선 자연이 인간의 죽음을 보듬는 듯했다. 죽음이란 숙명 앞에서 인간이 느낄 수밖에 없는 격한 슬픔이, 이곳에선 전부 순하게 풍화(風化)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억의 밀도와 선명도는 투입한 시간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회사 생활을 시작한 뒤 절감했다. ‘인생이란 당신이 숨쉬어온 모든 순간들의 총합이 아니라, 당신의 숨이 멎을 것 같았던 순간들의 총합이다’ 따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생생히 느꼈다. 어지럽도록 행복한 순간들이 깜깜한 가운데서도 별처럼 점점이 박힌 과거와 달리, 회사에서 보낸 시간은 희뿌연 안개 같았다. 돌이켜보면 멍한 기분이 들곤 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기억 소실에 대한 내 공포는 매우 큰 편이다. 나는 치매라는 병을 떠올릴 때마다 그 참혹함에 항상 전율이 돋곤 한다.


폴란드 여행 일정은 크라쿠프와 바르샤바를 합쳐 총 6일에 달했다. 애초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를 가보고 싶어 크라쿠프를 가기로 결심했고, ‘그래도 거기까지 간 마당에 수도(首都)는 들러야지’ 하는 생각에 바르샤바를 목적지에 넣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울림이 있었지만, 나머지 주요 명소에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폴란드 여행에 대한 기억도 점점 안개에 휩싸여 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안개 속에서 홀로 빛나는 풍경이 있다. 바로 카지미에시 유대인 공동묘지의 풍경이다.




카지미에시 유대인 공동묘지의 풍경




카지미에시 유대인 공동묘지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후 유대교의 장례문화가 궁금해 이스라엘문화원 홈페이지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 읽어봤다. 유대교에서는 화장(火葬)을 금하고 있다고 한다. 시신은 반드시 땅에 묻혀야 한다. 고인이 화장을 원했다 할지라도 이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으로 간주하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는 창세기 3장 19절의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와 신명기 21장 23절의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葬事)하여’에 근거한 것이라고.


매장을 고집하는 문화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대인들에겐 오랜 기간 자신들의 땅이 없었다. 남의 나라에서 유대인 지구라는 이름으로 조그만 땅을 얻어 쓰는 처지였다. 한정된 땅에 무한정 묘를 쓰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묘 위에 다시 묘를 쓰는 방식으로 묘지를 관리했다. 하지만 비석을 땅 속에 세울 수는 없는 노릇. 유대인 공동묘지 대부분이 비석으로 빽빽이 들어차 있는 이유다.


사실 이보다 더 유명한 유대인 공동묘지는 프라하의 유대인 지구에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공동묘지로, 1478년 처음 유대인 묘지로 조성된 이후 1787년 묘지가 폐쇄될 때까지 프라하에서 유일하게 유대인 매장이 허용됐던 장소다. 약 200평 면적에 1만2000여 기에 달하는 비석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데, 많게는 밑에서부터 12층까지 포개어 매장한 곳도 있어 실제로는 1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프라하에서 이곳을 찾았을 당시엔 문을 닫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기억에도 제대로 남았을 리 없다.




카지미에시 유대인 공동묘지에서 발견한 영어 글귀 적힌 비석




카지미에시 유대인 공동묘지를 둘러보다가 영어 글귀가 적힌 비석을 발견했다. ‘M’이란 고인(故人)에게 ‘R’이란 사람이 보내는 글이었다. 1997년 5월 19일이란 날짜가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내용이 다정하면서도 서러웠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남주인공은 무너져가는 풍경, 그러니까 무너져가는 기억 앞에서 여주인공을 쳐다보며 묻는다.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될 거야. 어떡하지?”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와의 거래는 끝난 상태다. 그는 뒤늦게 후회하며 간절히 묻는다. “어떡하지?” 여주인공은 무너져가는 풍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담담하게 답한다. “그냥 바라보자”라고. 남주인공은 그런 여주인공에게 눈을 서서히 뗀다. 그리고 여주인공과 함께 무너져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비석에 적힌 문장 가운데 ‘The distance grows’란 구절과 ‘we shrink’란 구절에 자꾸만 눈이 갔다.


유대인과 유대교를 둘러싼 여러 박물지(博物誌)적 지식과 무관하게, 나는 그 비석 덕분에 카지미에시 유대인 공동묘지가 한층 더 좋아졌다. 묘지는 ‘모든 것은 변해가고, 모든 것은 잊혀진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엔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바르샤바를 떠나는 날,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 앞 공원에서 노래를 들으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바르샤바에 대한 기억은 어떤 걸 기록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듣게 된 노래가 에피톤 프로젝트(차세정) 2집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에 수록된 ‘우리의 음악’이다. 차세정은 노래한다. “모든 게 조금씩 빛을 바래도 / 우리가 함께 듣던 노래는 /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


차세정의 통찰력 있는 가사에 탄복하다가… 문득 카지미에시의 유대인 공동묘지에서 발견한 영어 글귀 적힌 비석이 떠올랐다. 인간의 슬픔을 위로하는 자연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자연보다 더 인상적인 한 비석이 있었기에, 크라쿠프는 오래 기억될 도시로 남을 것 같다. 그리고… 희뿌연 안개에 휩싸일 뻔했던 바르샤바의 풍경은 ‘그대여 사랑을 미워하지는 마’라던 차세정의 목소리를 매개로 오랫동안 소환될 수 있을 것 같다. 기억은 때때로 사소한 것들을 매개로 각인된다. ‘맞다, 그렇게 각인되곤 하지….’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기억과 밀도와 선명도는 눈과 귀를 부지런히 놀리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회의(懷疑) 대신 희망을 품고, 대신 부지런하게 살아야겠구나….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서 부다페스트행 비행기에 오르는 길, 이런 바람이 들었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들, 오래도록 기억될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눈 밝고 귀 밝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06 한 아이의 신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