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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Nov 26. 2015

09 ‘비포 선라이즈’의 도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09

‘비포 선라이즈’의 도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How about you? Where are you going?”

“I’m going to Vienna.”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내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 ‘비포 선라이즈’로 기억되는 도시였다. 영화 속에서 두 주인공은 소통을 위해 영어를 쓰는데, 그 때문에 도시는 빈이라는 현지 명칭 대신 영어 명칭인 비엔나로 불린다. 비엔나에 도착한 나는 빈이라는 현지 명칭이 그래서 어색했다.


비엔나에 도착 후 이 영화의 촬영 장소부터 찾아다녔다. 영화가 세상에 태어난 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그 기간 동안 영화 속에 등장했던 도시의 모습은 거의 변한 게 없었다. 작은 다리도, 낡은 트램도, 허름한 레코드 가게도, 고풍스런 카페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This is a nice bridge.”


신형 트램과 함께 여전히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구형 트램


손금점을 보던 ‘클라이네스 카페(KLEINES CAFE)’


페미니즘을 두고 격론을 벌이며 걷던 거리


“고향을 모르듯 목적지를 알지 못해요. 강물에 떠가는 나뭇가지처럼 흘러가다 현재에 걸린 우리.”


“Ring, Ring.” 전화 놀이로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던 ‘카페 슈페를(CAFE SPERL)’


“이 시간을 우리가 만들어낸 것 같아.”




20여 년 전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멈춰있는 듯한 비엔나. 그렇다면 비엔나를 수도로 삼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발전을 추동(推動)할 경제력이 부족한 나라일까. 그렇지 않다. 오스트리아의 2014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약 5만 1000달러(세계 11위)에 달한다. 같은 시점에 약 2만 9000달러인 우리나라(세계 29위)의 약 2배에 달하는 수치다.


비엔나의 거리를 걷다가 소설가 고(故) 박완서의 소설집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속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더 무섭다. 그렇게 세상은 변해 간다. 나도 요샌 거기 정말 그런 동산이 있었을까, 그 기억을 믿을 수 없어질 때가 있다. 그 산이 사라진 지 불과 반년밖에 안 됐는데 말이다.” “이 태평성세를 향하여 안타깝게 환기시키려다가도 변화의 속도가 하도 눈부시고 망각의 힘은 막강하여, 정말로 그런 모진 세월이 있었을까, 문득문득 내 기억력이 의심스러워지면서, 이런 일의 부질없음에 마음이 저려 했던 것도 쓰는 동안에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수도인 서울의 변화 속도는 그야말로 눈부시다. 그래서 망각의 힘 또한 막강하다. 이십대가 되어 1990년대 초반 서울의 사진을 보며 흠칫 놀랐던 기억이 난다. 매일 서울 거리를 쏘다니면서도 환기되지 않던 유년의 추억, 그리고 그 당시 어린 나를 품고 있던 서울의 풍경이… 그때서야 간신히 떠올랐다. 장소가 사라질 때 사라지는 것은 비단 장소뿐만이 아니다. 장소에 서려있는 우리의 기억 또한 마찬가지다.


비엔나를 떠나는 날, 1873년 처음 문을 열어 지금까지 영업 중인 ‘카페 란트만(Cafe Landtmann)’에서 커피를 마셨다.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즐겨 찾았던 카페라고 한다. 스마트폰과 연결된 이어폰에서 김현철의 노래 ‘춘천가는 기차’가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청량리역 구(舊) 역사도, 경춘선 무궁화호도 모두 사라졌지…. 문득 오래도록 이대로 남아있을 것만 같은 비엔나에게 나는 괜히 고마워졌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등장했던 음반 가게 ‘ALT & NEU’엔 영화와 관련된 비밀이 몇 가지 숨어있다. 가게 주인 크리스토프는 “영화에서 등장했던 음반, 그러니까 캐스 블룸(Kath Bloom)의 ‘Come here’가 수록된 음반이 있느냐”라는 내 질문에 “그런 음반은 애초에 세상에 발매된 적이 없다”라고 답했다. 이어 “해당 레코드판과 표지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오직 영화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크리스토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벽면엔 영화 속에 등장했던 바로 그 표지가 붙어 있었다. 표지를 보자마자 ‘Come here’의 멜로디와 가사가 떠올랐다. “There’s a wind that blows in from the north. And it says that loving takes this course. Come here Come here….(북쪽에서 부는 바람이 속삭여요. 사랑은 정해진 길이 있다고. 이리로 와요 이리로 와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영화를 위해 만들었다는 표지




크리스토프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이 ‘Come here’를 들었던 음악 감상실도 임시적으로 만들었던 것”이란다. 그는 영화 속에서 음악 감상실이 있던 문 쪽으로 안내하더니 “열어보고 싶으면 열어보라”라고 했다. 문을 열자 천장이 뚫린 마당 같은 공간이 나왔다. 크리스토프는 두 손으로 바닥을 향해 열심히 작은 사각형을 그렸다. “딱 이만한 크기로 만들었었지. 영화 찍고 나선 다시 철거했어.” 세상에 없는 블룸의 음반, 그리고 영화를 위해 잠시 태어났다 사라진 음악 감상실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창조하는 데 완벽히 성공한 듯 했다.




영화 속에선 오른쪽 뒤편으로 보이는 문이 음악 감상실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음악 감상실이 있었던 곳의 문을 열면 이처럼 천장이 뚫린 공간이 나온다.




크리스토프의 설명을 들으며 ‘예술가는 작은 신(神)’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들은 모두가 공유하는 이 세계 속에 자신만의 또 다른 작은 세계를 창조해낸다. 그들은 자신이 받은 비범한 인상(印象)을 영상과 음악과 그림과 글로 풀어내며 그 작은 세계를 꾸며간다.


벨베데레 궁(宮)에 작품이 전시된 화가들 중엔 요셉 도브로우스키(Josef Dobrowsky)란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오스트리아 화가가 있었다. 그가 했다는 말이 벽에 영어로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은 예술가와 범인(凡人)이 나뉘는 지점을 정조준하는 듯 했다. “경험은 모두 객관적이다. 반면 느낌은 순수하게 주관적이다.”


비엔나엔 작은 신처럼 느껴지는 예술가들이 많았다. ‘황금빛 화가’ 구스타브 클림트, ‘에로티시즘의 거장’ 에곤 실레, ‘자연과 곡선을 사랑한 건축가’ 훈데르트바서…. 이들의 그림과 건물엔 각자의 고집과 철학이 깊게 배어있었다. ‘이들의 작품은 그 어떤 다른 작품들과도 한 번에 구분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념과 확신에 찬 사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들의 예술적 신념과 확신 앞에선 왠지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창조해 나가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게 있다면 바로 예술적 신념과 확신이 아닐까.




훈데르트바서가 건축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위)와 ‘쿤스트 하우스 빈’(아래)




예술의 도시라는 비엔나에서 나는 작은 신들의 마음속을 상상해봤다. 예술가들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후 느낄 감정을 상상하는 일은 아득했다. 하나의 작은 세계를 창조해낸 뒤 느끼는 감정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함 사이로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무언가로 나의 작은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 바람을 이루는 데 견지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벨베데레 궁 벽면에서 봤던 또 다른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벨베데레 궁에선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의 특별 전시회도 열리고 있었는데,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게 대상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요소다. 내가 그려내고 싶은 건 대상과 나 사이에 있는 그 무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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