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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Nov 30. 2015

11 헐거운 풍경과 적막한 밤

스위스 루체른 & 인터라켄

11

헐거운 풍경과 적막한 밤

스위스 루체른 & 인터라켄


루체른-인터라켄으로 이어진 스위스 여행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푸른 강과 눈 덮인 산, 초록빛 평야가 어우러진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띄엄띄엄 자리 잡은 건물 사이마다 싱그러운 자연이 눈부셨다.




루체른에서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 물이 거울처럼 지상을 비춘다.




스위스는 공간을 넓게 쓰는 사람들의 세상이었다. 적당한 간격을 둔 건물들이 순한 짐승처럼 엎드린 풍경은 빽빽하지 않고 헐거웠다. 풍경이 헐거워지자, 마음도 가벼워져 부풀어 올랐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내려다 본 인터라켄의 풍경은 탁 트여 있었다. 건물, 사람, 차… 모든 것이 빽빽한 서울에선 마음이 종종 물에 젖은 솜처럼 묵직해지곤 했다. 이곳에서라면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접한 스위스의 풍경은 빽빽하지 않고 헐거웠다. 리기산을 오르내리며 마주친 풍경.




루체른에선 리기산에, 인터라켄에선 융프라우에 올랐다. 융프라우에선 열차를 타고 내려오다가 클라이네 샤이덱 역에서 내려 벵에른알프 역까지 걸어보기도 했다. 스위스의 고지대에 오르면 시야가 닿는 전 방위가 눈 덮인 산이어서, 경이로운 기분이 들었다.




융프라우에서 내려다본 풍경




스위스의 이런 아름다움은 밤이 되면 자취를 감췄다. 헐거웠던 풍경의 틈새마다 새까만 어둠이 내렸다. 인터라켄에서의 어느 밤, 산책을 하러 나갔던 기억이 난다. 밤거리를 걷는데 어둠이 차지한 공간이 너무 많아 먼 곳엔 전혀 목측(目測)이 닿지 않았다. 시각이 마비되자 청각이 예민해졌는데, 들리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밤의 인터라켄은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었다.


그때 문득 서울의 밤거리가 생각났다. 여전히 빛나고 있는 네온사인의 잔상 아래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차들,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친 술 취한 사람들, 술집마다 새어나오는 시끄러운 목소리들…. 스냅사진처럼 떠오르는 서울의 조각 풍경들에 그리움이 배어있는 것인지, 나는 조금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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