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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Nov 28. 2015

10 비정상과 비상식 사이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

10

비정상과 비상식 사이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


“와… 진짜 제정신이 아닌 놈이었나 보네….” 


너른 평야와 강산을 지나쳐 마침내 성이 눈에 들어왔을 때,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성은 생각보다 더 험준한 절벽 위에, 생각보다 더 커다란 크기로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독일 퓌센에서 동쪽으로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노이슈반슈타인 성 이야기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가까이 가면 광각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로도 전체의 모습이 잘 담기지 않는다.




이 성은 디즈니 사(社)가 디즈니 성(城)의 모델로 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성을 지은 사람은 바이에른 왕국의 4대 국왕인 루드비히 2세.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과 ‘탄호이저’에 심취한 나머지 그 무대인 중세 기사의 성을 현실 속에 구현하기 위해 이 성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성 외부와 내부도 충분히 설화적이었지만, 성을 둘러싼 풍경은 아예 서사를 위해 마련된 빈 도화지 같았다. 산과 계곡이 있고, 호수와 평야가 있는 곳.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선 당장이라도 중세 기사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도시로부터 떨어진 깊은 자연은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성이 자리 잡기에 더없이 적합해 보였다.




노인슈반슈타인 성


노인슈반슈타인 성에서 내려다본 풍경. 오른쪽으로 호엔슈방가우 성이 보인다.




루드비히 2세에 대한 세간의 평은 예나 지금이나 박하다. 미치광이, 몽상가, 자격미달의 군주…. 루드비히 2세를 겨냥하는 수식어들은 하나같이 그를 비정상으로 간주한다. 내가 처음 성을 보고 내뱉은 혼잣말만 해도 그랬다. 나는 그를 ‘진짜 제 정신이 아닌 놈’이라 지칭했다.


그러나 성을 둘러보는 동안 ‘비정상’은 그를 표현하는 단어로 온당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비상식’이란 단어가 합당하지 않을까. 그는 확실히 상식적인 군주는 아니었다. 군주라면 마땅히 신경 써야 할 것들에 무신경했고, 군주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들에 너무 집착했다. 군주라면 취해야 할 상식적인 행보는 외면한 채,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밀어붙이는 인간이었다.


물론 루드비히 2세 말고도 자기 하고 싶은 것만 밀어붙이는 군주는 많았다. 그러나 이런 군주들 대부분은 무언가를 자신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권력적 욕구를 표출한 사람들이다. 반면 루드비히 2세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싶다는 ‘신(神)적 욕구’를 구체화한 사람이다. 그의 신적 욕구는 확실히 비상식적이긴 하다. 그러나 비정상으로까지 치부될 만한 이유는 또 딱히 뭐란 말인가.


성의 안팎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루드비히 2세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자, 동시에 바로 그가 남긴 성을 보러 먼 길을 온 사람들이었다. 성이 위치한 작은 마을 슈방가우와, 그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 퓌센은 루드비히 2세가 세운 성 덕택에 먹고 사는 듯 보였다. 그를 비정상이라 칭하는 이 세계의 우리는 어떤 욕구를 갖고 있는가. 또 세상엔 얼마만큼의 기여를 하고 있는지…. 거대한 성 앞에서, 나는 내 인생이 너무나 마이크로(micro)하고 소프트(soft)한 것 같아 약간 쓸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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